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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공조‘·‘육사오’·‘헌트’의 공통점은?

입력 : 2022-09-18 11:23:49 수정 : 2022-09-18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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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3편이 추석연휴를 장악하며 주간흥행 1, 2,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7일 개봉한 ‘공조 2: 인터내셔날’은 13일 손익분기점 350만을 넘겨 17일까지 439만231명 관객을 동원했고, 지난달 24일 개봉한 중급예산의 ‘육사오’도 12일 손익분기점 160만을 넘기며 17일까지 178만8666명을 동원한 상태. 셋 중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헌트’는 아직 손익분기점 435만 명엔 도달하지 못했지만 17일까지 431만8623명을 동원해 수일 내 손익분기 돌파가 확실시 된다.

 

그런데 위 3편 한국영화들엔 이상스러울 정도로 잘 언급되지 않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모두 ‘북한’을 중심 소재로 택하고 있단 점이다. ‘헌트’는 1980년대 국가안전기획부로 잠입한 북한 간첩을 색출하는 내용이고, ‘육사오’는 우연히 주운 1등 당첨 로또가 바람에 날려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자 그를 찾으려 월북을 단행하는 국군 말년 병장을 다뤘다. 그리고 ‘공조 2: 인터내셔날’은 2017년 작 전편과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숨어든 글로벌 범죄조직을 추적하려 남북한 형사가 서로 공조한단 설정이다. 속편에선 여기에 FBI 요원이 더해져 ‘남북미’ 공조수사가 이뤄진단 점이 다르다.

 

물론 ‘어쩌다 보니’ 이들 동일소재 영화들이 동시기 만나 나란히 1, 2,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건 맞다. 그러나 그렇게 ‘어쩌다 보니’라도 동시기 3편이 겹칠 만큼 해당소재 영화들은 꾸준히 만들어지고, 또 이들이 흥행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맞다. 한국 상업영화의 스테디셀러 소재 중 하나, ‘북한’이 다시금 부각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한국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가 된 건 사실상 6.25전쟁 직후부터다. 처음엔 이산가족 멜로드라마가 주류를 이루다 1960년대부터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 등 6.25전쟁 영화들이 당시로서 블록버스터 역할을 하며 시대를 풍미했다. 1970년대부턴 북한 간첩을 다룬 첩보물들도 추가됐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 서서히 퇴조되기 시작한다. 6.25전쟁 콘텐츠가 KBS ‘전우’나 MBC ‘3840 유격대’ 등 안방극장으로 자리 잡는 통에 유료미디어 콘텐츠가 차별성을 갖기 어려웠던 탓도 컸고, 똑같은 반공영화 틀에서만 내용과 형식이 맞춰지니 한계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또 물밀듯이 쏟아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비해 규모와 기술력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웠던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다른 시각’이 가능해지면서 ‘남부군’ ‘그 섬에 가고 싶다’ ‘태백산맥’ 등 베스트셀러 원작 6.25전쟁 영화들이 흥행을 거두다 1999년 ‘쉬리’와 ‘간첩 리철진’ 성공을 계기로 북한 소재 영화들이 비로소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 축을 담당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게 된 흐름. 그렇게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등이 연속 대히트를 기록했고, 소재 쏠림현상으로 잠시 수그러들었다 다시 2010년대 들어 ‘의형제’ ‘포화 속으로’ ‘고지전’ ‘은밀하게 위대하게’ ‘베를린’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공조’ ‘강철비’ ‘공작’ 등 히트작들이 끊이지 않는 흐름이다.

물론 북한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도 존재한다. 1999년 북한 소재 블록버스터가 포문을 연 이후로도 그렇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화 속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포용적이고 친화적이냐 엄밀한 국가주의 입장에서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느냐의 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중요시됐다면, 이후부턴 그저 북한을 일종의 ‘장치’로서만 활용하는 분위기다. 특히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나 네이버 웹툰 ‘김부장’ 등 여타 대중문화 미디어에서 이런 분위기가 노골적이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이제 영화로도 옳아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북한을 바라보는 정치사회적 시각차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사실상 ‘끝난’ 시대의 북한 소재 콘텐츠라고도 볼 만하다. 김정일 체제를 지나 김정은 체제가 성립되면서 특히 그렇게 됐다. 그러다보니 그저 플롯 ‘장치’로서 북한이란 소재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든 이젠 딱히 논란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표현이 자유로워진 측면도 존재하고, 또 단순 편의적 설정 정도로 그 무게가 가벼워진 측면도 존재한다. 콘텐츠에서 어떤 식으로 북한을 묘사해 끼워 맞추든 실제 당면한 현실은 달라질 게 없단 점을 모두 알게 됐기에 그렇다.

 

어찌됐건 그래도 북한 소재는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만의 독특한 설정이자 장치로서 내수시장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나아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등 글로벌 콘텐츠에서도, 아니 어쩌면 글로벌 콘텐츠이기에 더더욱, 북한은 한국만의 차별성 있는 설정으로 끼워 넣어지고 있다. 그럼 북한을 중심 소재 삼은 콘텐츠는 이른바 ‘글로벌 상품’으로도 역할 할 수 있는 걸까. 전반적으론 아직 그럴 성 싶지 않지만, 북한 소재가 전통적으로 유난히 잘 먹혀온 해외시장이 존재하긴 한다. 옆 나라 일본이다.

 

북한을 명백한 국가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정도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높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북한에 대한 일본인들 관심은 실제로 지대한 수준이다. 그만큼 북한을 중점 소재로 삼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도 일찌감치 반응해왔다. 한국영화 사상 일본서 처음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는 2000년 ‘쉬리’였고, 총수익 18억5000만 엔을 벌어들이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X-맨’ ‘글래디에이터’ 등보다도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듬해 2001년엔 같은 북한 소재 ‘공동경비구역 JSA’가 11억6000만 엔을, 2004년엔 ‘태극기 휘날리며’가 15억 엔을 벌어들여 북한 소재 콘텐츠에 남다른 관심을 증명했다. 근래 넷플릭스 배급된 ‘사랑의 불시착’의 일본 내 현상적 인기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생각보다 이 부분을 좀 더 진지하게 연구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 소재의 대중문화 활용도가 높아져가는 상황이라면 그렇고, 북한에 대한 국내 시각과 해외의 그것이 점차 일치돼가는 현실이라면 더 그렇다. 단순히 내수용 소재라거나 글로벌시장서 소위 ‘액센트’를 주는 액세서리 설정 정도로 치부해버리기엔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한국영상산업에서 북한 소재 콘텐츠는 ‘너무 많이’ 나온다. 당장 추석연휴 1, 2, 3위를 장악한 ‘공조 2: 인터내셔날’ ‘육사오’ ‘헌트’ 현황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이들의 글로벌 타깃 시장과 그 어필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건 산업적으로 당연한 수순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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