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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생] '응팔'이 선택한 1988년과 '케빈은 12살'이 선택한 1967년

입력 : 2015-11-17 09:14:41 수정 : 2015-11-17 09: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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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의 연예계생태보고서] 1990년 KBS에서 방영된 미드 ‘케빈은 12살’의 원제는 ‘The Wonder Years’다. 해석하자면, ‘경이로운 시절’ 정도 되겠다. 주인공 케빈과 그의 가족 이야기인데 1967년이 배경이다. 미국 ABC 방송사에서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방영됐고 국내에서는 1990년부터 1∼2년간 방송이 됐던 것으로 다들 기억할 것이다. 12살 케빈이 주인공이고 폴과 위니가 이웃집 친구들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으로 믿음직한 가장, 어머니는 살림밖에 모르는 주부다. 이혼이 일반화하지 않던 시절의 전형적인 엄마 아빠인 셈이다. 큰 누나는 반항적이면서 사회 의식을 내세우는 히피, 형은 늘 케빈을 괴롭힌다. ‘꺼벙해’ 보이는 폴과 어느새 케빈에게 이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위니까지 아직은 미국이 순수하고 희망에 가득찬 느낌이 강하게 드는 드라마였다.

최근 봤던 국내 드라마와 비슷한 느낌이 날 것이다. 바로 요즘 장안의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케이블채널 tvN의 ‘응답하라 1988’이다. 쌍문여고에 다니는 17세 여학생인 성덕선(혜리)이 주인공이고 동네 친구들은 온통 남자들인데 모두 순박하기 그지 없다. 아버지(성동일)는 은행원이면서 정에 약한 전형적인 한국남자, 어머니(이일화)는 살림밖에 모르지만 자식 사랑은 남다른, 역시 당시 볼 수 있던 보통의 엄마들이다. 이혼은 딴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시절. 언니 보라(류혜영)는 대학생으로 운동권에 늘 덕선을 혼내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동생 노을(최성원)은 해맑고 착한 순둥이다. 이 드라마 역시 왠지 모르게 눈물을 뽑아내는데 지금보다 더 많은 희망이 느껴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묘하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신자유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레이건과 부시까지 두 차례에 걸쳐 보수주의 공화당 정권이 집권했고 새롭게 부상하는 일본 경제가 미국의 경제를 집어삼킬 태세였다. 신자유주의 덕분에 대량 해고가 이뤄졌고 중산층은 붕괴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1960년대와 비교하면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고 있던 미국이었기에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현재는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 빈부격차, 중산층의 붕괴 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지금보다 더 못먹고 못가졌지만 희망을 가졌고 서로 나누는 삶에 익숙했다. 옆집 아이가 공부 못한다고 못놀게 하는 부모는 일부 강남 지역 졸부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천박한 행태로 보이던 시절이었다. 아이들끼리 동네 골목길에서 놀아도 부모들이 불안해 하지 않던,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드라마의 복고 열풍은 단순히 과거를 미화하기 위한 게 아니다. 현재의 고단함을 위로하기 위한 극적 장치이자 소재다. 한국의 현재나 미국의 1980년대 후반 모두 고단하다. 그러면서 잠시 과거에서 위로를 찾고 싶은 대중의 심리가 엿보여 씁쓸하다.

<연예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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