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과 암살자(들)에 이어 킬링타임까지, 류혜영이 잇달아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런 활발한 행보 뒤에는 집 밖으로 나가 직접 기회를 만들기 시작한 지난 2년의 노력이 있었다.
한때 류혜영은 배우라면 신비로워야 한다고 믿었다. 작품이 찾아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는 것도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다림이 길어지자 삶이 멈춘 듯했다. 결국 집 밖으로 나가 아는 감독과 PD들에게 먼저 연락했다. “나 일 없으니 배역 좀 달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게 뿌린 씨앗이 올해 개봉작들로 찾아왔다.
특히 21일 개봉하는 킬링타임은 류혜영의 첫 스크린 주연작으로 눈길을 끈다. 한순간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인터넷 방송 크루가 재기를 위해 폐병원을 찾았다가 의문의 존재에게 습격당하면서 벌어지는 타임어택 스릴러물이다. 류혜영은 팀원의 죽음으로 추락한 뒤 방송에 복귀했다가 목숨을 건 생존 게임에 휘말리는 스트리머 연우를 연기했다.
촬영은 약 2년 전 이뤄졌다. 20일 류혜영은 “요즘은 촬영을 마치고도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가 많아서 우리 작품도 관객을 만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촬영한 것만으로 만족하려 했는데 개봉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됐다”고 기뻐했다.
연우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그가 왜 상처를 남긴 일터로 돌아가는지를 찾는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은 데다 트라우마도 치유되지 않은 인물이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는 설정을 설득해야 했다. 류혜영은 “연우에게는 이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며 “왜 자신을 미워한 사람들에게 다시 사랑해 달라고 손을 내미는지 계속 고민했다. 그 절박함을 품고 연기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스릴러와 함께 액션에도 도전했다. 액션스쿨에서 짧은 동작만 소화하고도 체력의 한계를 느낀 그는 촬영 전 두 달 동안 꾸준히 달렸다. 그 결과 여러 동작을 연이어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을 끌어올렸다. 류혜영은 “오래전부터 액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며 “다음에는 정말 액션 영화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바랐다.
변화는 가만히 기다리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시작됐다. 응답하라 1988(tvN, 2015)의 성보라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업계 관계자들까지 자신을 성보라로만 기억할까 봐 불안했다. 류혜영은 “다른 캐릭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집에만 있으면 제가 성보라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보여줄 수 없지 않나”라며 “PD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저에게 이런 면도, 저런 면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된 계기는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다. 류혜영은 “피부도 좋고 사지도 멀쩡한 여자가 대낮에 집에만 있는 게 이상하더라. 선택받는 직업이라고 해서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집에만 있는 달팽이였다면 지금은 집을 벗어난 민달팽이다. 아는 분들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연락하고, 아무 역할이나 좋으니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배우 생활 19년을 이어오며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부족함을 감추기보다 인정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시도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자세 교정을 위해 발레를 시작했고, 어린 시절 배웠던 피아노에도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류혜영은 “원하지 않았지만 겪어야 했던 일도 있었고, 힘들어도 버텨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 19년 동안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것만으로도 제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좋아하는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다. 지금의 저는 이미 대성공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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