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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6-27 08:30:00, 수정 2018-06-26 12:19:59

    [화씨벽:김용준 프로의 골프볼 이야기⑦] 고반발볼은 완구(玩具)?

    •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골프 규칙을 따로 정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골프채는 물론이고 골프볼 규격에 대한 기준도 두 나라가 달랐다. 각자 나라에서만 시합을 할 때는 문제를 몰랐다. 그러나 서로 오가며 국가 대항전을 치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규칙이 다르니 이따금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가끔 골프채를 놓고 마찰이 빚어졌다. 서로 다른 나라 선수들이 쓰는 골프채가 규칙에 어긋난다고 트집을 잡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실은 골프볼이 더 큰 문제였다. 두 협회가 정한 공인구 규격이 달랐던 것이다. 크기와 무게 기준 모두. 

      그런데도 볼 문제로 시비를 붙지는 않았던 것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볼의 중요성을. 다른 나라로 날아가면 그 나라 골프볼을 쓰면 그만이기도 했고. 실은 골프볼을 바꾸는 것이 골프채를 바꾸는 것보다 경기력에 더 큰 영향을 줬을 텐데 모르고 넘어간 것이다. 

      그 때만 해도 비거리 따위를 정밀하게 측정할 장비가 없었지 않았는가? 더 작거나 무거운 볼을 쓰던 쪽이 더 크거나 가벼운 볼을 쓰던 나라로 가서 그 나라 볼로 플레이 하면 어땠을까? 

      분명 비거리가 줄어서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가’하고 속앓이도 하고. 반대로 더 작거나 무거운 볼을 쓰는 나라 쪽으로 가서 그 나라 볼을 쓰면? 비거리가 늘어서 신났을 것이다. 음! 생각해 보니 아이언 샷 비거리도 함께 늘어 거리 맞히기에 애를 먹었을 수도 있겠다. 

      그 시절 선수는 꿈에도 볼 때문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지금은 R&A와 USGA가 늘 함께 골프 규칙을 만든다. 그리고 골프볼은 ‘크기는 42.67mm 이상’이고 ‘무게는 45.93g 이하’로 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채우지 못하면 공인구가 될 수 없다. 기술이 부족해서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골프볼 업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일부러 이 기준을 어기는 볼을 만든다면 어떨까? ‘설마 그런 업체가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런데 있다. ‘고반발볼’이라고 주장하는 제품을 내놓는 업체가 바로 그런 업체다. 말이 좋아 고반발이지 대부분 반발력을 크게 한 것이 전혀 아니다. 볼 크기나 무게를 다르게 만들었을 뿐이다. 우선 국내 모 유명 골프볼업체가 ‘10야드 더 나간다’고 TV에 한참 광고한 볼은 공인구보다 지름이 ‘1mm’ 작다. 지름이 41.67mm로 당연히 비공인구다. ‘겨우 1mm 차이인데 어때?’라고 나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42.67mm 중에서 1mm를 줄인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눈이 커졌다. 2%가 넘는 차이 아닌가? 기량이 이미 어느 수준 이상인 선수들이 겨우내 땀 흘려 훈련해서 늘릴 수 있는 비거리가 평균 2% 남짓이다. 그런데 골프볼 크기를 1mm 작게 만드는 것으로 간단히 비거리를 늘릴 수 있다니. 

      비거리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볼 크기가 작다면 퍼팅 때 홀에 들어갈 확률도 높아진다. 1mm 작으면 홀인 할 가능성이 5% 정도 높아진다. 볼 크기를 생각해보라. 42.67mm 아닌가? 홀 직경은 108mm다. 홀로 볼이 떨어질 확률이 그만큼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골프 규칙에 볼 크기 제한을 둔 것이다. 중국 골프볼 업체가 내놓은 다른 제품은 한 술 더 뜬다. 공인구 보다 1g 무겁기도 하고 1mm 작기까지 한 것이다. 지름도 작으면서 무게는 46.93g이라는 말이다. 이미 말했다시피 공인구 무게 한도는 45.93g이다. 같은 무게라도 더 작으면 더 멀리 날아간다. 

      그런데 더 무겁고 더 작기까지 하면? 이런 비공인구로 치면 얼마나 더 날아갈까? 우리 회사가 테스트 한 바로는 무게가 1mm 작으면 10야드 더 나간다. 무게까지 1g 더 무겁다면? 여기에서 또 10야드를 더 보탤 수 있다. 20야드 더 나가는 셈이다. 진짜냐고? 진짜다. 이렇게 무게를 늘리거나 크기를 줄여 놓고 ‘고반발’이라고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골프볼 코어나 커버에 신소재라도 써서 더 반발력을 높이는 기술을 갖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일종의 눈속임이다. 

      이런 ‘고반발이라고 주장하는 볼’로 내기 골프를 하면 어떨까? 그건 불공정 게임을 넘어서 속임수에 가깝다. 내기꾼 중에서도 사기꾼들은 주저하지 않고 이런 볼을 쓰기도 한다. 혹시 큰 내기를 한다면 상대방 볼을 꼭 확인할 일이다. ‘나는 내기를 하지 않으니 좀 쓰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정중히 말리고 싶다. 내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고반발 주장 볼’을 쓰는 것은 골프 정신에 위배된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골프는 

      누가 감시하지 않아도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신사 숙녀의 스포츠 아닌가? ‘고반발을 주장하는 볼’을 쓰는 것은 이런 골프를 스포츠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끌어내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말리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고반발볼의 지위’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반발볼은 ‘완구(玩具)다’ 라고. 그럼 이런 볼을 만드는 업체는? 당연히 ‘완구업체’다.

      김용준 프로(한국프로골프협회 경기위원 겸 엑스페론골프 부사장)
      ironsmith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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