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세계는 열광하는데…‘태권도 영화’ 왜 없을까

입력 : 2021-07-19 07:10:00 수정 : 2021-07-18 16:30:20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갑자기 대중문화계에서 태권도가 화제 중심에 섰다. 지난 14일 방영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멀게는 지난달 15일 미국서 방영된 NBC 경연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 때문이다. 먼저 지난 6월부터 방영된 ‘아메리카 갓 탤런트’ 시즌16 3회차에 한국의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출연, 현란한 태권도 공연으로 격찬 받으며 생방송 직행 ‘골든 버저’를 얻어낸 바 있다. 그리고 이를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다루면서 화제몰이가 시작된 것. ‘아메리카 갓 탤런트’ 공식 유튜브의 시범단 영상도 불과 한 달여 만에 1500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에도 한국 태권도 시범단이 해외 유명방송에 출연하는 일은 적지 않았다. 미국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9년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이 미국 CBS 경연프로그램 ‘더 월드 베스트’에 출연, 준우승을 차지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아메리카 갓 탤런트’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시즌16까지 롱런하면서도 여전히 회당 평균시청자 700만 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미디어 파급력도 대단하고, 스타들도 많이 배출했다.

 

 그런데 그렇게 유명세를 치르면서, 특히 ‘아메리카 갓 탤런트’가 방영된 미국 중심으로 몇몇 주목할 만한 인터넷 반응들이 포착된다. 대표적으로, ‘아메리카 갓 탤런트’를 보고 태권도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추천할 만한 태권도 영화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에 한국영화 마니아들도 선뜻 답을 못한다. 실제로 그런 영화는 한국서 거의 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어색한 일이긴 하다. 자국무술 영화들을 왕성히 만들어온 주변 아시아국가들, 홍콩, 일본, 태국 등지와 비교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태권도 영화 기억이 희대의 졸작으로 잘 알려진 2004년 작 ‘클레멘타인’이란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후론 기억 자체가 희미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태권도 영화’라 이름 붙여질 서브장르 영화들이 왕성히 나오던 때는 따로 있었다. 1970년대 중후반, 이른바 ‘권격영화’ 붐 당시다.

 

 당시 할리우드를 뒤흔든 이소룡 열풍 탓에 한국서도 ‘세계에 먹힐 무술영화’ 콘셉트로 이런저런 권격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챠리 셸, 바비 킴, 알렉스 리 등 서양이름의 재미교포 태권도 사범들을 초빙해와 ‘용호대련’ ‘죽엄의 승부’ ‘파라문’ 등 일련의 태권도 액션영화들을 만들어냈다. 미국서 무술도장을 열어 사범으로 성공한 뒤 홍콩으로 돌아와 영화계 신화가 된 이소룡 궤적을 일종의 홍보요소로서 카피했던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 조악한 완성도 탓에 금세 붐은 사그라지고, 1980년대 들어선 이들 재미교포 태권도 사범들이 미국서 직접 저예산 액션영화를 만드는 추세로 옮아갔다.

 

 한국서 권격영화를 만들던 박우상 감독이 미국으로 건너가 리처드 박이란 이름으로 ‘차이나타운’, ‘닌자 터프’ 등을 만들고, 두 영화에 출연한 태권도 사범 필립 리가 1989년 에릭 로버츠, 제임스 얼 존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서도 미국서도, 사실상 거기까지였다. 한국선 서브장르 이미지 자체가 극도로 악화돼 내수용 태권도 영화는 사실상 성립이 불가능해졌고, 미국서도 1990년대 중반 성룡, 이연걸 등 홍콩 쿵푸스타들이 직접 할리우드로 넘어가면서 조악한 저예산 태권도 영화들론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 온갖 장르실험들이 이뤄지던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에마저 태권도 영화가 부활하지 못했단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한국선 무술 스턴트배우 양성 자체가 상당히 뒤늦었다. 1998년 정두홍 무술감독의 서울액션스쿨이 최초다. 1970년 치바 신이치의 재팬액션스쿨이 문을 연 일본,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런저런 경극학교를 통해 무술배우 양성이 시작됐던 홍콩 등지와는 기반 자체가 달랐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스턴트 액션 연출 자체는 상당부분 따라잡는 데 성공했지만, 그 즈음부턴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애초 한국은 ‘액션 전문배우’란 개념 자체가 잘 성립되지 않는 분위기였단 점이다. 얼핏 아리송해 보이지만, 사실 단순한 얘기다.

 

 한국대중은 아무리 액션영화라도 능란한 연기로 선보이는 드라마틱한 캐릭터들을 선호해왔단 것. 먼저 ‘사람’이 사실적으로 성립되고, 주변과의 ‘관계’ ‘갈등’ 등이 리얼한 연기로 묘사돼야 반응했다. 이는 연기라곤 해본 적 없는 태권도 사범들이나 스턴트 전문배우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턴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져, 성룡마저도 흥행타율이 떨어지고 주윤발 등 드라마 배우들의 홍콩 느와르 시대로 교체되고 만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액션영화의 새 아이콘 마동석 역시 스타로 급부상한 건 2013년 ‘이웃사람’으로 백상예술대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 이후의 일이다.

 

 이미 미국 내 태권도장만 3만5000여 곳, 전체 태권도 인구는 무려 800만에 이른단 보도다. 거기다 이제 초대형 예능프로그램의 가장 큰 화젯거리 중 하나로 태권도가 떠오른 상황이지만, 그 기반으로 팔 수 있는 한국대중문화상품은 전무한 실정. 향후로도 이렇다 할 가능성이 보이진 않는다. 이런저런 아시아 무술영화들이 미국서 일정수준 이상 시장파이를 유지하며, 북미 비(非)영어 영화 최고 흥행작 자리를 아직까지도 ‘와호장룡’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아쉬운 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특히 저 미국 800만 태권도 인구 베이스가 참 아깝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태권도 영화 서브장르는, 1980년대에 ‘베스트 키드’ 등이 그랬듯, 한국이 아닌 미국서 다시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어딘지 아이러니한 일이긴 하지만, 본래 대중문화 트렌드란 게 그렇다. 사연들도 복잡하고 이런저런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클릭돼 일어나는 현상이다. 누군가 나서 컨트롤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이렇듯 상황이 갑갑해지게 된 ‘경로’ 정도는 알아두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향후 벌어질 수 있는 또 다른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tvN ‘유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