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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브로커’는 韓 영화일까

입력 : 2022-04-28 17:45:42 수정 : 2022-04-28 17: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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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측에서 올해 제75회 영화제 초청작들을 공개했다. 그리고 그 중심인 경쟁부문엔 한국영화 2편이 포함돼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그런데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대중문화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선 기묘한 논쟁이 시작됐다. 아무리 ‘브로커’가 한국서 제작해 한국 얘길 다룬 영화라 해도 일본감독 고레에다가 만든 영화를 ‘온전한 한국영화’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

 

 그러자 국내 언론 미디어에서도 이를 받아 지난 한 주 내내 ‘브로커’ 상황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중 일부는 ‘브로커’ 투자와 제작, 배급을 맡은 건 한국 측이므로 명백히 한국영화라 주장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언론 미디어들은 이른바 ‘제3의 논지’를 펼쳤다. 이제 더는 영화에 ‘국적’을 따지는 건 무의미해지고 있단 것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영화 자본과 제작이 글로벌화되면서 더더욱 그런 흐름이 강화됐단 설명이 덧붙는다.

 

 큰 차원에서 맞는 얘기다. 그런데 상황은 사실 그보다 좀 더 복잡하다. 먼저 ‘영화의 다국적화’는 사실 세계 기준으로 1960년대 정도부터도 진행돼오던 일이란 점이다. 자본 차원이든 인력 차원이든 모두 그렇다. 그럼에도 국내서 ‘브로커’를 놓고 이렇듯 혼란스러워하는 건, 이 같은 흐름을 유독 ‘한국서만큼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 보는 게 맞다. 특히 ‘브로커’처럼 온전한 메인스트림 영화 차원에선 사실상 처음 겪는 일에 속한다. 그만큼 한국은 세계 영화 강국들 중 다국적화 흐름에 가장 닫혀있던 영화산업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말마따나, 투자와 배급이 해외 몫인 한국제작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처음 겪어본 게 ‘오징어 게임’ 등 넷플릭스 콘텐츠를 통해서다. 불과 2~3년 정도밖에 안 됐다. 영화의 ‘작가’로 여겨지는 감독자리가 외국인에 맡겨지는 상황을 메인스트림 영화로 겪는 건 또 전혀 새로운 일이다. 무엇이든 처음 겪는 일들은 늘 당혹스럽고, 또 혼란스러운 법이다.

 

 일단 세계영화 메카 미국 입장에서 외국인감독이 미국영화 연출을 맡는 일은 흔하다. 당장 한국감독 중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나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등이 떠오른다. 나아가 ‘브로커’처럼, 그 나라 사회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 내면과 본질을 담아내는 기획들도 종종 성립된다. 한 나라 현실과 공기는 오직 그 나라 감독에 의해서만 제대로 표출될 수 있단 도그마에서 벗어난 셈이다. 오히려 자국감독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들을 신선한 관점으로 재해석해 평가가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1960~70년대 미국사회상을 풍자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체코감독 밀로쉬 포먼이 연출했고, 아메리칸드림 허상을 다룬 ‘아틀랜틱 시티’는 프랑스감독 루이 말이 연출했다. 미국서부 멘털리티를 조명한 영화 두 편, ‘브로크백 마운틴’은 대만감독 이안이, ‘노매드랜드’는 중국인 감독 클로에 자오가 연출했다. 비단 미국만의 얘기도 아니다. 이탈리아 무대로 칠레 시인과 이탈리아 시골청년의 우정을 다룬 ‘일 포스티노’는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 3개국 자본으로 영국감독 마이클 래드포드에 의해 연출됐다. 프랑스의 알제리인 학살을 다룬 프랑스영화 ‘히든’은 오스트리아감독 미카엘 하네케 작품이다.

 

 그리고 사실 한국영화감독들도 그간 이 같은 흐름에 적잖이 동참해왔다. 미국영화계에 진출한 박찬욱, 김지운 감독 등 외에 가까운 아시아권 영화산업으로 진출한 경우도 많다. 그간 이재한, 곽재용, 김태균 감독 등이 일본영화 또는 한일합작영화로서 일본어 영화를 연출한 바 있고, 중국영화계 진출은 그보다 훨씬 많다. 조진규, 박유환, 허인무 감독 등이 중국서 제작하는 중국영화를 연출하고, 이재한 감독과 곽재용 감독은 일본영화에 이어 중국영화도 연출해 글로벌 이력을 챙겨온 바 있다. 이렇게 보면 정반대 경우, 즉 해외감독이 한국서 메인스트림 영화를 연출해본 적은 없단 점이 오히려 특이한 경우가 된다.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한국영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 빠른 시일 내에 상업영화 산업체계와 프로덕션 밸류 구축에 성공한 경우다.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처음 천명한 게 1998년 ‘퇴마록’이었지만, 불과 5년 뒤인 2003년이 되자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등 글로벌 차원 열광적 반응을 얻어낸 장르영화들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한국사회 압축성장 신화가 그대로 재연된 흐름이다. 이렇듯 자국 내에서 신세대들이 연일 튀어나와 분위기를 환기하고 시장을 개척해내니 그 중간과정에서 가까운 해외 영화인들을 영입해와 분위기를 재편하는 과정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단 것.

 

 또 다른 원인으론, 아무래도 강한 민족주의 분위기가 인적교류 및 투자 글로벌화를 막아 세운 점을 짚을 수 있다. 한국영화 1차 소비층인 한국대중 자체가 그런 흐름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2006년 ‘괴물’부터도 그랬다. 칸 마켓에서 일본 해피넷픽쳐스와 선판매 320만 달러 계약 외에 투자금도 120만 달러를 받아 ‘자본의 국적’상 몇몇 해외자료에서 한일합작영화로 표시되는 통에 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문화 콘텐츠에도 민족주의적 자부심을 부여코자 하는 대중심리 탓에 각종 다양한 다국적화가 꺼려진 부분이 존재한단 얘기다.

 

 어찌됐건 지난해 ‘오징어 게임’과 이번 ‘브로커’ 상황을 겪으며 한국 언론미디어에서도 이제 서서히 ‘자본이나 감독의 국적 등과 관계없이 제작을 컨트롤하는 제작사만 한국회사면 한국영화’란 인식이 들어서는 모양새다. 그런데 영화 다국적화의 본산과도 같은 미국선 그보다 한발 더 나가는 추세다. 198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파리, 텍사스’가 한 예다. 미국 텍사스를 무대로 텍사스인들 멘털리티를 파헤치고 있지만, 영화 자체는 독일(당시는 서독)과 프랑스 자본에 독일제작사에서 독일감독 빔 벤더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 탓에 1984년 당시엔 미국 골든글로브상에서도 ‘외국영화(Foreign Picture)’ 부문 후보로 올랐었지만, 2010년대 들어 분위기가 점차 달라지고 있다. ‘이지 라이더’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등 아메리칸 뉴 시네마 계보를 잇는 영화로 평가받으며, 엔터테인먼트위클리 등 유수 미국 언론미디어로부터도 ‘최고의 텍사스 영화’ 평가를 얻고 있다. 미국영화 전통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단 얘기다. 물론 민족국가 아이덴티티가 강한 한국서 이 정도까지 흐름이 진행되는 건 무리일 수 있겠지만, 어찌됐건 그렇게 문화 콘텐츠 ‘국적’이란 개념과 인식은 향후 조금씩 더 넓은 방향으로 진행되리란 점을 의심하기란 어렵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스포츠월드>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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