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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코로나19로 마주한 韓 영화산업의 딜레마

입력 : 2020-03-24 10:00:00 수정 : 2020-03-24 09: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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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판데믹 사태로 세계대중문화산업도 예외 없이 폭격을 맞고 있다. 특히 공연장이나 상영관 등을 통한 ‘현장형’ 예술장르, 그중에서도 ‘가장 돈 많이 들어가는 예술장르’ 영화산업 타격이 어마어마하다. 가히 전시(戰時)를 방불케 할 정도 쑥대밭 수준이다. 북미에선 AMC 씨어터 등 3대 극장체인이 상영관 전체를 셧다운시킴에 따라 1200여개 영화관에서 동시에 붙이 꺼졌다. 3대 체인은 최소 6~12주간 이 같은 셧다운을 유지할 계획이다.

 

 한국극장가는 셧다운까지 가고 있진 않지만, 현황 자체는 셧다운이나 마찬가지다. 3월1~14일 국내 영화관객 수는 전년 동기대비 85% 줄었다. 나아가 지난 16일 영화관객 수는 3만6447명으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물론 관객규모는 해당시기 엔트리 따라 달라지는 것이긴 하지만, 이 정도 차이면 그런 세세한 고려도 무의미하다. 적어도 2000년대 들어 최대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듯 처참한 상황을 놓고, 할리우드의 대책은 간명하다. ‘극장’을 포기하겠단 것이다.

 

 디즈니에선 현재 북미극장흥행 1위를 달리는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을, 유니버설은 여전히 흥행 2위에 랭크돼있는 ‘인비저블 맨’을 20일부터 VOD로 함께 제공하고 있다. 통상 90일 정도로 여겨지던 1차시장 상영보장을 깨는 결정이다. 더 있다. 20세기폭스는 지난 2016년 세계극장가에서 3억5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애니메이션 ‘트롤’ 속편 ‘트롤: 월드 투어’를 다음달 10일 아예 극장과 VOD 양쪽 플랫폼에서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다. 상식을 초월하는 위기 앞에선 상식을 깨는 전략들도 명분을 얻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할리우드발(發) 배급 혁명도 한국 상황에선 통용되질 않는다. 한국은 극장을 통한 영화 1차시장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영화산업 전체매출의 약 75%가량이 극장에서 나온다. 2019년 현황으론 76.3%다. 이어 2차시장 디지털 온라인 매출이 20.3%, 해외매출 3.4% 순이다. 미국선 2차시장 규모가 1차시장을 압도한지 수 십 년째지만 그동안 한국은 바뀐 게 없다. 그러니 할리우드처럼 아예 극장상영 포기하고 당분간 VOD 직행배급을 택한다 해도 손실규모는 여전히 막대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한국서 ‘영화관람’이란 과연 어떤 맥락으로 성립되는 여가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1인당 연간 극장관람 횟수, 그러나 위 언급했듯, 미국선 ‘안방극장’ 2차시장에 이어 3차 부가상품시장까지 개발된 게 어언 30여 년 전인데, 한국선 그때나 지금이나 수익 3/4 이상이 극장으로만 ‘몰빵’된 채 바뀌질 않는단 고질적 딜레마 부분에 대해서다.

 

 애초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근본적으론, 한국대중은 영화란 장르 자체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한국서 영화 극장관람은 그저 ‘만만해서’ 선택되는 여가에 가깝단 얘기다. ‘바깥’에서 가장 싼값에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장 손쉬운 형태로 즐길 수 있는 여가. 그래서 경제 불황에도 딱히 타격받지 않는 여가로 꼽히게 됐다. 이를테면 같은 ‘경제 불황형 여가’ 또 다른 갈래, 만화방 부활과 맞물려 생각해볼 사안이다.

 

 그러니 영화산업 고조와 함께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2차시장 ‘마니아 문화’ ‘콜렉터 문화’조차 정착돼본 적이 없다. 1980~90년대 경제호황기, VCR 시절부터도 그랬다. 몇몇 대형업체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판매용 비디오, 즉 셀-쓰루(sell-through) 비디오 전략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DVD나 블루레이 등으로 콜렉터용 미디어가 교체된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극장상영에서 연간 10위 내 든 영화 DVD가 출시 1년 동안 100장이 채 안 팔린 쇼킹한 사례들도 종종 접할 수 있었다.

 

 결국 한국대중은 그저 ‘밖에 나가 뭐라도 하며 놀고 싶을 때’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영화 극장관람을 선택하는 것일 뿐, 다른 게 아니란 얘기다. 그리고 이처럼 기이한 시장 배경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명한 아포리즘, “자전거를 즐기기 위해선 먼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통찰이 그 기저논리로 작동한다.

 

 한국사회 특성상 유소년 시절부터 치열한 생존경쟁 장(場)들에 연속적으로 휩쓸리다보니 이렇다 할 여가나 취미를 ‘배울’ 시간을 찾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데이트 등 각종 ‘바깥 여가’ 선택에서도 그저 자리에 앉아 가만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가장 간편하고 손쉬운 극장관람이 전체 여가시장을 장악해버린 상황이란 것. 어떤 의미에선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기보다, ‘극장에 가기 위해’ 극장을 찾는단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겠다.

 

 시장 성향이 이런 식이라면 사실 앞으로도 문제가 많다. 언젠가 코로나19 사태는 어떤 식으로건 종식될 것이다. 그럼 사라졌던 극장관객들도 일단 다시 돌아오긴 할 테다. 그러나 한국은 극단적 출산율 저하로 모든 대중문화시장 기반이 돼줄 젊은 층 인구가 곧 절벽으로 떨어지는 환경이다. 그럼 영화 장르에 특별한 애착 없이 그저 ‘만만해서’ 극장을 찾던 소비자들 대상 손쉬운 장사도 급격히 위축돼버린다.

 

 그럼 한국영화산업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이제 와서 다시 충성도 기반 ‘마니아 전략’을 시동 건다 해도 과연 제대로 먹힐 수 있을까. 아니면 대중음악산업처럼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 ‘글로벌 그들만의 세상’으로 가야하는 걸까. 어찌됐건 할리우드 같은 배급 혁명 대책조차 통용될 수 없는 한국만의 코로나19 타격은 이처럼 한국영화산업 근본적 딜레마를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극장매출이 총 매출 75%가 넘는 영화산업 딜레마 말이다. 그리고 그 딜레마를 해소시킬 유예기간은 그리 많이 남질 않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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