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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5-01 10:46:30, 수정 2013-05-01 10:46:30

    [화제의책]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 “우리가 산 세월을 글로 남겨 자식들에게 물려주라”

    • 만화가 박재동의 아버지(박일호)는 교사였다. 그런데 뜻밖의 병마로 고향의 교단을 떠났다. 그리고 부산에 정착해 평생 만화방과 문방구를 운영했다. 이십대 후반에 찾아온 병마는 13년 동안 계속됐고 궁핍함이 떠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매사에 꼼꼼하고 기록하는 걸 좋아했던 박재동의 아버지는 마흔에 접어든 1971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971년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본격적인 ‘삶의 기록’에 들어간다.

      “식목일을 맞아 비록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해도 마음속에나마 나무를 심듯 삶의 기록을 심을까 한다”며 “내 13년간의 생활은 그야말로 붓으로 또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병마와 가난이 겹친 힘든 생활은 우리 가족, 특히 내 아내가 아니고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집념은 무서운 것. 비록 모진 병마라 할지라도 굳은 마음가짐 앞에서는 물러나리라. 이것이 투병을 대하는 나의 신조이다. 식목일과 더불어 한 번 더 다짐해둔다”고 일기를 쓰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다.

      일기는 박재동의 아버지가 198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계속됐다. 박재동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우리가 산 세월을 글로 남겨 자식들에게 물려주라는 당부를 남겼다.

      올해로 82세가 되는 박재동의 어머니는 남편의 뜻에 따라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 1991년까지 약 5년에 걸쳐 자신의 생애를 대학노트에 빼곡하게 기록했다.

      가난한 삶속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느낀 일상의 진솔함, 병들고 가난한 삶을 함께 견뎌내는 아내에 대한 연민, 그리고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들며 한 사람이 느끼는 인생에 대한 애환,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부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60대에 접어든 박재동은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를 펼쳐 읽고 아버지의 고단한 일상과 속마음을 들여다보게 됐다. 아버지의 일기장 틈틈이 메모를 남기고 그림을 덧붙였다. 수십권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부정을 읽은 그는 아버지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다.

      최근 출간된 ‘아버지의 일기장’(박일호 일기·박재동 엮음)은 이렇게 탄생했다.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나의 부모님이 이토록이나 힘들게 사신 줄 몰랐던 젊은 날의 내가 부끄럽다. 자식들에게 힘들다는 내색 전혀 없이, 집 걱정은 말로 하고 싶은 대로 공부하며 살라고 하셔서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 줄 알고 살았던 날들이었다. 그 덕분에 자유롭게, 마음껏 그림을 그리면서 지금의 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 고단했을 나날이 죄송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처음 발병했을 때, 오래 못살 거라는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꿋꿋하게 사시면서 결국은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해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머리말)

      이 책이 담고 있는 시대는 격변의 시대였다. 일기장 속에는 부정선거, 10월 유신, 박정의 대통령의 죽음, 계엄령 등의 단어도 등장한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흥미롭다. 만화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흑백TV를 보던 풍경도 있고, 월부로 들여놓은 냉장고와 컬러TV를 신기하게 들여다보는 모습도 생생하다.

      등하굣길 들렀던 문방구, 만화방에서 일어났던, 그때는 미처 몰랐던 여러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박재동의 아버지는 경남 울산 범서읍에서 태어나 언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해방 직후 교편을 잡았다. 교사생활을 하던 중 폐결핵의 발병으로 교단을 떠난 뒤 치료과정에서 간경화가 진행됐다. 병마로 자식을 키우기가 요원해진 그와 아내는 1959년 부산 전포동에 셋방을 얻은 뒤 연탄배달, 풀빵장사, 팥빙수 장사 등을 하다가 만화방을 인수한 뒤 1980년까지 만화방을 운영했다. 그후 1981년부터는 울산 전하동에서 문방구를 열어 떡볶기, 팥빙수, 김밥 등을 팔기도 하면서 자식 셋을 키웠다.

      시인 안도현은 서평을 통해 “한 장 한 장 다시 읽고 싶어지는 글, 이것은 일기장이 아니라 한 권의 눈물겨운 시집이다”라고 말했다. 돌베개 펴냄, 1만5000원

      한편 아버지의 일기장 출간을 기념하는 전시가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두달 간 돌베개 사옥 1층 갤러리 행간과 여백에서 열린다. 책에 실린 박재동 화백의 원화와 함께 일기장 원본, 이머니의 기록 원본, 당시 부자가 주고 받았던 편지 등이 전시된다.

      강민영 기자 mykang@sportsworldi.com
      사진 제공=환경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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