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댄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무대이지만, 한국 스포츠를 묵묵히 지켜온 베테랑들의 마지막 도전의 장이기도 하다. 수차례 국가대표 선발의 벽에 가로막히기도 했고,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안고 외롭게 태극마크를 지켜오기도 했다.
선수 생활의 끝자락, 다시 한 번 태극기를 가슴에 품었다. 수많은 부상과 좌절, 세대교체의 파도를 견디며 살아남은 베테랑들이 간절함을 품고 일본으로 향한다.
사격 소승섭(서산시청)은 AG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 가운데 최고령(1978년생)이다. 총을 잡은 지 37년 만에 밟는 첫 번째 국제종합대회다. 국가대표 선발전의 벽에 늘 좌절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세계랭킹 32위인 소승섭은 2025 카이로 세계선수권대회 50m 권총 단체전 금메달과 센터파이어권총 단체전 동메달을 거머쥐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은퇴를 고민했던 순간, 소승섭을 잡아준 건 아내다. 그는 “힘들 때나 잘못했을 때나 늘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면서 묵묵히 곁을 지켜줬다”며 “몸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항상 즐겁게 웃으면서 쏘자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다. 착한 형, 든든한 선배 같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배드민턴 여자 대표팀 맏언니인 이소희(32·인천국제공항)도 출격한다. 세계랭킹 3위이자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다. AG의 기억도 좋다. 2022 항저우 대회(2023년 개최) 단체전 금메달과 여자 복식 은메달을 수확했다. 이번에는 단체전뿐만 아니라 개인전 메달에 도전한다. 최근 기세도 매섭다. 2025 월드투어 파이널과 2026 토마스·우버컵을 모두 제패했다.
농구대표팀 주장 이승현(34·현대모비스)에게도 이번 대회는 남다르다. 사실상 마지막 AG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동메달, 2022 항저우 대회 8강 탈락의 아픔을 지우기 위해 더 이를 악물었다. AG 개막 전 치러진 예선 3경기서 리바운드와 수비 등 궂은일을 도맡으며 대표팀이 3전 전승으로 8강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이승현은 “나이가 들면서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만큼 꾸준히 운동하면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지난 두 번의 AG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이번에는 꼭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다짐했다.
세팍타크로 대표팀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원덕(청주시청)과 이민주(부산환경공단) 또한 마지막 AG를 앞두고 있다. 남자 대표팀의 정원덕은 이번이 5번째, 여자 대표팀의 이민주는 4번째 AG다. 지난 대회의 아쉬움을 털고 나란히 금메달을 조준한다. 정원덕은 “국내 등록 선수가 적어 훈련 파트너를 구하기조차 쉽지 않고 세대교체도 더뎌 고참으로 오랫동안 버텨야 했다”며 “처음 국가대표가 됐던 마음으로 공 하나하나에 집중해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다”고 굳은 출사표를 던졌다. 이민주는 “멋지고 후회 없는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양궁 컴파운드 최용희(42·현대제철)도 있다. 세 번째 AG 출전이다. 2014 인천 대회 단체전 은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유독 개인전과는 인연이 없었다. 2025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흐름은 좋다. 개인전 메달 한풀이에 나선다는 각오다.
브레이킹 김홍열(도봉구청) 역시 1984년생 동갑내기 베테랑이다. 2022 항저우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그는 두 번째 AG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김홍열은 “다시 한 번 AG 무대에 서게 돼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살아가면서 쉽지 않은 순간을 많이 겪었지만,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됐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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