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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 고 황정순은 누구인가?

입력 : 2014-02-18 16:13:33 수정 : 2014-02-18 16: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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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89세로 지난 17일 타계한 영화배우 황정순(黃貞順)은 한국 영화사의 산증인이었다.

고인은 1925년 8월 20일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해 1940년 극단 청춘좌, 호화선, 성군 등에 입단하면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영화 데뷔는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서 단역을 맡으면서다.

처음에는 영화보다는 연극에 주력하면서 ‘순정애고’ ‘수호선’ ‘대지의 어머니’ ‘역마차’ ‘청춘송가’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를 배워갔다. 그러다 1945년 극단 자유극장의 창립단원으로 참가했고 1947년부터는 서울방송국 전속으로 라디오 드라마 ‘청춘행로’ 등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다.

1949년 이 작품을 장황연 감독이 영화화하면서 (‘청춘행로’ 또는 ‘촌색씨’라고도 알려져 있다) 주연으로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를 계기로 최인규 감독의 ‘파시’(1949), 홍성기 감독의 ‘여성일기’(1949) 등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게 된다.

이후 1950년 4월 중앙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에 입단해 ‘원술랑’ ‘뇌우’ 등을 공연했던 고인은 1951년 1.4 후퇴로 극단을 따라 피난을 떠나 국방부 정훈국 공작대 1중대로 편성돼 대구, 부산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같은 해 10월 의학박사 이용복과 결혼했다.

1952년 환도 후에도 신협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햄릿’ ‘오셀로’ ‘빌헬름 텔’ 등의 번역극에 출연하며 연극에 주력하다가 1956년 김소동 감독의 영화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이후 신현호 감독의 ‘숙영낭자전’(1956), 이강천 감독의 ‘사랑’(1957) 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영화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고인은 1957년 이강천 감독의 ‘사랑’으로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상 최우수여우상을 수상했는데 이것이 영화배우로서 받은 첫 번째 상이라 그 기쁨이 남달랐다고 회고한다. 김기 감독의 ‘첫사랑’(1956), 이만흥 감독의 ‘봄은 다시 오려나’(1958), 유현목 감독의 ‘인생차압’(1959), 홍성기 감독의 ‘청춘극장’(1959) 등에서 개성있는 연기로 갈채를 받았고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1960),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 유현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1963), 김수용 감독의 ‘굴비’(1963)와 ‘월급봉투’(1964) 등에서 자상하고 다정다감하지만 때로는 엄격한, 아버지상 김승호와 함께 어머니상으로 관객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게 된다.

“김승호와 콤비로 서민물의 ‘올드 퀸’으로 군림한 황정순은 완전히 복혜숙, 석금성의 바통을 인계받은 듯 하다”는 당시 기사가 보여주듯이 고인의 어머니 연기는 특출난 것이었다. 사실 고인의 자상한 어머니 역만을 맡았던 것은 아니다. 1964년 조긍하 감독의 ‘육체의 고백’에서는 모든 밤의 여인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양공주를 맡아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1965년 최은희 감독의 ‘민며느리’에서는 구박하는 악독한 시어머니 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내기도 했다. “같은 모친 역을 해도 한은진과는 대조적으로 표현적이다. 액션 속으로 고이기보다는 밖으로 내는 그것이 황정순 양의 연기개성”이라고 당시 영화잡지는 대표적인 두 어머니상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인을 어머니로 각인시킨 영화는 1967년 배석인 감독의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한 팔도강산 연작(‘속 팔도강산’(1968), ‘내일의 팔도강산’(1971), ‘아름다운 팔도강산’(1972), ‘우리의 팔도강산’(1972))이었다. 고속도로 개통에 따라 ’전국의 일일생활권화‘에 대한 기대가 높던 당시 정황을 반영하는 팔도강산 연작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사는 아들딸들을 만나러 유람여행을 떠나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코믹하면서도 정감 어린 어머니로서 완숙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가 빛을 잃어가기 시작하던 1970년대 초반부터 TV 출연을 감행해 ‘딸’ ‘붉은 카네이션’(TBC) 등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1971년 극단 동양의 창립공연에 참가해 ‘소’ ‘여름과 연기, 그리고 바람’ 등을 공연하면서 연극인으로서의 길 역시 지켜나갔다. “영화의식은 투철하지만 무겁고 심각한 역보다는 즐겁기 위해 재미있는 역을 좋아했던 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 인생을 유쾌하고 멋지게 살고 싶은 세련된 의도를 지니고 있어서였다”고 회고하는 고인은 무대와 스크린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1970년에는 서울예전의 이사도 역임했으며 후진양성을 위해 1972년 ‘황정순 장학회’를 설립해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어머니 같은 사랑과 보살핌을 보여주기도 했다.

1979년 유현목 감독의 ‘장마’에서는 원숙하고 관록 있는 연기로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줬고 그 이후에는 영화보다는 TV 드라마와 연극에 주력했다. 특히 1982년 KBS 드라마 ‘보통사람들’에서 보여준 인자하고 세련된 신식 할머니 연기는 오래도록 기억될 만했다, 1984년 극단 신협의 황정순 연기생활 45주년 기념공연 ‘안네의 일기’ 이후 ‘죄와 벌’ ‘산불’ ‘타인의 방’ 등의 연극과 ‘도깨비꿈’ ‘사랑의 기쁨’(MBC)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노환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려진 ‘툇자 아저씨와 거목’에도 출연했다.

고인은 총 377편(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www.kmdb.or.kr) 기준)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관객들에게 ‘1960~70년대 한국의 대표 어머니상’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병훈)은 오는 4월, 시네마테크KOFA에서 ‘고(故) 황정순 추모 특별전’을 개최하고, 고인의 대표작을 무료로 상영할 예정이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31호실에 차려졌으며 20일 오전 6시에 발인식이 엄수된다. 장지는 모란공원이며 유족으로는 이성규, 이일미자, 박정남, 이종윤, 이종수 등이 있다.

한준호 기자 tongil77@sportsworldi.com,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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