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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희의 눈] 월드컵의 추억

입력 : 2018-06-17 14:00:00 수정 : 2019-01-23 15: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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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월드컵의 추억과 함께 자라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의 첫 월드컵의 추억은 1990 이탈리아 대회인 것 같다. 스페인과의 경기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 아버지에게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못해?"라고 하는 순간 황보관 선수의 중거리 캐논 슛을 보고 “이런 것이 축구 구나”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아버지에게 “아빠 황씨가 골을 넣었어” 라고 했다가 “황보씨야”라는 말을 듣고 조금은 서운했던 기억도 스쳐간다

 

본격적인 월드컵 덕후가 된 순간이 1994 미국 월드컵 때 인 것 같다. 이때부턴 선수들의 별명 까지 외워버렸다. 적토마 고정운, 날쌘돌이 서정원, 황새 황선홍 아시아의 리베로 홍명보. 첫 경기인 스페인 전부터 난리가 났다. 학교에 텔레비전을 들고 온 친구가 영웅인 된 날이다. 2:0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2:2로 만들어 버린 후 날린 서정원 선수의 어퍼컷은 남자 중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 줬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은 예선전 때부터 흥분의 도가니였다. 아시아 예선 1:0 으로 뒤쳐졌던 일본전은 서정원 선수의 헤딩골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이민성 선수의 중거리 동점 골로 도쿄대첩이라는 단어로 아직도 회자 되곤 한다. 이 떄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친형과 서먹했던 관계를 이민성의 골로 형을 안고 가족애를 확인했다.

 

예선전 돌풍을 일으켰던 한국 팀 차범근 감독은 노트북 광고 까지 찍으며 한껏 기대를 부풀렸지만 그 유명한 원정 첫 골을 넣은 하석주선수의 퇴장과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의 5:0패배 본선에서의 아쉬운 성적으로 남았지만 마지막 벨기에 전에서의 붕대투혼은 다음대회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2002년이 왔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개최국 최초로 예선탈락만 안하면 된다, 전 세계 적으로 망신만 안당하면 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4강 진출이었고 20대 초반의 미래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나로서는 정말 꿈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해 2004년도 에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던 추억이 있다.

 

그 후로도 월드컵을 꼭 가서 보고 싶다는 꿈도 2010년에는 이뤄졌다. 왕복 58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응원했던 기억 그리고 돌아와서 ‘개그콘서트’ 녹화를 하고 원정 첫 16강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58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1박4일로 16강을 보고 왔던 기억. 이렇게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축구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공 하나에 이리저리 뛰어다다는 것이 뭐라고 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는 있지만 월드컵은 누군가에게 꿈이 되기도 하고 희망을 만드는 계기가 되는 무대인 것 같다.

 

이기는 것도 중요 하겠지만 이번 월드컵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떤 추억을 안겨줄지 기대해 본다.

 

황현희 개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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