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장교들의 공관병 사병화는 이미 오래된 관행이었다. 알면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군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육군대장 ‘갑질’은 왜 갑자기 논란이 되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갑질’은 늘 있어왔는데 말이다. 아무리 군대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그런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은 인연이 숨겨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한 중년 남성이 구명시식을 청했다. 그는 아들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다. 육사 출신인 그는 군대에서 잘 나가는 군인이었다. 장성 진급을 앞둔 그는 누가 뭐래도 일 순위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맨 마지막에 진급에서 밀려나 군인으로서 일생의 꿈인 장군이 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군을 떠나야 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진급 못한 것이 가슴이 아팠는지 계속 한숨을 쉬었지만 이제 다 지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구명시식을 하자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났다. “혹시 중대장 시절에 기합을 준 병사가 자살한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마치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당황해하다 그런 적이 있노라고 실토했다. “그 영가가 지금 이 자리에 왔습니다.”
사병 영가는 그가 장성으로 진급할 시기에 진급을 못하게 방해하고 아들마저 우울증에 걸리게 하는 등 그의 삶을 무너뜨렸다. “미안하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의 명령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그는 부인했지만 사병 영가는 쉽게 분노를 풀지 못했다. 영적으로 보니 심한 기합만이 원인의 전부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전생에도 상극의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시켜서 나무에 쌓인 눈을 발로 찼을 때, 쌓인 눈은 나무를 발로 찬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그 일을 시킨 사람에게 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과보의 법칙이다. 아무리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한 일이라고 해도 모든 과보는 그 일을 직접 실행한 사람이 받는 법이다.
사람은 살면서 남하고 척(隻)을 지지 않아야 하지만 이해관계에 얽히다보면 언제나 좋은 연(緣)을 맺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행동이 상대방에게 한이 되고 악연이 된다면 그 화가 어디로 가겠는가. 게다가 그 척이 전생에 지은 거라면 현생이 순탄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갑자기 척추에 이상이 생기면서 하반신을 못 쓰게 된 청년이 휠체어를 타고 찾아왔다. 영가를 통해 알아낸 사실은 청년의 선대가 가문을 일으키는데 공이 많은 하인을 홀대하였고, 병이 들어 죽은 하인이 그 한을 청년에게 전가한 것이다. 맺힌 한을 풀어주자 청년은 비명과 함께 기절했고 얼마 후 깨어난 청년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나왔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청년은 그 후 조금씩 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척을 지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가슴속에 깊이 새길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살면서 조심한다하지만 무심코 척을 짓는 일이 다반사다. 이번 육군대장 ‘갑질’ 사건을 들여다보면 두 부부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과 척을 지었다.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내가 지은 척은 내가 그 업보를 받으면 되지만 나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먼저 주고, 빈 곳에 주고, 준 것은 잊어버리는 그런 배려가 척을 짓지 않는 최선이 아닐까한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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