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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해외진출 막는 J팝의 고집

입력 : 2022-11-13 13:17:02 수정 : 2022-11-13 13: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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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일본 대중문화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 쟈니스 소속 보이그룹 킹앤프린스 멤버 히라노 쇼, 키시 유타, 진구지 유타 등 3명이 갑작스레 탈퇴를 선언한 것. 2018년 데뷔한 5인조 보이그룹 킹앤프린스는 현 시점 쟈니스 보이그룹들 중 활동휴지를 선언한 아라시 다음으로 팬덤이 큰 팀이다. 이런 성공적인 팀에서 활동 5년차 만에 탈퇴 멤버가 전체의 절반 이상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는단 분위기.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정도 소식에 왜 충격‘씩이나’ 받는지 싶지만, 정작 일본대중에 인상을 남긴 건 이들이 남긴 탈퇴의 변이다. 셋 중 가장 연장자인 키시는 “데뷔 당시부터 해외서 활약할 수 있는 그룹을 목표로 여기까지 해왔다. 드라마나 무대, 예능 등에 출연하면서 해외서 통용되는 스킬을 익히는 일까지 동시에 해낼 능력이 없어 꿈과 목표와는 다른 내 실력 부족과 갭을 느끼게 됐다”면서 “해외서 활약할 수 있는 그룹이 되기 위해선 이대론 무리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다른 두 멤버도 비슷한 골자로 탈퇴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에 일본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선 “해외진출”이란 단어가 3위까지 오르는 기현상을 빚었다.

 

 물론 대중에 발표된 탈퇴 명분과 실제 속내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쟈니스 내부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부분을 탈퇴이유로 밝혔을 때 일본대중에 설득력을 얻고, 그렇게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까지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될 수 있었단 점이다. 그 배경은 대부분 눈치 채고 있을 법하다. 어느 순간부터 K팝과의 비교와 질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버린 일본 J팝 씬 현실 말이다. 거기서 비롯된 초조감 등 탓에 아무리 내수시장서 맹활약하는 인기 아이돌일지라도 번 아웃이 올 수밖에 없었으리란 것.

 

 물론 쟈니스를 중심으로 한 일본 대중음악계에서도 해외진출 노력을 말로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를 기용하거나 한국 안무가들을 부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꾸준히 구색을 맞춰왔다. 그런데 해외란 장벽을 뚫는 일은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단순히 K팝 인력들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대중음악산업은 물론 그를 둘러싼 대중문화 환경 자체가 바뀌어야 K팝과 유사한 조건이 마련될 수 있다.

 

 활동 기반이 되는 음악방송만 해도 그렇다. 일본에도 물론 음악방송은 여럿 존재하지만, 한국처럼 신곡 프로모션을 위해 10~20팀이 출연하는 음악방송은 사실상 TV아사히 ‘뮤직 스테이션’만 남은 상황이다. 일단 이 부분부터가 일주일에 주요 음악방송만 6개가 요일별로 늘어선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거기다 ‘뮤직 스테이션’ 등조차도 이제 한국처럼 거대 세트에서 공들인 연출로 무대를 보여주진 못하는 실정이다. 더 중요한 건 이 음악방송 무대들이 바로바로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돼 해외 접근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한국은 이제 멤버 개개인 직캠 등을 비롯해 다양한 무대영상들이 방송사발(發)로 유튜브에 바로 무료 공개되는 구조지만, 일본방송계는 이 부분에 대한 ‘통 큰’ 결정조차 아직 내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와 연계돼, 사실상 K팝의 성공은 인터넷 무료 콘텐츠 전략의 성공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각 회사에서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내놓는 자체 무료 콘텐츠가 상당하다. 일본 대중문화산업이 특히 이 부분에서 갈등이 심하다. 자체 콘텐츠는 DVD 등을 통해 ‘파는 것’이란 인식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확장성이 떨어지고, 더 나아가, 쟈니스처럼 소속 멤버들 초상권에 극도로 집착하다보면 그야말로 ‘고인 물’ 장사에만 머물기 쉽다. 전반적으로 콘텐츠 개방성 측면에서 체질적으로 인터넷시대와 잘 맞지 않는 분위기다.

 

 이밖에도 많다. K팝은 15~16년 전부터 A&R에 역점을 둬 대형기획사의 경우 수집해놓은 곡들만 1만 곡에 달할 정도라는 기반 측면이 또 존재한다. 그때그때 해외작곡가나 프로듀서 기용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이다. 광범위한 캐스팅 및 고도화된 트레이닝 시스템 등 연습생제도의 기본요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장기적으론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 맞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한국과 일본 젊은 층이 즐기는 주류 음악장르 취향 문제다. 일본은 반세기 전부터 록음악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팝음악이 대중에 환영받아온 분위기지만, 한국의 경우 30여 년 전 비트 중심 힙합이 젊은 층에 받아들여지며 이후 힙합과 라틴 등 비트 중심 음악으로 젊은 층 대중음악 판도가 굳어온 분위기다. 그런데 지금 일본이 진출코자 하는 미국 중심 서구 대중음악계는 기본적으로 힙합 영향권에서 20여 년째 주류 흐름이 진행 중이다. 1차 소비층인 내수 소비자 취향에 부응하는 것이 모든 대중문화산업 기본이란 점에서 이렇듯 해외 트렌드가 국지적 취향과 충돌을 일으키는 쪽과 아닌 쪽 간에 큰 차이가 생긴다.

 

 또 다른 본질적 부분을 보자면, 일본서 ‘아이돌’이란 일종의 ‘캐릭터 상품’에 가깝다. 음악을 기반으로 삼은 비전문적 대중문화활동 집단. 대중이 그 ‘캐릭터’만을 취해 음악, 연기,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가볍게 소비토록 만들어놓은 상품 개념이다. 그렇게 활동 무게중심이 넓게 흩어져있으니 엄밀한 음악 아티스트로서 활동과 준비에 집중하기 힘들고, 이 같은 점은 앞선 킹앤프린스 탈퇴 3인의 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K팝 아이돌과 같은 전문적 음악활동 노선과는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단 것이다.

 

 근래 박찬욱 감독이나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등이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영상산업 약진에 대해 “한국 대중소비자들 성향에 부응하려다보니 벌어진 일”이라 해석한 점이 화제가 된 바 있다. 대중소비자를 타깃으로 삼는 대중문화산업 전반에 해당되는 얘기다. 결국 자국 대중소비자 성향이 바뀌어야 산업 방향성과 체질도 바뀐다. 물론 일본서도 근 5~6년 사이 K팝이 대중음악시장 주류상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지만, 아직까진 1020 여성층 열광에 크게 기대는 분위기다. 이 부분이 바뀌어야 모든 환경과 조건이 달라지고 해외진출 기반이 성립된다. 한 나라의 대중문화는 이렇듯 뛰어난 리더 몇몇이 아니라 대중소비자들 스스로가 만들고 이끌어내는 현상이란 대원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킹앤프린스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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