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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넷플릭스처럼”…‘흥행차트’ 없는 음원사이트 어떨까

입력 : 2020-01-05 13:26:12 수정 : 2020-01-05 13: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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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새해가 밝았다. 이 맘 때면 으레 대중문화계 곳곳에선 전년도를 돌아보는 각종 통계자료를 내놓곤 한다. 대부분 관객동원이나 음반판매 등 흥행 수치 관련 내용이다. 그런데 그중 좀 더 ‘새로운’ 자료가 눈에 띈다. 세계적 OTT 넷플릭스의 한 해 통산 ‘시청 횟수’ 자료다. 국가별로 자료가 따로 나오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서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시청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6부작 시리즈 ‘킹덤’이었다.

 

 그런데 사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전 세계’ 통합수치자료, 그중에서도 ‘영화’ 자료에서 보인다. 2019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영화는 애덤 샌들러 주연 코미디 ‘머더 미스테리’였다. 약 7300만 뷰를 기록했다. 그다음이 마이클 베이 감독의 첫 넷플릭스 영화 ‘6 언더그라운드’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 J.C. 챈더 감독의 ‘트리플 프론티어’, 존 리 행콕 감독의 ‘하이웨이맨’ 등이 뒤를 잇는다.

 

 이미 ‘머더 미스테리’와 ‘6 언더그라운드’에서도 감 잡을 수 있는 특이점이 있다. 대부분 비평적으론 형편없는 반응을 얻어낸 영화들이란 점이다. 엄밀히 ‘아이리시맨’과 ‘트리플 프론티어’ 정도 제외하곤 넷플릭스 흥행 10위권 내 비평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영화는 사실상 없다. 로튼로마토 기준으론 ‘머더 미스테리’ 45%, ‘6 언더그라운드’ 38%, ‘하이웨이맨’ 57%, ‘시크릿 옵세션’ 31% 등이다.

 

 이상한 현상이다. 지난 10여 년 간 영화산업에서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비평적 평가 좋은 영화가 흥행도 잘 된다’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아트하우스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누르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같은 상업영화 레벨에선 이 같은 흐름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여러 비평가 평가를 한데 모아 비평가 개개인의 ‘취향’ 부분을 억눌러버린 지표, 로튼토마토나 메타크리틱 등이 등장하면서부턴 더더욱 그렇다. 로튼토마토나 메타크리틱은 영화관람 가이드로서 이미 ‘믿을 만한’ 지표가 돼 있다. 한국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영화 포스터 내 홍보문구로서 로튼토마토 점수가 적히기도 한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만큼은 이런 흐름이 감지되지 않는단 것이다.

 

비단 2019년 상황만도 아니다. 8000여만 뷰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오리지널영화 역대 최고성과를 보인 샌드라 불록 주연 2018년작 ‘버드 박스’도 역시 비평적 평가는 안 좋았다. 로튼로마토 62%다. 그 바로 전해인 2017년 최고 뷰 오리지널영화, 윌 스미스 주연 ‘브라이트’도 마찬가지다. 로튼토마토 28%를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 극장흥행 상황에서라면 상당히 고전했을 영화들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얼핏 미스터리한 일이지만, 사실 논리는 단순하다. 극장관람과 넷플릭스 관람은 ‘본래’ 차원이 다른 영화소비란 것이다. 일단 극장관람을 위해선 외출 ‘씩이나’ 해야 하고, 영화 관람료도 매년 조금씩 올라간다. 그러니 한 편 한 편 신중을 기해 선택하는 구조가 나온다. 로튼토마토 등 각종 비평가 평점이 중요해지는 이유도 거기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가정 내 소비인 데다, 월 정액제 구조여서 매 편당 선택의 부담이 극히 적다. 그럼 어떻게 될까. 극장관람 시처럼 신중을 기하는 선택에서 벗어나, 그저 ‘끌리는 대로’ 선택하는 구조가 나온다. 배우가 마음에 드는 정도, 혹은 그저 콘셉트가 가벼워 기분전환용으로 좋다는 정도로도 충분히 선택이 가능해진다.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흥행 10위에 랭크된 오리지널 ‘시크릿 옵세션’만 해도 그렇다. 주연을 맡은 태국계 미국 배우 브렌다 송이 배우업 외 이런저런 이슈들로 화제에 오르자, 그저 그녀 한 명이 궁금해 영화를 선택한 경우다. ‘버드 박스’도 ‘머더 미스테리’도 ‘6 언더그라운드’도 사실상 비슷한 맥락이다. 화제성 또는 안정감, 결국 ‘가벼운 선택’의 결과 들이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 추가된다. 넷플릭스는 기본적으로 ‘흥행 수치’를 발표하지 않는단 점이다. 연말 통산, 또는 특정영화가 매우 이례적 성과를 보였을 때나 개별적으로 보도 자료를 내는 정도다. 일간흥행은커녕 주간흥행 순위조차 안 나온다. 이러면 어떤 효과가 나올까. 이른바 ‘밴드왜건’ 현상이 최소화된다. 특정영화가 ‘유행’을 타고 있다는 정보에 취향 불문하고 너도나도 달려가 보는 분위기 말이다. 매일 발표되는 흥행 수치에 따라 경마식 보도가 이뤄지는 환경에서 벗어나다 보니, ‘가벼운 선택’이란 표현 뒤에 숨은 보다 개인적이고 보다 정직(?)한 선택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현상들이다. 향후 넷플릭스 등 OTT가 영화 2차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을 넘어 영화소비 자체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될 때, 이렇듯 새로운 현상들은 향후 영화흥행 ‘기본구도’로 자리매김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관심과 주목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 대중문화산업 입장에선 ‘흥행차트 없는 대중문화산업’이 낳는 새로운 분위기 쪽에 관심이 더 크게 갈 수밖에 없다. 한국 대중문화계는 흥행차트 탓에 발생하는 각종 밴드왜건 현상이 극심한 환경으로 늘 지적되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5편이나 나온 ‘1000만 영화’도 결국은 그런 맥락이다. 인구의 1/4, 1/5이 보는 영화가 1년에 5편씩 나온다는 것 자체가 밴드왜건 현상 아니면 다르게 설명될 수 없다. 개개인 취향보다 ‘남들 선택’에 더 집중하고 영향받게 되는 분위기란 것. 한국서도 지난해 유료이용자 200만을 돌파한 넷플릭스가 과연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지난 4일 방영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대중음악계 음원차트 조작문제를 다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 중심도 결국은 한국 대중문화계 극심한 밴드왜건 현상이 그 원인점으로 제시되곤 한다. 이렇다 할 취향이나 고민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그저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따라 듣고 싶어 음원차트 100위권 내 음원을 일단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보는 대중 분위기 탓에 벌어지는 일이란 것이다.

 

 만약 넷플릭스처럼 여러 음원사이트도 ‘차트를 발표하지 않는’ 환경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궁금해진다. 넷플릭스처럼 ‘보다 개인적이고 보다 정직한’ 결과가 나오게 될까, 아니면 그저 전반적으로 화제성을 잃어 산업을 저하시켜버리고 마는 걸까. 그것‘도’ 알고 싶어진다. 테스트베드 격 넷플릭스 현황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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