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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더 배트맨’은 176분…러닝타임이 늘어간다

입력 : 2022-02-13 17:11:05 수정 : 2022-02-13 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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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할리우드영화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더 배트맨’ 국내 개봉 일정이 발표됐다. 3월 1일, 오히려 미국(현지시간 3월4일)보다도 빠르다. 그런데 개봉일정과 함께 또 다른 정보도 알려져 놀라움을 샀다. ‘더 배트맨’ 상영시간이다. 무려 176분, 2시간 56분으로 드러났다. ‘3시간짜리 배트맨 영화’의 탄생이다.

 

 사실 그동안에도 배트맨 프랜차이즈는 ‘시간이 지날수록 길어지는’ 프랜차이즈로 잘 알려졌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3부작만 해도 그랬다. ‘배트맨 비긴즈’ 140분, ‘다크 나이트’ 152분,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선 166분으로 점점 길어졌다. 그 이전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지속한 첫 배트맨 프랜차이즈가 모두 121~126분이었단 점을 돌아보면 리부트가 거듭될수록 점점 길어지는 현상도 확인해볼 수 있다.

 

 배트맨 프랜차이즈만 그런 게 아니다. 근래 대부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비슷한 추세다. 지난해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007 프랜차이즈 사상 가장 긴 163분이었고,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대단한 흥행을 거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역시 프랜차이즈 사상 가장 긴 148분이었다. 한편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로도 오른 ‘듄’은 155분, 찬반양론 속에 새롭게 시작된 마블 프랜차이즈 ‘이터널스’도 156분으로 기록됐다. 모든 게 점점 더 길어진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엄밀히 2000년대 초반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프랜차이즈 이래 꾸준히 진행돼온 흐름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엔 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2019년과 그 30년 전인 1989년 상황을 비교해보면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1989년 북미 연간 박스오피스 10위권 내 영화들 평균 상영시간은 107.5분이었다. 그러던 게 2019년엔 132.3분으로 늘어나 있다. 그동안 평균 25분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어벤져스: 엔드게임’ 181분, ‘그것 두 번째 이야기’ 169분 등 흥행이 확실한 히트작 속편일수록 상영시간을 대범하게 늘리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다. 영화 상영관이 멀티플렉스화 되면서 장시간 관람에도 피로하지 않도록 좌석이 편안해지고 여타 편의가 확충된 점, 근래 화제 초점인 OTT 드라마의 긴 서사에 익숙해진 대중에 적응해 그만큼 서사를 늘리려 한단 점 등이 거론되곤 한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부분을 잘 짚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 많은 제작비를 들인 텐트폴 영화들은 사실 ‘원래’ 길었단 점이다.

 

 1989년에서 다시 30년을 거슬러 올라간 1959년 북미 연간 박스오피스 10위권 영화들만 봐도 그렇다. 평균 상영시간 133.8분으로 오히려 2019년보다 길었다. 특히 ‘벤허’(212분), ‘아라비아의 로렌스’(228분), ‘클레오파트라’(192분), ‘닥터 지바고’(197분) 등 초대형 블록버스터들일수록 기본 3시간을 훌쩍 넘겼다. 극장시설에 한계가 있던 때라 피로를 덜기 위해 중간에 영화를 끊고 휴식시간(intermission)을 가졌단 점만 다르다. 이런 분위기가 1970년대 초중반 ‘패튼대전차군단’(172분), ‘대부’(175분), ‘타워링’(165분) 등까지도 간다.

 

 그러다 1975년 현대 블록버스터 효시라 불리는 ‘죠스’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영화는 일종의 ‘유행산업’이란 개념이 들어섰다. 유행산업 성격에 맞춰 각 지역을 차례로 순회하며 상영하던 로드쇼 배급에서 전국 동시배급으로 바뀌었고, 빠른 제작비 회수가 절실한 블록버스터들일수록 상영시간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유행’을 타는 상품이니 트렌드성이 유지될 길지 않은 기간 내 자본을 회수하려면 1일 상영 회차를 가능한 늘리는 방법 외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흐름이 1980년대 들어 폭발하고 1990년대 전반까지 이어졌다. 140분 이상 영화는 ‘아카데미상을 겨냥해 만든 진지한 영화’란 이미지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그러니 큰 차원에선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직전까지가 특이한 분위기였을 뿐, 지금은 다시 ‘본래’대로 돌아온 것이라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왜 돌아왔을까. 영화의 유행산업 속성은 오히려 저 당시보다 심해지면 심해졌지 절대 덜하진 않은 데 말이다.

 

 상당 부분 극장 관객 구성이 달라졌기 때문이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미 극장 입장권 판매량은 2002년 15억7600여만장을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 추세다. 전 세계적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홈 엔터테인먼트가 확충되기도 했고, 특히 OTT 등장 이후론 영화를 보기 위해 바깥 나들이한단 발상조차 점차 퇴색돼가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이 20여년 진행된 지금, 극장 관객들은 점차 ‘그 영화를 꼭 봐야만 하는’ 마니아 중심으로 구성되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마블이나 DC 등 기존 마니아층을 지닌 IP 기반 영화들이 블록버스터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고, 또 이들 마니아층은 영화가 점점 더 길어지길 원한다는 것.

 

 이유는 각기 다르다. ‘반지의 제왕’ ‘듄’ 등 클래식 장르소설 영화화의 경우 방대한 원작 플롯이 가능한 한 많이 담기는 쪽을 팬들이 선호한다. 마블 등 코믹스 원작 영화는 유명 캐릭터들 간 관계묘사와 각종 소통을 가능한 많이 담는 쪽이 선호된다. 007 등 ‘관광지 영화’ 프랜차이즈 팬들은 또 가능한 많은 세계 각국 풍경들을 보여주며 아이캔디 성격을 강화해주길 기대한다. 어찌 됐건 공통된 부분은 같다. 모두가 넉넉한 상영시간 동안 자신들이 원하는 요소들을 더 많이 담아주길 원한다는 것. 나아가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한 ‘과다 구성’이 극장상영 후 OTT로 넘어갔을 때 경쟁력 차원에서 더 유리해진단 측면도 존재한다.

 

 물론 한국영화는 아직 이 정도 흐름까진 아니다. 기존 팬 베이스가 존재하는 IP 기반 영화들도 아니고, 유행산업으로서 트렌드성 중시도 미국보단 한국이 늘 강했다. 그러나 한국도 이제 OTT 가입자 1135만 명(2020년 기준)에 이른 상황이고, 다소 긴 OTT 드라마 서사에 더 만족해하는 흐름도 뚜렷하다. 그러다 보니 근래 한국 블록버스터 반응 중엔 “넷플릭스 드라마로 나왔으면 더 좋았을 법하다”는 아쉬움이 점점 늘어가기도 한다. ‘3시간짜리 배트맨 영화’ 등장에 맞춰 한국영화 흥행전략도 한 번쯤 다시 연구해봐야 할 시점이란 얘기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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