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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이슈] 고(故) 신성일이 남긴 ‘열린 결말’, 마지막 꿈★은 이루어 질까?

입력 : 2018-11-04 11:47:23 수정 : 2018-11-04 11: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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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전경우 기자] ‘영원한 국민배우’ 신성일이 4일 오전 타계했다. 그는 약 500여편에 달하는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남겼고, 당분간 이를 넘어설 배우는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데뷔 이후 5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1966년에는 한 해 동안 89편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남자 배우로서 경쟁자가 없다시피 했던 그는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등 국내 영화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안성기, 박중훈, 이경영 등 80년대 이후 전성기를 누렸던 당대의 남자 배우들도 장편 상업 영화 출연작은 200편을 넘지 못한다. 

 

 

고(故) 신성일은 1960년 데뷔작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고, 이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년)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섰다.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수 많은 히트작을 쏟아낸 그는 1960년대∼1970년대 은막을 주름잡은 명실 상부 최고의 별★이었다. 세간에서는 조각같은 외모와 반항적인 눈빛의 그를 프랑스의 ‘알랭드롱’, 미국의 ‘제임스 딘’에 빗대기도 했다. 

 

고인의 마지막 출연 영화는 지난 2013년 임경수 감독의 ‘야관문: 욕망의 꽃’이며, 드라마는 2010년 MBC ‘나는 별일 없이 산다’에서 ‘신정일’역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대의 풍운아’였던 그는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개통식날 서울에서 출발한 그가 빨간색 포드 머스탱을 몰고 질주해 박정희 전 대통령 행렬을 추풍령에서 만났다는 일화가 가장 유명하다. 당시 그는 서울∼부산 구간을 2시간 30분에 주파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친구 오래 살라고 해”라는 말을 측근을 통해 전했다. 신군부, 전두환 정권의 영입을 거절한 일화도 잘 알려졌다. 그는 신군부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뒤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두 차례 고배를 마셨고, 3수끝에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인의 길을 걷기도 했다. 부인 엄앵란 여사와 세기의 로맨스도 유명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엄앵란 여사는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준비했다”고 밝혀 대스타로서 남편을 존중하는 뜻을 밝혔다.  

 

대스타는 죽기 하루 전날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예약했다는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언론사가 집단 오보를 내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고인은 세상에 ‘열린 결말’을 남겨 놓고 떠났다. 영화 ‘소확행’을 준비하고 있었고, 1966년 이만희 감독과 만든 영화 ‘만추’의 필름이 북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복사본을 가지고 오고 싶어 했다. 이 꿈을 실현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맨발의 청춘’으로 내달렸던 고(故) 신성일은 ‘떠날 때는 말없이’, ‘별★들의 고향’으로 갔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꾸고 있던 ‘시대의 남성상’을 영화팬들의 마음 깊이 남겼다. 

 

kwju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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