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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천만영화 ‘극한직업’, ‘독과점 논란’ 왜 없을까

입력 : 2019-02-10 17:36:06 수정 : 2019-02-10 17: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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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이 폭발적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일까지 1217만6023명을 동원한 상태다. 역대 최고흥행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명량’에 이어 두 번째 빠른 속도다. 거기다 아직 관객동원력이 빠진 상황도 아니다. 9일 하루에만 77만6156명을 끌어 모았다. 이에 ‘명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로 오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극한직업’의 이 같은 기록적 흥행엔 여러 배경이 지적되고 있다. 사실상 ‘빈 집’이다시피 했던 특이한 설 연휴 대목이었단 점, 스산한 경제사회 분위기 속 가벼운 코미디에 대한 요구가 한층 강해졌단 점, ‘치킨의 민족’이란 말까지 등장할 정도 외식환경에서 해당소재를 적극 활용한 첫 영화란 점 등이 주로 거론된다. 그런데 이상스러울 정도로 잘 언급되지 않는 배경도 존재한다. ‘극한직업’은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스크린을 장악한, 이른바 ‘스크린 독과점’ 영화란 점이다.

 

개봉 첫날 1552개 스크린에서 시작한 ‘극한직업’은 첫 주말을 1909개, 1977개 스크린에서 맞았다. 첫 주말만으로도 역대 스크린 수 5위 랭크다. 그러다 설 공휴일 첫날인 2월4일엔 2002개 스크린까지 늘어났다. 역대 4위다. 그 위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553개), ‘신과 함께: 인과 연’(2235개), ‘군함도’(2027개)뿐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극한직업’엔 위 영화들에 쏟아졌던 스크린 독과점 비판보도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니, ‘극한직업’에 못 미치는 스크린을 확보했던 ‘스파이더맨: 홈커밍’(1965개), ‘검사외전’(1812개) 등에 쏟아진 것보다도 훨씬 적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기준으로 이 부분을 언급이라도 한 기사가 고작 10여 건 정도, 그나마도 딱히 비판이라 보기 힘든 논조가 대부분이다. 희한한 일이다. 총 흥행 차원이면 몰라도 최소한 흥행 ‘속도’에 대한 언급이 들어간다면 그와 직결되는 압도적 스크린 장악이 지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기현상도 알고 보면 원인이 단순하다. 미디어에서 가장 먼저 체크하는 인터넷 여론 차원에서 별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극한직업’ 스크린 독과점이 거론되는 공간 자체가 극히 드물다. 그러니 ‘관심 없어하는 소재’란 판단 하에 기사화도 안 이뤄진다. 나아가 실제 인터넷 여론도 좀 기이한 형태다. 독과점이 언급되기라도 하면 “재밌으니 상관없다”는 식 반응들이 쏟아진다. 그런 식이면 앞으로 재밌는 영화는 독과점이어도 무방하단 얘기다. ‘재밌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단 근본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애초 스크린 독과점 문제제기는 만족도 차원이 아니라 관객들에 무조건 더 많은 선택지를 주자는 차원 아니었나?

 

이쯤 되면 이제 논의는 조금 다른 차원으로 이동될 수밖에 없다. 대체 이 같은 대중의 ‘극한직업 쉴드’는 이유가 뭐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밀한 차원에서, 이런 건 쉴드가 아니란 의견이다. 사실 이런 게 오히려 ‘평상시’ 반응이라 보는 게 맞다. 예컨대 개봉 당시 역대 5위 스크린 수를 기록한 ‘택시운전사’(1906개)에도 이렇다 할 독과점 비판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들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

 

다만 그 정반대 경우, 즉 스크린 독과점 상황에 유난히 비난이 심하게 쏟아지는 경우들이 따로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한 마디로 ‘그때그때 달라요’다. 그럼 저 스크린 독과점 비판은 대체 어떤 상황에서 유난히 불거지는 것이며, 저 ‘그때그때’는 또 어떻게 갈라지는 걸까.

결국 영화에 ‘다른 비판요소’가 있을 때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함께 불거진다는 게 주된 관찰 결과다. 역대 가장 극심한 독과점 비판을 받은 ‘군함도’가 한 예다. 당시로서 가장 많은 스크린 수였기에 눈총 받은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영화가 ‘일제를 충분히 비판하지 않았다’는 시사회 여론에 맞물렸다. 애초 싫은 눈으로 바라보던 영화란 얘기다. 그러니 스크린 독과점도 함께 터졌다.

 

한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스크린 장악 시 대부분 ‘얻어맞는다’. 한국영화 살리기 문제가 겹치면 대개 관대해지지만, 해외영화엔 그런 감각이 별로 없다. 더 기이한 건, 거대제작비를 투입한 블록버스터엔 비판적이면서도 다소 작은 규모 중급영화엔 관대한 시선이다. 이번 ‘극한직업’이 딱 그 경우에 해당한다. 강자를 견제하고 언더독을 보호하려는 심리 정도 외엔 딱히 뭐라 해석할 방도도 없다. 어찌됐건 모두 ‘대중의 선택권’ 문제와는 별 상관이 없다.

 

결국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데 그에 대한 비판논리를 보충하기 위해 스크린 독과점도 함께 끌어들여 명분을 세워주는 구조란 것. 기이한 얘기지만, 사실 이런 식 ‘명분론’ 비판은 아이돌계에선 매우 흔한 일이다. 본래 다른 이유로 싫거나 견제하던 아이돌인데, ‘남들도 그에 동참’하도록 가지각색 사회적 명분들을 찾아내 게시판을 도배하며 여론을 유도하는 행각 말이다. 그렇게 주요 게시판들이 장악되면 기사화도 쉽게 이뤄진다. 그럼 목적 달성이다. 그런 흐름이 결국 영화계까지 넘어왔고, 그저 ‘애초 싫었던 영화’에 대한 선동명분 중 하나로 스크린 독과점이 선택되는 순서였단 얘기다.

 

사실 스크린 독과점 문제 자체는 여전히 비판과 방어논리가 팽팽히 맞서는 사안이다. 뭐가 맞다 틀리다가 명료하지 않다. 비판 측이 예의 ‘대중의 선택권’ 명분을 내놓는다면, 방어 측은 애초 쏠림과 밴드웨건 현상이 극심한 한국대중 성향에 적응했을 뿐이란 입장을 내놓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중이 작은 규모로 배급되는 영화를 찾아 관람하기 시작하면 배급도 당연히 그에 적응한단 논리다. 그도 엄밀히 일리가 있는 얘기고 뒷받침해주는 사례들도 많다. 어찌됐건 이처럼 팽팽하게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비판이 ‘그때그때’ 노골적으로 다른 분위기라면 ‘대중의 선택권’ 명분은 더더욱 허랑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스크린 독과점 비판에 동참하는 대중 스스로도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과연 스크린 독과점의 ‘무엇’에 분노하며 견제해왔는지 말이다. 일단 내가 볼 생각은 없더라도 어찌됐건 다양성은 보장돼야 한다는 식 ‘가치’ 차원 발상을 실제적 시장 ‘요구’로 바꿔 판단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식 ‘가치’ 차원이라면 ‘극한직업’처럼 만족도 외에도 한국영화 살리기, 작은영화 살리기 등등 또 다른 ‘가치’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면 의견이 또 달라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한국영화계가 살고죽고 차원마저도 ‘대중의 선택권’과는 별 관련이 없는 얘기다. 자신이 지지하는 건 어떤 입장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에 준하는 태도를 꾸준히 고수해야만 어떤 식으로건 현실도 바뀐다. 그런 태도가 아니라면, 자칫 자신들이 타격 입히고 싶은 영화에만 허울 좋은 비판논리를 갖다 대는 이들의 숨은 목적에 끊임없이 휩쓸리게 될 수도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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