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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준의 클래식 음악 속 인문학 ] 바흐와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의 성가대

입력 : 2020-05-21 10:58:33 수정 : 2020-05-21 14: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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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합창 음악들은 현존하는 음반들의 계보를 따질 때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로 기원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를 비롯하여 2차대전 이후의 푸르트 뱅글러, 오토 클렘페러, 마우어스 베르거등 칼 리히터에 이르기까지 이름값으로만 해도 비싸게 거래되는 그들의 음반은 대부분 대 편성이고 템포가 느린 편이다. 

 

패전 후 독일의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또는 넘쳐나는 음악인 실업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흡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음악적 구성과 분위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조슈아 리프킨‘부터이다. 

1981년 지휘자이자 학자, 작곡가인 ’조슈아 리프킨‘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교회음악을 작곡, 진행 할 때 ’One Voice Per Part‘ 즉, 한 성부당 한 명씩만 배치했다고 주장하면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휘자 앤드류 패롯은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들 모두가 합창단은 언제나 규모가 커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S,A,T,B, 4명의 가수로 이루어진 것 보다)"

처음에는 기름기 쪽 빠진 풀죽 같은 그 음악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하거나 외면했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사료와 악보의 면밀한 분석을 근거로 그 학설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특히 앤드류 패롯(Andrew Parrott)이나 폴 매크리쉬(Paul McCreesh), 지기스발트 쿠이겐(Sigiswald Kuijken), 콘라드 융해넬 (Konrad Junghaenel)등의 음반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런데 시대적 음악의 유형을 따지기 이전에 인간의 성향을 생각해 본다면, 소규모보다는 대 편성 합창이 인간의 말초신경을 더 자극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시대적 음악(원전연주)으로 해석해서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도 세월이 지나면서는 굳이 틀에 박힌 연주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것은 음악 소비의 주체인 현대 팬과의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바흐 칸타타 대부분이 예배 전 또는 예배 도중에 삽입되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소규모 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바흐라고 헨델의 메시아처럼 화려한 음악적 구성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당시 독일북부에서 가장 권위있는 음악가 ’북스데후데‘에게 영향을 받고 와서 작곡한 오르간곡 ’토카타와 푸가‘는 얼마나 웅장하고 현란한가. 당시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미친 듯이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한다‘며 탐탁지 않아 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곡이 되었다.

 

소년합창단과 성인 솔리스트들의 연습, 지휘, 학생들의 라틴어 교육, 특별절기에 쓸 작곡 등, 늘 한정된 인원과 구성으로 음악적 표현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바흐였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었던 라이프치히 시 당국은 ’교회음악이 너무 웅장하다‘면서 감봉처분을 내렸다는 일화도 있었을 만큼 그의 직업적 환경은 매우 열악했으며 음악적 스케일에 대한 욕구는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최근 교회들이 대형화되면서 큰 공간에 걸맞게 합창단도 점점 대형화되고 있다. 

 

케이블TV로 보았던 한 대형교회의 성가대는 어림잡아 500명은 족히 돼 보였다.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성가대의 압도적인 음량에 큰 감동을 받았으리라.

 

‘이런 대규모의 교회의 음악적 환경을 바흐가 접했다면 얼마나 부러웠을까?’하고 상상을 해 본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은 그런 대규모의 합창을 자제해야만 한다.

 

수 백명의 합창단이 내뿜는 것은 신앙의 열기뿐만이 아니라 현 상황에서 가장 조심 해야될 개개인의 비말도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신자의 의지나 신앙과 상관없이 전파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조금 완화된다 해도, 당분간은 조슈아 리프킨의 주장대로 ’One Voice Per Part‘ 즉, 한 파트에 한 명씩만 구성해야 옳지 않을까. 

 

그것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압도적인 음량도 좋지만, 신앙이 밑바탕 된 작은 음량 또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리라는 것을 신앙인들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화해설위원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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