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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한국 '미투'와 미국 '#Me too'의 차이점

입력 : 2018-03-13 17:21:39 수정 : 2018-03-26 15: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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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투’ 운동이 연일 숨 가쁘게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주부턴 가속이 크게 붙고 화제성도 부단히 높아졌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정봉주 전 의원 등 정치계 거물, 거장으로 불리던 김기덕 감독 등에 대한 성폭력 폭로가 이어진 탓이다. 결국 미투 폭로대상 배우 조민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이번 주로 넘어오니 각종 진실공방은 물론 미투 그 자체에 대한 찬반양론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좀처럼 열기가 숨죽을 기세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 같은 국내 미투 상황을 지켜보다 보면 몇 가지 의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대부분 운동 시발점이 된 미국 미투와의 공통점 및 차이점에서 나오는 의문들이다. 현재로선 딱히 눈에 안 띄는 부분일 수 있겠지만, 이를 파악해가는 과정은 곧 한국 미투 운동이 지닌 독특한 본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미국과 한국 미투의 공통점에 대한 부분이다. 국내에선 결국 정치권까지 번지긴 했지만, 미투는 애초 한국서나 미국서나 문화예술계로부터 점화된 이슈였다. 그리고 역시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왕성한 폭로와 변화 촉구가 이뤄진 이슈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왜 유독 문화예술계에선 그토록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하느냐는 의문이 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문화예술인들 특유의 모럴 헤저드 운운 등 막무가내 식 해석을 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뜬구름 잡는 해석을 동원할 필요까지도 없다. 업계 구조적 생리 정도만 파악해 봐도 훨씬 간단하게 납득된다.

 

문화예술계는 애초 엄밀한 실력 또는 능력 차에 의해 성공한단 개념이 어색한 분야다. 쉽게, 연기 잘 하고 노래 잘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대로, 연기가 뭔지조차 알지 못해도 아놀드 슈왈츠네거처럼 할리우드 최고 몸값 배우에 오를 수 있고, 전통적 의미에서 음치에 가깝더라도 제인 버킨처럼 샹송의 여신이 될 수도 있는 환경이다. 실력이나 능력의 잣대와는 큰 관계없이, 대중심리의 예측하기 힘든 지점에 어필해 호응을 얻어내며 시대의 스타로 거듭난단 논리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열심히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성공한다’는 상식도 깨지게 된다. 그보단 별다른 기준도 없이 이뤄지는 업계 권력자의 ‘선택’을 어떻게든 받아내는 일이 급선무가 된다. ‘선택’을 받아 각종 홍보 전략이 총동원될 경우 대중심리 빈틈을 치고 들어가 ‘스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을 누구라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의라도 제기해볼 만한 잣대 하나 없이 오직 권력자 주관과 그에 따른 선택이 모든 시장참여자들 ‘운명’을 결정짓는 환경, 그렇게 극단적으로 종속된 권력관계 하에선 그에 따른 폐해도 덩달아 늘 수밖에 없다. 여타 분야들에 비해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한 분위기가 그렇게 마련된다.

 

다음, 이번엔 한국과 미국 미투의 차이다. 바로 지난주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듯, 한국에서 미투는 사실상 문화예술계 범주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미 사회 각 분야로 뻗어나간 상태고, 결국 차기 대권주자로 지목되던 거물 정치인에까지 닿았다. 그런데 정작 미국선 이런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크게 약한 편이다.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계, 그리고 그와 연계된 방송계 정도가 범주의 거의 전부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답은 단순하다. 미국의 경우 사회 여타 지점들에선 이 같은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거나 해결되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그 계기들부터가 훨씬 이전부터 꽤 잦았다. 대표적으로 1991년 아니타 힐 쇼크를 들 수 있다. 당시 클라렌스 토머스 연방대법관 인준청문회에서 흑인여성변호사 아니타 힐이 그의 성희롱을 폭로하고 나선 사건이다. 미국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한 사건이며, 이후 미국기업들에서 성폭력예방프로그램이 보편화 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사회 곳곳에서 그와 같은 진화가 거듭되는 와중에도 끝까지 남은 문젯거리가 바로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대중문화계였다. 언급했듯, 구조적 차원에서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근절되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중심으로만 미투가 집중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사회 전체가 아직 이 같은 충격에 직면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서 아니타 힐 사건이 벌어지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TV드라마에선 명백한 성추행 묘사들이 별 일 아닌 양 등장하기 일쑤였다.

 

회사 부장이 커피 나르는 여직원 엉덩이를 슬쩍 만지고, 이에 여직원은 “아이참 부장님은 또~”라고만 응수하며 물러나는 장면 따위가 부지기수로 등장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중년아내가 남편에게 버럭 소리 지르는 장면이 등장하고 나면, 바로 다음 장면은 달걀로 시퍼렇게 멍든 눈두덩을 문지르는 아내 모습이었다. 그게 웃으라고 넣은 장면이었다. 불과 사반세기 전만 해도 ‘전혀 다른 세상’이었단 얘기다.

 

한국서 페미니즘에 근거한 사회논리들이 제대로 소개되기 시작한 건 잘 해봐야 1990년대 중반 정도부터다. 미국선 68혁명을 끼고 1960~70년대부터 격렬하게 논의되던 주제다. 그리고 여성인권 개념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시기도 한국선 엄밀히 2010년대 정도부터라고 봐야한다. 그게 미국선 1990년대 초반 아니타 힐 사건 시기다. 관련된 사회인식 변화 시점이 워낙 다르다. 그 점이 지금 상황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야 없겠지만, 어찌됐건 미투가 유독 한국선 사회 전체의 문제로 번질 수밖에 없었던 근거 정도는 될 수 있다.

 

끝으로, 미국의 미투는 시작된 지 2~3개월 만에 ‘타임즈업 Times Up’ 구호로, 다시 ‘네버어게인 Never Again’ 구호로 옮겨가며 소강상태인 데 반해, 한국의 미투는 그 폭로전 양상이 몇 개월째 좀처럼 사그라들질 않는단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간명하다. 기반이 된 여성인권운동 배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투는 사실상 2015년 초엽부터 일기 시작한 할리우드 내 ‘이퀄 페이 Equal Pay’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한다. 왜 같은 일을 하고 그 성과 차이도 알기 힘든데 여성인력은 늘 남성인력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는 당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 패트리샤 아퀘트가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으로까지 열변했을 정도로 미국사회 대형 이슈였다.

 

여기서 다시 운동은 애초 여성영화인들에 ‘기회’를 주지 않는 할리우드 풍토 비판으로 넘어갔고, 이 같은 흐름에 자극받은 워너브라더스 사는 여성 수퍼히어로 영화 ‘원더우먼’ 연출을 여성감독에게 맡기겠단 용단을 내린다. 사실상 여성감독으로서 최초의 블록버스터 연출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등장한 ‘원더우먼’이 지난해 대대적 호평과 함께 어마어마한 흥행성적을 거두자 할리우드 내 여성파워는 일취월장했고, 그 기세를 업고 미투 운동 전개로까지 이어졌단 순서다. 납득도 가고 이해도 쉬운 순차적 운동진행 방향이다.

 

그러나 한국의 미투는 그 배경이 된 사회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대중문화계 여성인력 차별 등 각론 차원 문제제기 상황이 아니었다. 2010년대 들어 남혐과 여혐의 성대결구도가 인터넷 상에서 본격화되다 2015년 여성우월주의 사이트 메갈리아 설립으로까지 이어진 분위기가 그 배경이다. 그 사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란 구심점 격 계기도 등장했다. 애당초 ‘조건’이나 ‘권리’가 아닌 ‘인식’ 차원 문제제기로 시작된 셈이다. 보다 살가운 ‘분노’의 단계다. 그리고 그런 분노가 미국 미투 운동을 만나 그 화제성을 타고 폭발했단 순서다. 요구하던 ‘조건’과 ‘권리’를 쟁취할 수 있는 분위기만 마련되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미국과는 동력 자체가 달랐다.

 

새삼 언급하지만, 미투와 성폭력 고소는 차원이 다르다. 미투는 사회저명인사들 성폭력 사실을 대대적으로 대중에 공개해 상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그 충격으로 해당업계 체질 및 관행을 일거에 개선하잔 운동이다. 그 자체로 상당히 급진적이고 감정적인 운동이다. 그만큼 한국의 미투는 남성권력에 대한 한국여성들의 감정적 분노가 사그라들기 전까진 끝없이 길어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단 예상이다. 아무쪼록 부작용이 최소화되는 흐름만을 기대할 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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