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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기 무예 이야기] 한국 속의 쿵푸①

입력 : 2006-01-14 16:04:00 수정 : 2006-01-14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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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영화로 폭증…당랑권 영향 커 한국에서 쿵푸도장의 등장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70년대 이소룡 영화의 영향으로 중국무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현재 중국무술계의 중진들은 대부분 이 시절에 이소룡에 대한 선망으로 쿵푸를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직업이 된 사람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쿵푸가 자연스럽게 한국인들 사이에 자리잡게 되었지만 동아시아에서도 매우 기이한 현상이었다. 중국은 무술이 문화혁명기간 침체기를 맞았으며 무도왕국 일본에서는 중국무술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국무술은 일제시대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중국무술은 화교의 이주사와 맥을 같이 한다. 일본의 침략과 내전의 혼란기 였던 20세기 초반 많은 중국인들은 해외로 이주하게 되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에 한국에는 산둥성 출신 중국인들이 자리잡게 되었다. 일제시대의 중국무술 유입에 대해서는 자료가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현대중국의 주요무술가 중 한 명인 고(故) 사국정 노사도 식민지 시절 한국에 왔던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매우 드물기는 했지만 쿵푸의 고수들도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화교들의 존재가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은 한국정부의 수립이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화교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책 때문에 외국인도 내국인도 아닌 모순된 입장에 있었다. 주로 ‘중국집’이라는 속칭으로 불리는 음식점밖에 할 수 없었던 화교들중 무술이 가능한 사람들은 중국무술 교습을 시작했다.
중국무술을 교습했던 화교들은 얼마되지 않았으며 이들이 모두 고수였던 것도 아니다. 또 일부러 한국인 제자를 키우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의한 교습은 한국의 중국무술 정착에 상당히 악영향을 미쳤으며 현재 중국무술이 침체기를 맞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무술의 공개적인 교습은 춘천에 있던 임풍장 노사를 서울의 화교학교가 무술교련으로 초청하고 나서다. 임풍장 노사는 화교학교에서 교련직을 맡고 있으면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임풍장 노사의 무술은 당랑권이다. 당랑권의 여러 유파가운데 매화당랑권이다. 중국과 수교이후에도 본토에 가서 배워온 당랑권이 우연히 모두 매화당랑권인 것을 볼 때 한국과 인연이 깊은 권법인 것은 틀림없다.



또 다른 저명 화교무술인, 노수전 노사



당랑권은 산동성의 지방권법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서 당랑권이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일반인들이 중국무술에 대해 아는 특징적인 동작은 손 모양을 갈고리 형태로 만드는 자세인데, 이것은 당랑권의 대표적인 기술인 구수(拘手)이다.
이 구수는 사마귀를 형상화한 상형권인 당랑권의 상징이며 주요 공방기술의 하나다. 한국의 중국무술은 이 당랑권을 기반으로 다양한 북파무술이 무분별하게 혼합된 형태다. 한 문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기술이 아니라 북파에서 보편적인 훈련법으로 사용되는 권종(拳種)및 투로들도 한국에 많이 도입됐으며 당랑권과 융합하여 한국식 소림권이 생기게 되었다. 오히려 당랑권의 순수성을 고집하던 일부 무술가들보다 한국식 소림권은 폭발적인 성장기를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중국무술이 되었고 길거리에 ‘쿵푸’ 또는 ‘십팔기’라는 간판을 건 도장들은 대부분 한국식 소림권을 가르쳤다.
임풍장 계열의 당랑권이 본격적으로 교습된 계기는 한화체육관의 성립이었다. 서울시 성수동에 본관을 둔 한화체육관은 임풍장 노사의 제자인 산동성 출신의 소신당씨가 중심이 된 당랑권 교습소였다.
한국에서 중국무술이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한화체육관 덕이 컸다. 기마식을 비롯한 가식(架式)들과 탄퇴 혹은 단수라고 부르는 기본기술을 배우고 금강권과 쌍풍권을 수련하는 한화체육관의 기초 커리큘럼은 북파무술이 섞여 있는 한국식 중국무술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하지만 중국무술이 대중화되면서 고질적이고 치명적인 한계 또한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무예칼럼니스트
pagua6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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