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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의 연예It수다] 민우혁, 무명가수가 '불후의 명곡' 스타 되기까지

입력 : 2017-04-23 09:00:00 수정 : 2017-04-23 14: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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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최정아 기자] 뮤지컬은 대부분 세트로 지은 가상의 공간에서 공연된다. 여기에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품이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배우다. 출연 배우의 기량에 따라 극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민우혁은 어떤 무대건 ‘진짜’로 만들 줄 아는 무서운 배우다. 뮤지컬은 물론이고 드라마, KBS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까지, 등장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을 바꾼다.

특히 ‘불후의 명곡’ 같은 경우는 관객 반응이 수치로 느껴진다. 엄정화 편에서 ‘눈동자’로 2등, 강인원 편에서 ‘사랑은 세상의 반’으로 2등, 박재란 편에서 ‘푸른날개’로 최종우승, 김광진 편에서 ‘기억해줘’로 2등을 기록했다. 항상 상위권 성적이다. 지금껏 이런 출연자가 있었나 싶다. 민우혁은 객석의 집중력과 몰입감을 제대로 높이는 방법을 안다.

요즘 상승세 제대로 타고 있는 이 남자. 천운을 타고난 줄 알았더니 천운을 만들어가는 노력파였다. 알수록 더 궁금한 민우혁과의 대화를 공개한다.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야구선수

민우혁은 초등학교 3학년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야구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신다는 점.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싶었던 아들은 리틀 야구단에 들었고 그 길로 10년간 야구 인생을 걸었다. 중간 중간 위기는 찾아왔다. “수학여행에 떠난 어린 시절, H.O.T와 젝스키스 춤을 추는 또래 친구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평범한 학생처럼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유니폼을 찢었다. 처음으로 아버지께 보인 강력한 반항이었다. 하지만 10대 소년이 아버지의 뜻을 꺾기란 역부족. 결국 몇 달 쉬는 기간을 갖고 다시 머리를 밀고 훈련에 들어갔다. 이때 민우혁에게 생긴 첫 번째 꿈은 바로 “야구선수가 돼서 노래를 하자”다. 당시 야신(야구의 신)으로 불리던 이종범 선수가 음원을 내는 것을 보고 든 생각이다.

마음을 다잡고 훈련에 열중했지만 부상은 계속 그를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되게 크게 다쳐서 1년을 통으로 쉬었다. 무릎 인대와 골반이 크게 부상을 입어 훈련이 불가했던 것. 재활에 매진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또다시 같은 곳을 다쳤다.

“지나간 10년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고요”라며 담담히 지난날을 추억하던 민우혁은 “그래도 LG트윈스에서 함께 해보자고 연락이 왔었다”고 전했다. 선수들과 함께 재활 훈련을 하고 제주도에 있는 탐라대학까지 진학한 그는 다시 한 번 투지를 불태웠지만 이번엔 발목 인대가 완전히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뮤지컬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 민우혁은 무일푼으로 무작정 서울행 티켓을 샀다. 친구와 함께 고시원에서 살면서 하루에 닭꼬치 하나로 버텼다. 두 달만에 30kg이 빠져서 187cm에 70kg대가 됐다. 모델 활동을 하려던 찰나에 길거리 캐스팅으로 가수 제의를 받았고 6인조 혼성그룹을 준비했지만 데뷔는 쉽지 않았다. 이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본 연예계 관계자가 OST 제의를 했고 거짓말처럼 일사천리로 녹음까지 하게 됐다. SBS 드라마 ‘요조숙녀’ OST 중 ‘숙녀에게’와 엔딩곡으로 쓰인 ‘저스트 위드 유’가 그것. “잘될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는 민우혁의 말처럼 이후에도 두 번 소속사를 옮겼지만 주변의 상황으로 데뷔가 무산됐다. 그리고 입대를 결정했다.

제대 후 연극 배우 출신인 어머니께 직접 연기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러간 친구네 집. 그곳에서 민우혁은 처음으로 연기에 눈을 뜬다. 그리고 주변의 권유에 뮤지컬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젊음의 행진’ 체육선생님 역할에 떡 하니 합격한다. “모두가 옆에서 제가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내가 지금까지 왜 뮤지컬을 안 했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때부터 뮤지컬 배우라는 꿈이 생겼다”고 추억했다.

▲결혼, 그리고 ‘불후의 명곡’

“사실 ‘젊음의 행진’ 이후에도 일이 없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아내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줬죠”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민우혁의 아내는 그룹 LPG 출신이자 현재 쇼핑호스트로 활약중인 이세미다. 두 사람은 2012년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그는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다시 도전을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하고 싶은 거, 하려고 했던 거 다시 하라고요. 응원에 힘입어 오디션에 도전하게 됐죠”라고 회상했다. 이 때쯤 지금의 소속사인 열음엔터테인먼트를 만났고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 ‘풀하우스’ ‘사랑하니까’ ‘총각네 야채가게’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를 거쳐 ‘레미제라블’ ‘위키드’ ‘아이다’까지 쉼없이 작품을 올렸다. 3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소극장에서 대극장까지 주연으로 급성장을 이뤘다. 끝없는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근래 이런 성장 속도를 보인 배우는 남녀를 통틀어 민우혁이 유일하다. 

그런 그가 요즘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KBS ‘불후의 명곡’이 그것. “매번 저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분이다”라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그는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신다. 저 역시 완벽하게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MC인 정재형 형님께서 첫 출연 뒤풀이 자리에서 ‘민우혁 씨는 다시 나와야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는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첫 출연부터 현재까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첫 출연에 첫 1승을 거뒀고, 이후 2등, 2등, 우승, 2등을 기록한 것.

생각하는 대로 꿈을 이뤄가는 그. 이쯤 되자 그의 다음 목표가 궁금해졌다. “지금 ‘불후의 명곡’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최영호 편곡가님과 이야기 한 게 있어요. 둘 만의 듀엣 콘서트를 열자고 약속을 했거든요. 뮤지컬은 제가 연기와 노래를 할 수 없는 그날까지 임하고 싶고요. 제 삶의 이유중 하나니까요. 젊은 시절 겪었던 힘든 일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민우혁을 만들어준 자양분인 것 같아요. ‘민우혁 1막’은 이제 시작됐습니다. 저의 스토리는 지금부터예요. 앞으로도 쭉 지켜봐 주세요.”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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