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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토크] 박원상, "야만의 시대 돌아보니 절로 눈물 나더군요"

입력 : 2012-11-15 21:45:05 수정 : 2012-11-15 21: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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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근태 모델로 한 고문희생자 역할
각종 고문신 대역 없이 촬영하며 고생
그 고통 실제로 견딘 이들에 부채의식
완성된 영화 두 번 보고 두 번 다 울어
배우이면서 관객으로서 박원상에게 이 영화는 아주 특별해 보였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두 번째로 정지영 감독과 함께 한 영화 ‘남영동1985’에서 박원상은 김종태란 인물을 연기한다. 민주화운동가이자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이루말할 수 없는 고문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인물이다. 차츰 인간성을 상실하고 자아가 분열될 만큼 힘든 경험을 하게 되는 김종태는 정지영 감독이 올해 초 지병으로 별세한 민주화운동가 출신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

비교적 가볍게 최근 근황에 대한 화제로 시작된 인터뷰는 한 편의 1인 연극을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만큼 박원상은 여전히 영화에 깊이 빠져 있었고 인터뷰도 하나의 작품이라 불릴 만큼 열정적이었다. 모처럼 오랜만에 만나보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배우였다.

“‘12월31일’과 ‘진영이’까지 올해만 영화 촬영만 계속 하네요. 내년에는 다시 제가 속한 극단 차이무로 복귀해야죠. 안 그러면 쫓겨나게 생겼어요. 차이무는 제게 첫 극단이자 마지막 극단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곳이거든요.”

고교 시절부터 연극에 빠졌다. 연극을 전공할까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학시절 독어독문학을 전공했지만 늘 연극반 생활에 파묻혀 지냈다. 88학번이니 아직 대학가에 학생운동이 극렬하던 시절이다. 심지어 같은 과 선배가 캠퍼스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분신할 때도 연극 무대에 서 있던 박원상이다. 대학 졸업 후, 연극과 동시에 영화 ‘세 친구’로 서로 다른 두 장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세 친구’에서 함께 했던 임순례 감독이 그를 기억해 주연급으로 캐스팅 한 작품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였다. 박해일과 함께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박원상은 오디션 없이 캐스팅이 되는 연기자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박원상은 묵묵히 여러 영화를 통해 연예인이라는 의식 없이 오직 연기에만 애착을 가진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그에게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정지영 감독님이나 안성기 선배님, 그리고 이경영 선배님 모두 제게는 깊이 각인된 분들이에요. 젊은 시절 ‘하얀 전쟁’이라는 영화를 연출하고 출연한 분들이시죠. 제가 직업배우가 돼서도 이 분들과 함께 하리라곤 꿈도 못꿨어요. 그러다 ‘부러진 화살’을 만났죠. 이런 인연이 내게도 찾아오는구나 싶었죠. 가슴이 콩닥거리는 기분이었죠.”

‘부러진 화살’ 이후 정지영 감독이 웬만하면 함께 한 이들과 다음 작품을 찍어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저없이 합류를 결정했다. 그런데 김종태라는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다. 박원상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투정을 부렸다.

“처음에는 아예 실명으로 시나리오가 나왔어요. 감독님께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건데 더구나 큰 인물이시니까요. 김종태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여서 하루는 술 마시는 자리에서 이경영 선배님이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선배님께 혼나기만 했죠. 그러다가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고문 장면이 복병이었던 거죠. 처음 고문 장면을 찍고 이에 대비하지 못한 절 원망했죠. 하지만 최대한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고문 연기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죠.”

실제 정지영 감독이 수많은 작품을 찍었지만 이토록 힘든 영화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실고문 당하는 연기를 한 박원상은 오죽 했을까. 그래도 묵묵히 박원상은 이 작품을 통해 가장 빛나는 연기를 보여줬다.

“처음 제목은 ‘야만의 시대’였어요. 정말 미친 시대였던 거죠.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하는 게 고문이라는 의미 부여가 이 영화의 메시지에요. 늘 영화를 관객으로 보지 못하고 제 연기를 놓고 왜 저렇게 했을까 하면서 보는데 이 작품은 달랐어요. 그런데 두 번 보면서 모두 눈물이 흘렀어요. 제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의 이야기가 훌륭한 거죠. 결국은 부채의식 같아요. 저 분들의 고통이 보이면 보일수록 자의식이 더 커지는 거죠.”

민주화 운동 시절 수많은 선배들이 고문을 비롯한 반인권적인 상황을 견디고 싸웠기에 지금처럼 고문과는 거리가 먼 시대를 살아오고 있다는 것. 80년대 데모보다는 연극에 빠져있던 박원상이 새롭게 느끼는 이 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깨달음이다.

글 한준호, 사진 김재원 기자 tongil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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