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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아이들이 핸드볼공을 가지고 노는 그날까지”… 김온아가 그리는 10년 뒤 꿈

입력 : 2026-09-17 11:01:34 수정 : 2026-09-17 22: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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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핸드볼 천재, 괴물, 구세주 등 모든 찬사가 수식어다. 그와 함께한 모든 감독들이 한목소리로 단점을 찾기 어려운 선수, 플레이 자체가 예술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그를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지독한 성실함과 끈기였다. 수차례 부상이 엄습해 올 때마다 물러서지 않았다. “아파도 코트에 서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한국 여자 핸드볼의 주역, 2008 베이징올림픽 동메달로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감동을 만든 주인공 바로 김온아(38)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뜨거운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여자 야구를 테마로 한 예능 TV 프로그램 등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는 중이다. 이 와중에 핸드볼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대한핸드볼협회 이사는 물론 아시아핸드볼연맹(AHF) 경기감독관위원과 전문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무엇보다 얇은 선수층과 열악한 인프라라는 현실의 벽에 맞서 유럽의 선진 시스템을 흡수하고 유소년 저변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행정가로 변신한 김온아가 써 내려가는 찬란한 후반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코트를 지배했던 최고의 센터백

 

18년간 H리그를 누비며 신인왕, 득점왕(2009, 2015), 도움왕(2010, 2015) 을 두루 석권한 것은 물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만 무려 5차례(2010, 2011, 2014, 2015, 2017) 거머쥐었다. 통산 228경기 출전해 788골, 676도움을 기록했다. 또한 국가대표팀 센터백으로 2008 베이징올림픽 동메달, 2014 인천 아시안게임(AG) 금메달 등 수많은 영광을 일궈냈다. 

 

화려한 영광 뒤에는 끊임없는 부상과의 싸움이 있었다. 김온아는 “선수 활동을 하면서 부상을 정말 많이 당했다. 모든 운동선수가 마찬가지겠지만 재활 기간이 가장 힘들다.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했다”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없이 찾아왔지만, 가족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팬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김온아는 서른 살을 넘기면서부터 매 시즌을 마지막처럼 생각했다. 마침내 온전하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느낀 순간,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홀가분하게 코트를 떠났다. 그는 “한 시즌을 또 원 없이 뛰어볼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되물으며 해마다 은퇴를 결심하고 경기를 뛰었던 것 같다. 적절한 타이밍에 은퇴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의견을 존중해 준 감독님과 팀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선수가 아닌 행정가로 넓힌 보폭

 

은퇴 후 코트 밖 더 넓은 세상으로 향했다. 2025년 3월 대한핸드볼협회 이사로 선임되면서 행정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김온아는 “사실 협회에서 제안을 했을 때 행정 관련 업무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이 컸다”며 “관계자 분들이 용기를 많이 줬다. 안건에 무조건 이의를 제기하기보다, 진행 과정이 최선이었는지 깊이 생각한다. 경청하는 자세로 차근차근 업무를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머물지 않았다. AHF 경기감독관위원회와 전문가위원회 두 곳의 위원을 동시에 역임하고 있다.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고 막중하다. 매끄러운 경기 운영을 이끄는 과정이 어렵지만 가슴 뛰는 설렘으로 다가온다. 선수 시절 성실하게 쌓아온 커리어와 국제 경기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영어가 조금 서툴러도 현장에 대한 감각만큼은 누구보다 확실하다. 김온아는 “아무래도 선수 생활을 오래했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보는 눈이 정확한 것 같다. 영어는 꾸준히 공부하고 연습하면서 늘리는 중”이라며 “앞으로 많은 대회에서 경험을 쌓은 뒤, 아시아를 넘어 세계핸드볼연맹(IHF)으로 무대를 넓혀 세계 핸드볼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우리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바랐다.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얇은 선수층을 넘어 체질 개선으로

 

한국 핸드볼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가장 아픈 손가락은 단연 얇은 선수층이다. 선수 7명을 채우기 버거운 학교가 수두룩하다. 운동을 시작하려는 아이들이 축구, 야구 등 인기 종목으로 빠져나가면서 유소년 선수 수급 자체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교내 핸드볼 감독이 체육 시간에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육성보다는 당장의 수급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김온아는 “유망주들이 얇은 풀 속에서 경쟁하며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에 오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 속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쉽게 지쳐 떠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김온아는 “유소년 단계부터 우수 선수를 선발해 유럽 전지훈련을 보내는 등 국제 경험을 안겨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유럽의 선진 전술과 효율적인 훈련 시스템을 흡수하면 신인 선수들이 빠르게 자리 잡고 세대교체도 원활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김온아 대한핸드볼협회 이사. 사진=김용학 기자

 

◆아이들이 핸드볼공을 쥐는 그날을 향해

 

스포츠계 안팎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그가 깨달은 소통의 철학은 명확하다. 바로 ‘경청’과 ‘진정성’이다. 김온아는 “사람을 대할 때 존중하기 위해선 먼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더라. 아직은 부족하지만 늘 진정성을 갖고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온아는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항상 머릿속으로 한국 핸드볼의 미래를 그린다. 그는 “유럽에 갔을 때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축구공이 아니라 핸드볼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큰 행복을 느꼈다”며 “한국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핸드볼을 접하고, 나중에는 유럽 팀들이 역으로 우리를 찾아와 배워가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선수에서 행정가로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가 품은 마음의 결은 언제나 한결같다. 김온아는 “10년 뒤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고 미리 정의를 내리고 싶지는 않다”며 “앞으로의 10년 동안 핸드볼과 마주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나중에 나를 기억해 주는 분들이 멋진 명칭을 붙여주시지 않을까 싶다. 그 미래가 오히려 더 기대된다”고 전했다. 



박상후 기자 psh655410@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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