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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흉물 또는 예술…논란 속 사라지는 슈즈트리

입력 : 2017-05-29 16:18:10 수정 : 2017-05-29 16: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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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후회는 없어요. 시민들이 슈즈트리를 보면서 색다른 공공미술을 경험했길 바라요.“

지난 20일 서울역 고가공원인 ’서울로7017’의 개장을 기념해 설치된 ‘슈즈트리’의 황지해 작가는 9일간의 전시를 마친 소감을 28일 담담하게 털어놨다. 서울로와 서울역 광장을 잇는 높이 17m, 길이 100m의 슈즈트리는 헌 신발 3만여족으로 만든 대규모 설치미술이다.

슈즈트리를 둘러싼 ‘흉물’ 논란에 황 작가는 “‘자살’, ‘더러움’ 등 신발에 고정관념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며 “편견 없이 작품을 바라봐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답했다. 

슈즈트리를 둘러싼 논란은 서울로 개장 전부터 철거까지 계속 이어졌다. 작품을 본 시민들은 ‘세금이 아깝다’, ‘이게 예술이냐’는 반응부터 ‘사람 냄새가 난다’, ‘버려진 신발의 재발견’이라는 평가까지 다양한 견해가 나왔다.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예술이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도발적인 시도”라며 “영구 설치 작품도 아닌데 ‘흉물’이라고 낙인 붙이고 설치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작품과 작가에 대한 ‘폭력’”이라고 평했다. 슈즈트리의 신선한 발상을 높이 평가한 프랑스 쇼몽 페스티벌과 캐나다 퀘벡의 그랜드메티스 정원 페스티벌은 황 작가에게 참가 초정장을 보내기도 했다.

반면 슈즈트리가 문화재로 지정된 서울역 구역사 ‘문화역서울284’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권혁빈 미술평론가는 “서울역 광장은 근현대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옛 서울역사만으로도 그 의미가 충분하다”며 “광장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슈즈트리가 꼭 들어가야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 작가는 서울역 구역사와 슈즈트리의 연결고리는 광장에 우뚝 선 강우규 의사 동상이라고 설명했다. 강 의사는 1919년 9월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을 찾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했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수류탄을 쥔 강우규 의사의 오른손 아래에 황 작가는 동자승이 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고 전해지는 자주색의 ‘우단동자’ 꽃을 심었다. 우단동자의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다’로 강 의사의 의지를 잊지 않고 잇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민들이 오가는 광장에서 작품을 설치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황 작가는 부족한 시간과 예산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처음에는 나무 구조물 위에 신발, 꽃, 나무가 어우러지도록 설계했다”며 “책정된 예산이 계획한 것에 절반 정도밖에 안 돼 철골 구조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작품의 소재로 신발을 선택한 것과 관련, 그는 “시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사물로 대화를 걸었다”며 “차가 다니던 고가도로가 보행길로 재탄생하면서 ‘걷는 세상’이 왔다는 의미를 ‘신발’로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황 작가는 처음 서울로에 올라가 서울역 광장을 바라봤다. 서울역 광장을 바라볼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며 “거대한 캔버스를 어떻게 채울까에 대한 기대감으로 온몸이 떨렸다”고 회상했다. 황 작가는 처음 상경해 서울역 광장을 가득매운 사람들의 걸음을 보던 때를 떠올렸다. 평소 사람들의 걸음 관찰하기를 좋아하던 그는 “사람들의 걸음걸이,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이 보인다”며 “신발 하나하나는 그 사람의 인생을 함축하는 한 권의 책과 같다”고 신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에게 슈즈트리는 3만여명의 인생이 모인 백과사전이었다. 결국 슈즈트리는 ‘걷기’라는 서울로의 의미와 ‘신발’로 풀이되는 광장의 의미가 결합해 탄생한 작품이었다.

이런 슈즈트리에 대해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괴물’이라는 평가를 했다. ‘슈즈트리는 흉물’이라는 평가에 대해 그는 “흉물이 하나의 얼굴만 갖고 있다면 괴물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며 “추함과 선함을 동시에 가진 프랑켄슈타인처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슈즈트리는 쓰레기이면서 보물이다”고 반박했다. 

황 작가 또한 슈즈트리를 바라보는 열린 해석을 환영했다. 그는 “앞에서 보면 신발 속과 신발들 사이에 꽃이 피어있는 정원이지만 뒤에서 보면 버려진 신발이 주렁주렁 걸린 정크아트”라며 “버려진 신발에서 피어나는 식물을 보면서 재생과 우리의 소비문화를 반성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풀이했다.

황 작가는 이번 슈즈트리 작품을 둘러싼 논란 덕분에 공공미술에 대해 한층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미술의 의미를 살리고자 시민들과 함께 꽃을 심고 신발을 엮어서 마지막 10m를 완성했다. 그는 “많은 비난도 받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다음 작품을 위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며 “다만 이번 논란 때문에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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