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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기자의 온몸 체험]“내가 지금 울고있니?”....‘공포의’ 고척돔 원정 구단기 교체 작업

입력 : 2018-10-29 13:02:27 수정 : 2018-10-29 1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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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고척돔 정세영 기자]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9월말 ‘온몸 체험’을 위한 취재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넥센 관계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홍보팀 관계자는 “연락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앞선 체험 주제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우리 구단에 딱 맞는 체험이 하나 있다”고 했다. 체험 내용을 물으니 비밀이란다. 알려달라고 재촉하니, “높은 곳에 올라가 원정 구단기를 교체하는 것”이라는 했다. 속으로 피식했다. ‘깃발 교체쯤이야.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어.’

 

●“각서(?)를 쓰라고요?”

‘디데이’로 연락을 받은 날짜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미디어데이가 열린 10월16일이었다. 체험 당일, 고척돔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홍보팀 관계자가 밝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넨다. 체험을 도와줄 안병훈 구단 운영팀 주임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안병훈 주임이 뜬금없이 “괜찮겠어요?”라며 물었다. 이내 그는 돔 외야 지붕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헉, 저기에 구단 깃발이 있었나?.’

 

시설공단 시설팀 사무실로 향했다. 안병훈 주임이 “오늘 체험을 하는 정 기자입니다”라고 공단 관계자들에게 소개했다. 이어 한 관계자가 헬멧 등 각종 안정 장구를 내 몸에 채웠다. 그리고 서류를 내밀었다. ‘안전 수칙 확인 서약서’였다. ‘사고 발생 시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할 것이며, 모든 책임은 당사에 있음을 서약합니다’라는 문구가 바로 들어왔다.

 

‘아뿔싸.’ 태어나서 각서는 처음 썼다. 안 주임은 매번 원정 구단기를 교체할 때마다 서약서를 쓴다고 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서명을 휘리릭 적어 냈다. 기자도 인적 사항을 적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안 주임은 “생각보다 안전해요”라며 기자의 어깨를 툭 쳤다.

 

●걸음은 안 떨어지고, 다리는 부들부들.

외야 관중석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등산한다고 생각하세요.” 구단기가 걸려 있는 곳은 외야 전광판 바로 위쪽 철제 구조물 근처다. ‘결전의 장소’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내야 뒤쪽 길을 통해 외야 관중석까지 한참을 걸어간 후 전광판 뒤에 있는 철제 외벽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한다. 약 15m 길이의 사다리를 오르면 지붕 트러스 점검통로(캣워크)가 나온다. 10m를 더 이동하면 구단기가 걸린 윗부분에 도착한다. 그라운드와 점검통로까지 높이는 60m.

 

구장 사무실을 나와 한 10분 정도 걸어 전광판 근처에 도착했다. 숨이 차올랐다. 철제 외벽 사다리가 보였다. 안 주임은 마치 숙달된 조교처럼 성큼성큼 올라갔다. 안 주임은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조심, 또 조심. 겁이 많은 기자에게 만만치 않은 높이였다. 어렵사리 오르니 밑에서 보이지 않은 외벽 사다리가 또 있었다. ‘어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모습에 안 주임이 배꼽을 잡았다.

 

힘겹게 사다리를 모두 올랐다. ‘캣워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하철 환풍구 덮개처럼 밑이 뚫려 있는 구조였다. 밑을 한번 봤을 뿐인데 어질어질했다. “앞만 보고 걸으세요”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30도 경사의 캣워크를 걷는데 다리가 떨렸다. 기어가다시피 해 구단기를 교체할 장소에 도착했다.

 

●본격 교체 작업, 특별했던 원정 구단 깃발

돔 내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야~’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본격적인 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넥센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는 9월30일 NC전. NC 구단의 기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오른 KIA 구단기로 교체해야 한다. 그런데 안 주임이 “오늘은 특별한 구단기”라고 귀띔했다. KIA는 지난해 프로야구 통합 챔피언이다. 그래서 KIA 구단기 아래 챔피언이 적힌 삼각형 모양의 깃발을 한 개 더 추가했다.

 

“더 무겁기 때문에 더 조심히 달아야 합니다.” 안 주임은 안전 고리를 난간 한쪽에 걸라고 지시했다. 혹시 모를 추락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조심스레 안전핀을 걸고 NC 구단기를 들어 올렸다. 꽤 무거웠다. 밑에 펄럭임을 방지하기 위한 쇠가 달려 있기 때문. “영차~영차!” 구호가 입에서 나왔다. 건져 올린 NC 구단기를 포개 놓고 본격적인 교체 작업을 진행했다. 두 개의 기를 내려야 하기에 안 주임은 더 조심히 움직였다.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손을 놓아야 해요. 그래야 펴진 상태로 구단기 내려갑니다.” 안 주임의 구호에 맞춰 구단기를 내렸다. 그라운드 아래에서 구단 교체 작업을 지켜본 관계자로부터 무전이 들어 왔다. “잘 걸렸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생각보다 별 것 아니죠”라는 말에 “민폐를 끼치지 않아 다행입니다”고 대답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30분 동안 작업이 끝난 뒤 두려움이 살짝 가셨다. 용기를 내 인증샷도 찍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기자를 본 안 주임도 “고생하셨습니다”며 생긋 웃는다. 내려오는 과정은 꽤 수월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숨은 일꾼을 만나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흥이 반이었어요.” 안 주임의 말이다. “열번 정도 올라가지 전까지는 정말 싫었어요. 올라가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고, 위에서 밑을 보면서 작업을 한다? 많이 무서웠죠. 나중에는 둔감해졌어요. 이제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보통 원정 구단기는 연전을 앞둔 첫날 오전 교체한다. 넥센 구단기는 1년에 한 번 바꿔 단다. 가운데 걸려 있는 태극기 역시 1년이 교체 주기다. 그렇다면 올림픽 시상식처럼 자동으로 구단기를 교체하는 방법은 없을까. 안 주임은 “돔구장은 구조물이 복잡하다. 손상이 생길 수 있어 쉽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안 주임은 열정적인 사람으로 통한다. 2008년 11월 히어로즈에 입사한 안 주임의 원래 보직은 그라운드 키퍼다. 열정이 넘친다. 전문 그라운드 관리 지식을 얻기 위해 자비를 들여 미국 프로스포츠 그라운드 키퍼 세미나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프로야구 10개 구단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프로야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이 많다. 안 주임 역시 마찬가지다. “제가 직접 고척돔 꼭대기에 오르는 이유요?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저는 이 파트의 책임자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올라야 합니다.” 

 

niners@sportsworldi.com

 

사진=고척돔 김두홍 기자, 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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