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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준의 끄라시바 월드컵] 멕시코전, 이처럼 마음 편한 경기가 또 없다

입력 : 2018-06-23 11:00:00 수정 : 2018-06-23 11: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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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로스토프나도누(러시아) 권영준 기자] 옛말에 ‘이기면 좋고, 지면 어떠하리’가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상대하는 멕시코전이 그렇다. 이기면 기적이고, 패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한국 축구의 현실인 것을.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두 번째 도전에 나선다. 대표팀은 24일 0시(한국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리는 멕시코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에 나선다. 지난 18일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치른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0-1로 패한 대표팀은 멕시코와의 맞대결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맞선다. 만약 멕시코에도 패한다면, 16강 진출은 산술적으로 어려워진다.

이날 패배는 곧 끝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수단의 부담감과 중압감이 상당하다. 특히 멕시코는 앞선 1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꺾으며 급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사실 경기를 앞두고 해설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솔직히 이번에는 경기가 어떻게 될지 두렵다”고 설명했다. 불현듯 4년 전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알제리전이 떠오른다.

사실 객관적인 전력상 알제리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멕시코는 FIFA 랭킹 15위에 올라 있는 강팀이다. 57위인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 월드컵 무대에서 이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FIFA 랭킹 5위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무조건 승리를 거둔 후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 11위 페루는 2연패를 당해 16강 탈락을 확정지었다. 19위 이탈리아는 월드컵에 진출하지도 못했고, 41위 모로코-45위 이집트는 조별리그 2연패로 16강 진출이 무산됐다. 57위인 한국이 비빌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그래서 발악을 하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 그래도 힘든 것이 월드컵 무대이다. 이를 몸소 경험했던 손흥민은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자신감만으로 뛸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라면서 누구보다 처절하게 월드컵을 준비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쓰디쓴 아픔을 경험한 손흥민, 기성용, 김영권을 주축으로 대표팀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레오강 전지훈련에서 오히려 체력 트레이너들이 말릴 정도로 단내나는 훈련을 소화했다. 옆에서 지켜보지 않고선 모른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FIFA가 규정한 걷어내기를 패스 미스로 간주해버리고, 최선을 다해 뛴 선수에게 전봇대, 어슬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쏟아낸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지도 않는다. 심지어 선수를 넘어 가족, 친지에게까지 욕설을 퍼붓는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기사를 읽으면 ‘적폐 기사’ ‘협회에 돈 받고 쓰는 기자’고 간주해버린다. 물론 근거는 없다. 지난 22일 브라질을 승리로 이끄는 쐐기골을 터트린 네이마르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문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과정을 겪으며 월드컵 무대까지 온 지 모른다. 그저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라고 언급하며 서러움을 드러냈다.

물론 욕설을 하고 비난을 하는 것은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팬들은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에게 대표팀에서 은퇴하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멕시코 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자기 시간과 돈을 투자해 이곳 러시아까지 찾아와 대표팀을 응원한다. FIFA가 팬 AD를 통해 예상한 한국-멕시코전 관중은 42600명이다. 이중 한국 관중은 900명이다. 환승 중심 공항인 모스크바 공항과 로스토프 공항에는 연일 ‘솜브레로(챙이 넓고 큰 멕시칸 모자)’를 든 멕시코 팬 수백명이 몰려오고 있다. 로스토프나도누 시가지에서 열리는 팬 페스트(축제)에도 멕시코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앞서 스웨덴전이 열렸던 니즈니 노브고로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대표팀이 훈련한 만큼 멕시코도 훈련했고, 한국 대표팀이 간절한 만큼 멕시코도 간절하다. 하지만 선수단은 이 가운데서도 실낱같은 희망, 천분의 일에 가까운 기적을 품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팬들의 성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역경 속에서 기적을 향하는 대표팀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선수단은 지금 월드컵 무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곧 쏟아질 비난에 두려워하고 있다.

FIFA 랭킹 42계단이나 차이나는 멕시코를 상대로 ‘어디 어떻게 뛰나 한 번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응원하는 것이 과연 대표팀을 위한 응원일까. FIFA 랭킹 42계단이나 차이나는 멕시코를 상대로 ‘승패와 관계없이 마음껏 기량을 펼치기 바란다’는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 대표팀을 위한 것일까.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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