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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K팝 세대론, (여자)아이들을 주목하라

입력 : 2021-01-25 08:00:00 수정 : 2021-01-24 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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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K팝 신에서 생성된 이런저런 논쟁거리 중 하나로 이른바 ‘K팝 세대론’을 꼽을 수 있다. ‘지금’ 나오고 있는 K팝 팀들은 ‘3세대’인가 ‘4세대’인가 문제. 일단 연예미디어들부터가 혼란스런 입장을 취했다. 같은 팀을 두고 어디선 4세대라 적고, 다른 곳에선 3세대, 심지어 3.5세대라 부르던 곳들도 있었다. 이에 K팝 팬들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큰 차원에서, 이 같은 ‘K팝 세대론’은 실제적으로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접근할 일은 아니’란 입장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 탄생배경부터가 좀 어처구니없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팬덤 전쟁’ 양상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3세대라 불리는 팀들 팬덤이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3세대’ 개념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와 미디어가 이를 받아 적은 순서. 기존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팀들에 ‘이제 넘어간 페이지’ 인상을 주려는 일종의 인상조작(?) 의도가 강했다.

 

 그러니 지금도 어디선가 ‘4세대’가 거론되기만 해도 날선 반응들이 나오는 것이다. 탄생배경에 걸맞게 “3세대 그룹들 아직 건재한데 무슨 4세대냐” 등 반응이 대부분이다. 세대 구분 근거에 대해서도 “일등그룹이 바뀌어야 세대도 바뀌는 것”이란 식 전형적인 ‘팬덤 전쟁’ 논리밖에 더 안 나온다. 사실상 그게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다소 유치하고 어색한 배경에도 불구, 저 세대 개념이 이런저런 전문미디어들에서조차 적극적으로, 또 꾸준히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니 ‘그렇게 나눌 만한 근거’가 전혀 다른 측면에서 우연찮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 ‘근거’를 이해하기 위해선, 좀 생뚱맞을 수 있지만, 지난 11일 미니앨범 4집 ‘아이 번(I burn)’을 발매한, 몇몇 미디어에서 ‘4세대’로 거론되는 걸그룹 (여자)아이들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7일 초동 마감까지 ‘아이 번’은 11만5500여장이 팔려나갔다. 소폭이지만 지난해 4월 미니앨범 3집 ‘아이 트러스트(I Trust)’ 11만2000여장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며 (여자)아이들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새 커리어 하이는 꽤나 역경(?) 끝에 얻어진 것이었다. 한 마디로 줄이자면, (여자)아이들 팬덤 및 판매량 큰 축을 담당하던 중국 측 음반 공동구매량이 40%가량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얻어진 결과란 것.

 

 원인은 지난해 12월 또 다른 걸그룹 아이즈원 컴백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탄소년단 밴플리트상 수상소감 이후 중국 정부발(發) 한류 블로킹이 이뤄져 전반적으로 K팝 팀들 판매량이 떨어지고, 그 틈새로 악개(악성 개인팬)들이 치고 들어와 자신들이 지지하는 멤버 노래분량 등에 불만을 토로하며 보이콧에 들어간 배경.

 ‘그럼에도’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는 것. 이는 커리어 하이까진 아니어도 똑같이 엄청나게 빠진 중국 측 물량을 상당부분 극복해낸 아이즈원 상황과 맥락이 같다. 그를 보충할 수 있을 만큼 ‘국내 팬덤’이 늘어났단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 대체 무슨 계기가 있었기에 국내 팬덤 유입이 활성화된 걸까. 사실 ‘그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중국 측 물량소비에 힘입어 바로 직전 음반판매 성과 또는 일련의 성장세가 전문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그에 흥미를 느껴 들여다보다 ‘입덕’해버린 국내 팬들이 늘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현상이 K팝 ‘4세대 선언’, 나아가 지금의 K팝 세대 구분 자체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먼저 서두에 제시한 문제, 즉 ‘왜 미디어는 그저 ‘팬덤 전쟁’ 차원에 불과했던 지금의 세대 구분을 받아들였는가’ 부분. 쉽게, 그처럼 유치한 배경으로 탄생된 개념이지만 이게 참 절묘하게도 그간 K팝 신의 산업적 패러다임 변화를 정확히 나눠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을 가장 잘 설명한 게 지난해 6월 아이돌 전문웹진 아이돌로지에서 게재한 칼럼 ‘2020 아이돌판 세대론’이다.

 

 칼럼은 1~4세대까지 진행된 K팝 아이돌산업 흐름을 받아들이며, 그 산업적 패러다임 변화를 지적한다. 1, 2세대야 대부분 뚜렷이 알 수 있는 차이고, 중요한 건 3세대와 4세대 구분이다. 칼럼은 3세대 특징을 ‘K팝의 탈영토화’로 규정한다. 유튜브 등 넷 기반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가 K팝을 동시에 소비하며 본격적으로 국경의 속박에서 벗어난 시점이란 것. 그럼 4세대는? ‘K팝의 재영토화’로 규정된다. 미(美)대륙 시장 장벽까지 넘어서 완전한 탈영토화를 이룬 지금, ‘K팝의 주도권은 더 이상 한국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단순한 얘기다. 3세대까지만 해도 국내 K팝 팬들 입장은 “한국서 떠야 해외에서도 뜬다”는 개념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카드(KARD) 등 해외인기가 유난히 높은 팀도 존재하긴 했지만, 사실상 유튜브 인기에 불과했을 뿐 그만한 실질수익을 가져다주진 못했다. 그밖에 실질수익 차원으로 성립되기 힘든 동남아시아 인기 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일본 등 캐시카우 시장에서 수익을 가져오고 그를 통해 위상을 재정립하려면 일단 국내 인기가 먼저여야 했다. 그만큼 일본을 위시로 한 K팝 팬들도 ‘한국 내 인기’에 상당히 민감했단 얘기다.

 

 이 같은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게 대략 2년여 전부터다. 갑자기 중국 K팝 팬덤의 한국 피지컬 음반 구매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여러 팀들 ‘한국 내 인기’에 상대적으로 덜 구애받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중국 덕택에’ 국내 위상 자체가 다시 씌어지는 경우들도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초동판매량 절반 이상이 중국서 구매된 경우들, 이른바 ‘차이나 신드롬’ 시작이었다. ‘K팝의 주도권은 더 이상 한국에 귀속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국내 K팝 팬들은 이 같은 흐름을 어디까지나 ‘중국이란 이름의 예외’ 정도로만 취급했다. ‘한한령(限韓令) 탓 자국 내 K팝 소비가 어려워진 중국 팬덤 갈증에서 비롯된 지극히 예외적인 케이스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제 중국을 넘어 미국대륙 팬덤으로부터도 이달의소녀, 에이티즈 등 판매량 급증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이달의소녀는 빌보드 핫200 차트 112위까지 치고 올라갔고, 북남미와 유럽대륙에 걸친 에이티즈 해외 팬덤은 음반은 물론 지니 등 국내 음원차트에까지 진출(?), 취약한 음원순위를 올려놓는 데 역할하고 있다.

 

 이제 무엇이 국내 팬덤 지분이고 무엇이 해외 팬덤 그것인지 구분도 어려워지고, 구분해봤자 사실상 무의미해진 시점이다. 그리고 이제 (여자)아이들 ‘아이 번(I burn)’ 상황까지 왔다. 해외 팬덤이 일정수준 ‘빠져도’ 커리어 하이는 지속되더란 것. 해외서 먼저 코어팬층이 생성돼 팬덤형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진동으로 국내가 고조된 경우, 즉 ‘흐름’ 주도권이 해외서 생성된 경우다. 이달의소녀, 에이티즈, 드림캐쳐 등도 사실상 이와 유사한 흐름을 타고 있다.

 

 물론 이밖에도 ‘3세대’로 분류되는 팀들과 이후 팀들이 산업적 패러다임 측면에서 다른 부분은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2월3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0 음악 산업백서’에서도 언급된 부분, 즉 ‘미디어 환경이 더 작아지고 더 개인화되면서 그 밀도가 더 높아’진 영향이 아이돌산업 차원까지 번진 점을 들 수 있다. 이제 보이그룹은 물론 기존 ‘대중성의 걸그룹’까지도 온전히 ‘팬덤형’ 양상으로 통합된 분위기란 것이다.

 

 위 아이돌로지 칼럼은 이렇듯 달라진 패러다임에 근거해 보이그룹은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부터, 걸그룹은 (여자)아이들, 이달의소녀, 아이즈원 등부터 4세대로 보고 있다. 팀에 따라 조금씩 이견의 여지는 있겠지만, ‘대략’ 그 정도가 패러다임 변화기점이 되리란 점은 대부분 이해할 듯하다.

 

 그런 점에서, ‘굳이’ 지금의 K팝 세대론 중심으로 K팝 팀들에 ‘세대’ 개념을 붙여 이해하려 한다면, 지금은 이미 ‘4세대’가 한창 진행되는 시점이란 점을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일등그룹이 누구냐’는 수준 팬덤 논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산업 흐름을 다루는 전문미디어 입장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자)아이들의 이번 ‘아이 번(I burn)’ 케이스가 이에 힘을 실어준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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