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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글로벌 배우’ 윤여정

입력 : 2020-11-29 10:24:46 수정 : 2020-11-29 10: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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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김용학 기자] 배우 윤여정이 13일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인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제작발표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김용학 기자 yhkim@sportsworldi.com 2020.01.13.

 배우 윤여정 근래 행보가 화제다. 먼저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 시즌3 촬영소식. 2017년 시즌1이 인도네시아 발리의 길리 트라왕안섬, 이듬해 시즌2가 스페인 테네리떼섬 가라치코에서 촬영한 것과 달리, 코로나19 팬데믹 탓 이번엔 국내 전남 구례가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식당’은 시즌1 최고시청률 14.1%, 시즌2 16.0%를 기록한 tvN의 대히트 효자예능이다. 시즌3는 2021년 1월 편성 예정이다.

 

 한편, 윤여정 ‘본업’ 연기 쪽으론 더욱 이목이 쏠린다. 재미교포감독 정이삭이 연출한 미국영화 ‘미나리’를 통해 내년 4월 제93회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 ‘미나리’는 1980년대 한국 이민자가족이 미국 시골서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선 공개돼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예측사이트 어워즈데일리에선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후보지명 가능성을 4순위(후보는 총 5명)로 예측했고, 또 다른 예측사이트 골드더비에선 5순위로 보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사실 윤여정이 재미교포감독 미국이민자 관련 영화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이다. 1978년 개봉한 재미교포감독 홍의봉 연출작 ‘코메리칸의 낮과 밤’이 먼저다. 윤여정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당시 미국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2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한 뒤 잠정은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살 때 일이다. 이에 영화포스터에까지 ‘재미교포 윤여정’이라 적어놓은 점이 재밌다.

 

 이후 1983년 한국으로 돌아와 1985년 작 영화 ‘어미’부터 다시 커리어를 시작한 순서지만, 어느 순간, 정확히는 60대를 넘어선 2010년대부터 윤여정은 저 미국생활 당시 익힌 영어와 글로벌감각으로 새롭게 커리어를 재편하고 있다.

 

 이른바 ‘윤여정 예능’ 시작점인 2013년 tvN ‘꽃보다 누나’부터가 그랬다. 터키와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콘셉트에서 윤여정의 영어실력과 글로벌감각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가능성을 발견해 해외로케 ‘윤식당’을 맡겨버린 순서다. 윤여정의 첫 할리우드 진출, 즉 2015년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 8’ 캐스팅도 여기서 비롯됐을 수 있다. 함께 출연한 마동석, 차인표 등이 윤여정처럼 미국서 살아본 경험이 있단 점에서 특히 그렇다. 출연 한국인배우 중 주연 배두나 다음쯤 분량을 소화하며 주목받아, 비록 정규 시리즈화는 불발됐지만, 미국 TNT 드라마 ‘하이랜드’ 파일럿에 캐스팅돼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곤 이제 ‘미나리’다.

 

 그렇게 윤여정은 이제 ‘원로’ 소릴 듣는 60대 이상 국내배우들 중 유일하게, 그리고 한국배우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눈에 띄는 정도로 ‘글로벌’ 수식이 자연스러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영어권 중노년 배우로서 이례적 행보로 보이지만, 해외에 비슷한 사례가 아예 없었던 건 또 아니다.

 

 대표적 예로, 2014년 타계 직전까지 일본서 ‘국민배우’ 소릴 들어온 타카쿠라 켄 경우가 있다. 본래 ‘의리 없는 전쟁’ 등 협객영화로 인기 끌던 액션배우였는데, 탁월한 영어실력 덕택에 1970년 로버트 앨드리치 감독, 마이클 케인 주연 할리우드영화 ‘불타는 전장’에 캐스팅됐다. 영어대사가 있건 없건, 일단 영어사용 감독 및 캐스트, 스태프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조건이 중요시됐기 때문이다.

 

 이후 타카쿠라는 시드니 폴락 감독 1975년 작 ‘암흑가의 결투’, 리들리 스코트 감독 1989년 작 ‘블랙레인’, 프레드 쉐피시 감독 1992년 작 ‘미스터 베이스볼’ 등 다수 할리우드영화에 주요역할로 출연하며 활동영역 확대를 이룬다. 특히 ‘블랙 레인’에서 그의 첫 영어대사 “I do speak f(xx)king English”는 그 독특한 존재감을 널리 알린 대사로 오래 기억된다.

 

 그런데 이는 사실 좀 더 넓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애초 타카쿠라 켄 같은 ‘일본배우’를 할리우드가 왜 그리 요구했느냐는 점에서다. 쉽게, 당시 일본과 일본문화 자체가 서구사회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1950~60년대 걸친 서구사회 오리엔털리즘 붐이 존재했고, 1964년 도쿄올림픽 전후로 그중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이 팽배해졌다. 그러니 할리우드도 일본과 일본인을 반영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었다. 비단 제2차 세계대전 소재 외에도, 1967년엔 ‘007 두번 산다’에서 제임스 본드가 일본무대로 모험을 펼쳤고, 1971년 ‘레드 썬’에선 19세기 미국서부 무대로 찰스 브론슨, 알랭 들롱과 함께 사무라이로 분한 미후네 도시로가 변종 웨스턴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세계가 일본과 일본문화에 관심이 집중된 때다보니, 이를 반영해줄 일본배우, 그중에서도 영어가 가능해 불편 없이 프로덕션을 진행할 수 있는 배우, 또 그중에서도 본국서 이미 연기로 검증받아 위상이 확고한 중견배우가 필요해진 것. 여기에 중년을 넘어선 타카쿠라 켄이 낙점된 셈이다.

 

 많은 점에서 1960~70년대 일본이 받았던 ‘아시아문화 대표’ 격 스포트라이트는 이제 한국으로 집중되는 상황이다. 아니, 오히려 당시 일본대중문화 성과보다 훨씬 거창하다고 볼 만하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측에서도 한국배우 수요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김윤진, 이병헌 등에 이어 마동석까지 마블영화 캐릭터로 낙점된 상황이다. 이제 타카쿠라 켄이 1980~90년대 맡았던 60대 이상 탄탄한 주조연 급으로도 요구가 시작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미나리’ 같은 영화가 미국 내 펀딩에 성공해 성공적으로 제작되고, 선댄스영화제 관객상까지 받아내는 분위기다. 향후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릴 수 있다.

 

 ‘미나리’가 과연 아카데미상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 진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후보지명을 못 얻더라도 윤여정은 할리우드 측에 눈도장 하난 확실하게 찍어둔 셈이 됐다. 윤여정으로선, 최소 배우란 직업적 입장에서 ‘잃어버린 시간’에 가까웠던 미국시절이 ‘의미 있었던 시간’으로 되돌아와 보상받는 시점일는지 모르겠다. 나아가 지금 같은 K-컬쳐 일대도약기에, ‘의도치 않게 글로벌 준비가 돼있던’ 이들 각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낼 시점이기도 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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