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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이슈] 신성일 타계,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간 ‘원조 국민배우’

입력 : 2018-11-04 10:18:53 수정 : 2018-11-04 10: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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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전경우 기자] ‘원조 국민배우’ 신성일이 영원한 안식이 있는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故) 신성일은 지난해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을 이어가다 4일 오전 2시 30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81세. 유족으로는 부인 엄앵란 여사, 아들 석현씨, 딸 경아∙수화씨가 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며,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 영화계 관계자들이 유족과 구체적 절차를 놓고 협의 중이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일로 예정돼 있다. 장지는 고인이 직접 건축해 살던 가옥이 위치한 경북 영천 성일각이다. 1937년 3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난 고(故) 신성일은 사흘만에 대구로 이사를 갔고 명문 경북고를 졸업했다. 대학 진학 무렵 호떡장사를 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그는 1957년 고(故) 신상옥(1926~2006) 감독의 ‘신필름’ 배우 모집에 합격, 전속배우가 되며 인생이 바뀐다. 이때부터 사용한 신성일이라는 이름은 신상옥 감독이 ‘새로운 스타중 넘버원’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이후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신성일은 1960년 데뷔작 ‘로맨스 빠빠’로 이후 ‘맨발의 청춘’(1964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수 많은 히트작을 쏟아내며 1960년대∼1970년대 은막을 주름잡는 최고 스타로 거듭난다. 

 

출연작품 편수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데뷔 이후 5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1966년에는 한 해 동안 89편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남자 배우로서 경쟁자가 없다시피 했던 그는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등 국내 영화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고인은 압도적인 인지도를 내세워 정계에 진출, 또 다른 무대에서도 열정을 불태웠다. 1981년 제11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던 그는 삼수 끝에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이 그의 조카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1994년에는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을 지냈다. 2002년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았다. 또한,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를 맡아 후진 양성에도 나섰다. 저서로는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와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등이 있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공식 활동은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이었다. 그는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이장호 감독, 배우 손숙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kwjun@sportsworldi.com

사진=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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