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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팬덤이 곧 대중성

입력 : 2023-01-15 13:59:00 수정 : 2023-01-15 13: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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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영화’ 흥행이 화제다. 현재 흥행몰이 중인 두 일본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하 ‘슬램덩크’) 얘기다. 전자는 14일까지 누적관객 수 86만4178명을 동원, 역대 일본 실사영화 흥행 4위까지 올랐다. 애초 일본 실사영화가 80만 이상을 동원한 게 2006년 ‘일본침몰’ 이후 무려 16년 만이다. 한편 ‘슬램덩크’는 원작 만화에 노스탤지어를 지닌 3040 관객층 자극으로 14일까지 80만6495명을 동원한 상태. 입소문 뒷심이 좋아 향후 어디까지 기록이 쓰일지 기대된다.

 

이들을 ‘마니아 영화’라 굳이 칭하는 건 이들이 규모는 작지만 충성도는 높은 서브장르 영화란 점에서다. 그런데 그 규모가 점점 커진다. 일본 순애(純愛)영화 서브장르도 예전엔 분명히 이 정도 규모가 아니었다. 그러다 2017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46만8367명 관객을 동원하며 눈길을 끌더니, 2차 시장에 두각을 나타낸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로 이어졌고, 결국 ‘오세이사’ 80만 돌파까지 이르렀다.

 

‘슬램덩크’도 그 자체로만 보면 그저 ‘보헤미안 랩소디’와 유사한 노스탤지어 히트지만, 지금 ‘슬램덩크’만 툭 불거져 나온 게 아니다. 장기 프랜차이즈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도 ‘포켓몬스터’ 극장판도 모두 2022년 나온 최신판이 프랜차이즈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하에서 215만1861명을 동원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크게 보면, 지금 대중문화시장 전체가 같은 흐름을 겪고 있다. 이미 대중음악 신은 ‘팬덤이 곧 대중성’이란 국면으로 접어든 지 오래다. 모든 이의 취향을 어느 정도 맞춰주는 범용 대중 콘텐츠란 이제 그 범용성 탓에 어디서도 ‘콕 집어’ 역할 하기 힘들고, 압점 논리로 좁은 범주 취향을 공략하는 팬덤 전략이 대세란 것이다. 그 경향이 이제 대중음악에 이어 영화로도 넘어가고 있단 방증일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저 ‘마니아 영화’란 것도 다르게 파악될 수 있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위 두 일본 극장용 영화 콘텐츠 공통점은 모두 기본적으로 ‘IP 콘텐츠’란 점이다. ‘슬램덩크’ ‘귀멸의 칼날’ 등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오세이사’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등도 모두 원작소설이 한국서 영화보다 먼저 번역 출간된 경우다. 처음엔 영화가 반향을 일으키면서 소설도 같이 팔려나가는 계단식 2차 소비구도였지만, 이를 통해 ‘일본 순애(純愛) 콘텐츠’ 자체가 일정수준 이상 신뢰도와 충성도를 확보해가자 ‘오세이사’부턴 영화판의 국내 개봉 이전 원작소설이 일본보다도 많은 40만 부 가량 팔려나갔단 후문. 그렇게 미디어믹스가 기존 방향에서 역행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구도도 미국 배우 겸 감독 벤 애플렉이 지난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미래 극장용 영화 전망, 그리고 애플렉 이전 수많은 언론미디어에서 예측한 전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애플렉은 당시 인터뷰에서 “난 이제 ‘아르고’ 같은 영화는 극장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 본다. 지금이라면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질 것”이라며 “극장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점점 비싸지고 이벤트성 영화들이 될 것이다. 1년간 40편 정도 영화만이 극장 개봉되고, 대부분 IP, 속편, 애니메이션으로 채워질 것”이라 내다봤었다.

 

지금이 딱 그렇다. 현재 흥행 1위는 14일까지 926만5462명을 동원하며 1000만 관객을 넘보고 있는 ‘아바타: 물의 길’이다. 근본적으로 속편이자 테마파크 놀이기구와도 같은 체험형 엔터테인먼트로서 ‘극장서 관람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짚어주는 콘텐트다. 그리고 그 아래로 작은 이변을 낳고 있는 게 ‘오세이사’와 ‘슬램덩크’다. 규모면에서 크진 않지만 IP 기반 콘텐츠로서 정확히 팬덤형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야말로 “비싸면 만들려면 ‘아바타’처럼, 싸게 만들려면 ‘슬램덩크’나 ‘오세이사’처럼”이란 구도가 탄생하는 시점이다. 이렇다 할 시청각적 쾌가 따로 없는 중급 규모 영화들은 결국 IP 기반이라 불리는 ‘팬덤형 전략’을 취해야 극장서 승부를 걸어볼 만하단 뜻이다.

 

어찌 됐건 같은 시점 미국선 호러영화 ‘메간’이 ‘작은 영화’로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첫 주말 3042만9860달러를 북미시장서 벌어들이고, 심지어 개봉 첫날은 ‘아바타: 물의 길’까지 제치는 괴력을 발휘했다. ‘메간’은 코로나 19 팬데믹 동안 위력을 증명한 ‘호러 장르의 힘’ 증명 편이다. 좀처럼 극장을 찾게 되지 않는 팬데믹 동안에도 호러영화 흥행은 꾸준히 안정적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캔디맨’ ‘스크림’ 등 속편/리부트 영화들은 물론 ‘올드’나 ‘놉’ ‘스마일’ ‘바바리안’ 등 오리지널 영화들도 모두 기대를 뛰어넘는 성적을 보여줬다.

 

결국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중급 영화가 극장시장서 살아남는 방식은 이 두 가지 경향이 함께 가는 구도일 수 있다. IP 기반이거나, 장르 자체가 팬데믹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충성도 높은 팬층을 지니고 있거나. ‘오세이사’와 ‘슬램덩크’는 그 두 요소가 겸비된 경우로서 한국서 작은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끝으로, 이런 식으로 바라보다 보면, ‘슬램덩크’ 같은 ‘애니메이션+노스탤지어’ 콘텐츠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세이사’ 같은 순애(純愛) 콘텐츠는 왜 한국영화로 대체되지 않는지, 아니 요즘 들어선 왜 시도조차 잘 안 되는지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변 따위가 아니라 충성도 높은 시장이 바로 눈에 보이는데 왜 시장 대체에 들어가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80만 관객을 동원하는 정도론 수입가가 싼 일본영화로선 이익을 남길 수 있지만 직접 제작비를 투여하는 한국영화로선 해볼 만한 도전이 아니란 판단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자국 콘텐츠는 본래 살가운 스타파워 영향으로 동일 서브 장르 시도 시 해외 콘텐츠보다 큰 수익으로 돌아오곤 한다. 해볼 만하단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거기서부턴 ‘순애(純愛)는 해외 콘텐츠론 받아들여져도 자국 현실이 반영되는 한국 콘텐츠론 어렵다’는 식 기묘한 대중정서라도 존재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어찌 됐건 ‘오세이사’는 기대 밖 흥행 성공 덕택에 일본 배우로선 정말 오랜만에 주연배우 미치에다 슌스케 내한 이벤트도 예정된 상황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각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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