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연예인의 조상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조금 묘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조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알려지면서 정작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까지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런 논란이 벌어질 때면 반대편에서는 어김없이 “알고 보니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물론 독립운동가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어려운 시대에 자신의 삶을 걸었던 사람들의 희생은 오래 기억해야 한다. 다만 그 이야기가 어느 순간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의 평가로까지 이어지는 순간 조금 이상해진다. 가끔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때아닌 ‘조상 배틀’을 보는 기분이다.
한쪽에서는 조상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조상의 훌륭함을 이야기한다. 이러다가는 사람을 만날 때 이력서보다 족보부터 받아봐야 할 판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조상의 삶과 나의 삶은 분명 연결돼 있지만 같은 삶은 아니다. 우리는 부모조차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하물며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를 어떻게 선택하겠는가. 태어나기 전에 집안 내력을 검색해보고 “여기 괜찮네요. 여기서 태어나겠습니다”라고 신청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사람이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느냐여야 한다.
조상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서 후손이 자동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했어도 손자가 인생을 개차반으로 살 수 있다. 반대로 집안의 과거에 부끄러운 일이 있다고 해서 후손의 삶까지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후손은 후손의 인생을 산다. 우리는 너무 당연한 이 사실을 유명인의 가족사가 등장하면 잠시 잊어버리는 것 같다. 조상의 이야기는 한 사람을 이해하는 배경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하는 성적표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조상이 한 일인데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모든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몰랐다면 몰랐다는 사실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알게 된 뒤에는 적어도 그것이 부끄러운 역사였다는 사실까지 외면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조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를 대하는 현재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의 잘못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그 과거를 알게 된 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지금의 내가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의 문제는 또 다르다. 잘못된 행위의 대가로 만들어진 재산이나 이익이 후손에게까지 이어졌다면 단순히 “조상의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법적으로 환수 대상이 되는 재산이라면 당연히 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죄는 상속되지 않지만, 부당한 이익까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조상의 죄를 물어서는 안 되지만, 부정하게 만들어진 이익의 출처까지 눈감아줄 이유도 없다. 결국 사람과 재산, 죄와 이익, 과거의 행위와 현재의 태도는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
반대편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이런 논란이 생길 때마다 함께 등장하는 ‘유명인의 조상 찾기’도 나는 조금 이상하다. 누구의 증조부가 무엇을 했고, 누구의 외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물론 자랑스러운 가족사다. 나라도 그런 조상이 있다면 자랑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현재의 나를 설명하는 도덕적 자격증처럼 사용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상이 훌륭하다는 사실과 내가 훌륭하다는 사실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다.
논리는 양쪽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조상의 잘못 때문에 후손을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면, 조상의 공적 때문에 후손을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조상의 죄가 내 죄가 아니라면 조상의 공도 내 공은 아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가족사이지 현재 그 사람의 인격을 보증하는 품질보증서는 아니다. 반대로 친일 행적을 한 사람의 후손이라는 사실 역시 현재 그 사람의 인생을 판정하는 범죄경력조회서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과거를 잊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더 많이 찾아내 기억하고 존경해야 한다. 친일 행위 역시 정확하게 기록하고 평가해야 한다. 다만 그 평가는 가능하면 그 행동을 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돌아갔으면 한다. 독립운동가가 위대한 이유는 그 후손이 유명해서가 아니다. 그 시대에 그 사람이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친일 행위가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 역시 그 후손이 유명인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사람을 혈통으로 평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나면서 많은 것을 물려받는다. 외모도 물려받고 성격도 어느 정도 물려받고 재산을 물려받기도 한다. 집안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물려받는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지는 결국 각자의 몫이다. 좋은 조상을 두었다고 평생 그 후광으로 살아갈 수도 없고, 좋지 않은 가족사가 있다고 평생 고개를 숙이고 살아갈 이유도 없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평가받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이런 논란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은 의외로 명확한 것 같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역사의 잘못까지 흐릴 필요는 없다. 역사를 정확하게 평가한다고 그 후손까지 공격할 필요도 없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것과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조상은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적어도 조상보다는 내가 훨씬 많이 결정할 수 있다. 좋은 조상을 가진 것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조상이 될 만한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은 족보가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조상의 잘못은 정확하게 기록하고, 부당하게 이어진 이익은 바로잡고, 조상의 훌륭함에는 존경을 보내면 된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행동을 물으면 된다.
당신의 조상이 누구였느냐보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개그맨 겸 방송인 황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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