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이 영화가 남긴 것은 있다. 마이너한 감성의 상업영화가 극장가에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다. 우리는 모두 ‘염력’의 출연 배우들이 얼마나 열심히 촬영에 임했는지 알고 있다.
류승룡의 연기도 인상깊다. 염력을 쓰는 그의 모습은 어딘지 우스꽝스럽지만 중독성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손끝과 무릎 눈 코 입까지 동원해 염력을 끌어 모으는 석헌의 독특한 모션은 류승룡의 표정 연기가 더해져 완성됐다.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봤던 초능력에 대한 이미지를 스크린에 생생하게 표현한 류승룡. 그는 왜 이 작품에 끌렸을까.
“재작년 4월 연상호 감독님이 칸영화제에 가기 전에 ‘염력’ 시놉시스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어떻겠냐고 물으셔서 바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시나리오는 그 이후 몇 개월 뒤에 받았지만, 이전부터 감독님의 기발함을 좋아했기 때문에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나보다.
“더빙으로 참여한 ‘서울역’도 그랬지만 ‘돼지의 왕’ ‘사이비’ 등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들이 생각지도 못한 신선한 소재와 장치들로 엮여 있지 않나. 감독님의 디렉션도 독특하지만 정확하다. ‘부산행’ 역시 너무 잘 나왔기 때문에 믿음이 두터웠다.”
“나도 내가 날아다닐 거라곤 상상을 못했다(웃음). 갈수록 한국 영화의 장르와 소재가 파격적이고 다양해지다 보니 예측 불가의 충무로가 돼버렸다.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하며 한계를 느낄 때도 있다.”
-영화는 어떻게 봤나.
“연상호 감독님은 정말 자신의 색깔과 강점이 뚜렷한 분이다. ‘염력’의 경우는 정말이지 감독님의 그런 면들이 잘 집대성 된 것 같다. 철거민 문제라는 우리 사회의 미해결된 문제와 염력이라는 판타지적 소재, 그것을 부성애와 가족애로 끌어안으며 의외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시나리오에서 내가 느낀 그것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존경스럽더라.”
“몸무게를 12kg 정도 증량했다. 한국 아저씨가 익숙한 빌딩숲을 날아다닐 때 통쾌함이 있더라. 날아다니는 모습도 석헌스럽고. 석헌은 모든 일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초능력자지만 영웅이라기보다 딸에게 영웅이 되고자 한 것 같다. 도망칠 수도 있지만 딸을 위해 도망치지 않았고, 딸과 서툴게 소통하는 모습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은경이와는 삼촌과 조카 사이 같다. 영화 ‘불신지옥’ 때부터 봐서 은경이 어머니랑도 잘 안다. 은경이를 처음 봤을 때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는 데다 말도 작게 하고 해서 연기할 수 있나 궁금했는데, 신들린 연기를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도 여전히 실제로는 조용조용하고 나긋나긋하다. 하지만 연기할 땐 확 달라진다. 그러니 천상배우다. 일상을 농축해서 연기로 풀어내는구나 싶다. 항상 더 나을 게 없을지 고민하고, 탐구한다. 나보다 나이는 어릴지 몰라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배울 점이 많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다.”
“한 때는 저 역시 흥행을 꿈꾸고, 촬영에 들어가면서부터 결과를 예측하고, 전전긍긍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이 협업의 과정이 어떤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미가 깊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어떤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달려온 건 아니지만 매순간 ‘잘 완주하자’라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완주’라는 게 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제가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의 의미와 아주 긴밀하게 상통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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