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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현장] “인간다운 삶 원해”…‘황후의 품격’, 공동고발인단의 외침

입력 : 2018-12-18 13:55:52 수정 : 2018-12-18 14: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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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의 품격' 공동고발인단의 외침

[스포츠월드=정가영 기자] “스태프들의 오픈 카톡방에는 새벽마다 ‘좀 자고싶다’는 글이 올라온다. 12시간 일하고, 12시간 쉬고 싶다.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열악한 드라마 제작 근로 환경을 견디지 못한 현장 노동자들이 폭발했다.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를 고발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8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 벌어진 ‘1일 29시간 30분 연속 촬영’과 관련, SBS 및 제작사 SM라이프디자인그룹 고발 기자회견이 열렸다.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구성된 공동고발인단은 기자회견 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두영 지부장은 “현재 방송사는 지난 6개월 동안의 유예기간을 얻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단 한번도 우리와 대화한 적이 없다. 진정으로 노동 환경조성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관행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의 시간’이었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SBS와 제작사를 상대로 고소·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더 철저희 준비하고 투쟁해서 노동환경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한빛미디어노동인관센터 이용관 이사장은 “지난 3주간 50여 명이 ‘죽음의 외주화’로 목숨을 잃었다. 방송 제작현장은 살인적인 장시간 촬영과 죽음의 외주화를 겪고 있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는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외주 소속이다. 방송사와 제작사는 오로지 시청률 경쟁과 광고 수익에만 몰두하고 있다. 6시간 일하고 6시간 휴식을 취하자는 근로 기준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인적 노동을 시키고 있다. 우리는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한다.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온 제작 현실에 방송사 경영진, 제작사 대표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등 다수의 히트작을 집필한 김순옥 작가를 언급하며 “‘황후의 품격’ 김순옥 작가는 ‘드라마를 통해 슬픔을 잊고 희망을 얻게 하고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카메라 뒤에 선 수많은 노동자의 희망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PD와 작가, 현장의 연출을 맡은 책임자들이 변해야한다. 방송사와 제작사의 변화만으로는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사장은 2년 여 전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하다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지 한참이 됐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인 그는 “이한빛 PD가 연출 관리 파트에 있으면서 권력을 쥐고 있는 연출과 제작팀들에게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끝내 죽음으로 항거했다. 2년이 지난지만 똑같은 현실이다. 지금은 제작사 대표를 고발하지만,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현장 총괄과 작가까지도 고발할 것이다. 고용청의 철저한 감독을 요구하는 바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방송 제작현장의 인권 유린은 변할 수 없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김유경 노무사는 “어제(17일) 지부에서 문제제기를 하고나니, SBS 측은 ‘하루에 21시간 38분 밖에 일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본인들이 스스로 위법을 인정한 셈”이라며 “노동법이 개정됐지만 방송 현장은 변한 게 없다. 노동부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서서 현장 실태를 관리 감독하고 위법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현장에서 배부된 기자회견 자료에는 ‘황후의 품격’ 촬영일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9월 17일 시작된 촬영은 짧게는 12시간부터 길게는 29시간 30분까지 기록돼 있었다. 이에 김수영 변호사는 ‘황후의 품격’ 스태프의 제보를 듣고 “살려달라는 절규가 느껴지는거 같았다”고 표현했다.

 

김 변호사는 “11월 2일부터 6일에 걸친 연속 촬영이, 하루를 쉬고 나서 9일간의 촬영이 이어졌다. 촬영시간도 23시간부터 26시간 30분까지 밥먹듯 장시간 근로가 자행되고 있다. 제작 스태프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방송용어 ‘디졸브’에 빗대어 ‘끝날 것 같았는데 끝나지 않고 다시 시작된다’고 말한다. 고용노동부가 이런한 살인적 일정을 고발 받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이같은 직무 유기가 어디 있겠는가. 반드시 엄격한 근로 감독을 통해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근절 시키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희망연대노조 측의 문제제기에 SBS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29시간 30분 촬영으로 알려진 날은 총 21시간 38분이 근로시간이었다”고 해명하며 “이번을 계기로 근로 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방송가에 만연한 ‘장시간 근로’는 비단 ‘황후의 품격’만의 일이 아니다. 앞서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tvN ‘화유기’ 등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사고도 셀 수 없다.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말하는 제작 스태프들의 외침에 방송사와 제작사, 노동부는 각각 어떤 입장을 나타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정가영 기자,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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