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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시선] 평범해서 특별한 '동네 한 바퀴', 1년간의 발자취

입력 : 2019-11-22 07:00:00 수정 : 2019-11-22 09: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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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정가영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KBS1 교양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이하 ‘동네 한 바퀴’)에 걸맞은 시다. 그저 지나칠 땐 몰랐던 동네의 소소한 것들을 재조명하고, 그 의미를 찾아주는 ‘동네 한 바퀴’가 방송 1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파일럿 방송 후 11월 24일 첫 방송된 ‘동네 한 바퀴’는 ‘아날로그 아재’ 배우 김영철이 ‘동네지기’가 되어 떠나는 스토리텔링형 도시 기행 다큐멘터리다. ‘찬란하다 강변 동네 – 서울 망원/성산동’를 시작으로 16일 ‘다시 피어나다, 철공소 골목 - 서울 문래동·영등포동’까지 49개의 동네를 지나왔다. 

 첫 방송을 앞두고 제작진은 ‘동네 한 바퀴’의 세가지 키워드로 ‘오래된 점포’, ‘사람 지도’, ‘인문학적 접근’을 언급한 바 있다. 아날로그적 접근을 통해 오래된 사람들과 가게, 그들이 품은 인문학적 감성을 담아내고자 한다는 것. 제작진이 내세운 키워드 그대로 ‘동네 한 바퀴’는 시청자가 함께 골목을 거니는 듯한 감상을 주면서 도시의 풍경을 비추고 주민들과 대화한다. 그리고 늘 가까이 있었지만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정겨운 감성으로 풀어낸다. 

 

 아날로그, 인문학, 나아가 배우 김영철의 정겨움까지 제대로 시너지를 냈다. ‘동네 한 바퀴’는 쟁쟁한 예능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는 토요일 오후 7시 10분에 파격 편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평균 6∼7%대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흔히 겪는 시청률 등락 현상도 없다. 시청자들의 꾸준한 지지 덕분이다.

 ‘동네 한 바퀴’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배우 김영철의 존재감이다. KBS ‘태조왕건’(2002)를 통해 전무후무한 궁예 캐릭터를 만들었고, SBS ‘야인시대’(2003)의 장년 김두한을 연기하며 길이 남을 명대사 “사 딸라”를 탄생시켰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기업가에서부터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까지 매 작품 무게감 있는 캐릭터를 그려냈고, 현재 JTBC ‘나의 나라’의 이성계로 안방극장을 찾고 있다. 

 

 1970년대 배우 생활을 시작해 5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그의 친근한 이미지는 ‘동네 한 바퀴’에 적격이었다. 김영철과 눈이 마주친 동네 사람들은 반가운 미소와 함께 그의 두 손을 맞잡는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방송’이 아닌 ‘진심’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반가움은 더 하고, 하교길의 중고등학생들도 “사 딸라”를 외치며 김영철을 둘러싼다. 자신의 동네에 김영철이 찾아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동네 한 바퀴’의 애청자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길을 걷다가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눈길을 준다. 뿐만 아니라 옛 정취를 그대로 남겨둔 골목의 노포를 발견하면 어김없이 문을 두드린다. ‘한국인의 밥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인간적인 그의 먹방은 주말 저녁 시청자들을 안달나게 만든다. 

 특별한 것 없이 잔잔한 ‘우리네 이야기’라는 점이 시청자를 당기는 ‘동네 한 바퀴’만의 매력이다. 나아가 제작진의 섬세한 배려도 돋보인다. 흔히 시청자들은 방송에 등장하는 식당 국물맛을 직접 맛보고 싶어하고, 골목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어한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읽은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에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을 만들어 회차별 방송정보를 공유한다. 자세한 주소와 전화번호부터 기타 안내사항까지 전달하고 있다. 간략한 그림지도로 동네 길잡이를 대신한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우리 동네에 방문해 달라’는 요청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떠나온 동네의 정겨운 모습을 비춰준 제작진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글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마을’을 뜻하는 ‘마실’이라는 방언이 있다.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을 의미하기도 하는 이 단어와 현대인들은 쉽게 연결지을 수 없다.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이들에게 ‘마실’을 떠날 장소도, 시간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네 한 바퀴’는 약 50분의 시간만으로 ‘마실’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것도 방금 지나쳤을 지도 모르는 ‘우리 동네’의 구석구석을 말이다.

 

 김영철은 총 49회차의 동네 중 절반 가량인 22회차 동안 서울의 곳곳을 방문했다. 가장 최근 방문지(16일 방송 분)의 영등포와 문래동의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김영철은 자신의 모교인 장훈고등학교를 찾았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배우가 되리라 생각지 못했다”는 그는 1971년의 졸업앨범을 펼쳐보며 추억 소환에 나섰다. 반 백년의 시간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를 향해 인사를 건냈고, 운동장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학창시절을 추억했다. 

 

 제작진은 ‘동네 한 바퀴’를 도시가 품고 있는 가치를 재발견해주는 도시탐험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잃어버린 채 살아온 동네의 아름다움, 오아시스 같은 사람들을 찾는 여정이다. ‘동네 한 바퀴’는 변화하고 있는 지역 중에서도 옛 정취를 간직한 곳을 무대로 삼는다. 서울, 경기 지역(약 63%)에 집중됐지만, ‘동네 한 바퀴’의 여정은 충남, 강원, 경남, 경북, 제주도 등 전국구에 걸쳐 1년 여 간 펼쳐졌다. 아직 김영철의 발이 닿지 않은 지역은 충북과 부산. 이외에도 수많은 지역이 김영철의 ‘마실’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쯤 내가 사는 동네에 김영철이 방문할까, 혹여 내 단골집에 그가 나타나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감이 생겨나는 이유다.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KBS 제공

 

 그래픽=권소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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