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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5-09 15:59:41, 수정 2018-05-09 15:59:41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CJ의 손해 볼 것 없는 기획 ‘프로듀스 48’

  • 안티에 의한 노이즈도 관심은 관심이라면, 엠넷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48’만큼 방영 수개월 전부터 꾸준한 관심을 모으는 프로그램도 또 없을 것 같다. ‘프로듀스 48’은 AKB48 등 일본 AKS 소속 걸그룹 멤버들과 국내 각 기획사 연습생 등 참가자들이 만나 경연 끝에 시청자투표로 한 팀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스 101’ 시즌3 기획이다. 2년6개월 활동이 예정돼있다. 6월15일 첫 방영된다. 나머지 구체적 사항은 아직 명확히 드러난 바 없다.

    ‘프로듀스 48’ 노이즈 양상은 확실히 유난하긴 하다. 그 지속성도 지속성이지만, 활동 ‘내역’부터가 남다르다. 일단 프로그램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이미 몇 건이나 올라와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안티세력은 K팝 관련 해외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폐지요구 포스팅을 달고 다니기도 한다. 이들의 유의미한 반대이유는 대개 하나로 집중된다. ‘왜 우리가 나서 J팝을 홍보해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을 퍼뜨리는 이들 대부분은 성(性)상품화 반대논리로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에 거부감을 표하는 남성혐오 커뮤니티 일원 내지 자신이 지지하는 기존 걸그룹 지분(?)을 염려해 견제심리가 발동된 팬덤 정도로 보이긴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들 논리가 사실 듣다 보면 그럴싸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란 점이다. 표면적으로 ‘프로듀스 48’은 일본 걸그룹 멤버들을 K팝 인기에 편승시켜 ‘띄워주는’ 식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적 관심을 모으는 K팝을 통해 인지도를 넓힌 일본멤버들이 그 관심을 J팝 아이돌 씬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유도하리란 예상도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일반대중 차원으로도 이 같은 안티논리가 먹혀들어가는 모습이 종종 발견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상황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 조잡한 논리에 불과하다.

    이미 세계인들은 J팝과 K팝을 명확히 구분한다. K팝‘씩이나’ 찾아듣는 해외 팬들이 J팝 구경 한 번 안 해봤으리라 믿는 쪽이 더 이상하다. 그렇게 이리저리 아이쇼핑 해보다 K팝 쪽이 맘에 들어 선택한 게 K팝 해외 팬들이다. J팝은 그간 여러 이유로 숨겨져 있었을 뿐 한 번 노출되면 K팝 시장을 온통 뺏겨버리리란 예상은 J팝에 대한 불안감과 피해의식이 불필요하게 심화된 발상이다.

    반대로, ‘프로듀스 48’의 진정한 의미는 K팝의 인력 풀 확대라 보는 게 타당하다. 될성부른 인재들을 해외에서도 불러 모은단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제 해당시장에서 이미 팬덤을 갖춘 기성 인재들까지 K팝에 합류시킨단 차원으로 봐야한다. K팝은 그 팀 구성원들 ‘인종’ 또는 ‘국적’ 차원 지칭이 아니라 일종의 ‘서브장르’에 더 가까워진 지 오래다. 하나의 음악적 방향성이자 방법론이다. 한국인 멤버 한 명 없이 만들어내도 국내 기획사 주체로 전체를 컨트롤하고 수익을 얻는 구조라면 그건 산업적으로 여전히 K팝이다. ‘프로듀스 48’ 배출 팀이 어떤 성과를 내건 그건 곧 K팝의 또 다른 성공담이 된단 얘기다.

    물론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국 측에 손해 볼 게 없는 기획이라면 대체 왜 아키모토 야스시의 AKS는 이처럼 ‘남 좋은 기획’에 동참했느냐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AKB48 및 48그룹 전체 현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AKB48은 현재 하락세다. 여전히 싱글 100만 장대를 팔고는 있지만 ‘파는 구조’가 예전과는 다르다. 2010~2012년 전성기 시절 40여명 남짓한 본체 멤버들로 100만장을 팔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 후발 자매그룹들인 SKE48, NMB48, HKT48 등 멤버들까지 총동원돼 300여명 이상이 같은 100만장 대를 팔고 있다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본체 AKB48 실적만 억지로 간당하게 유지시키고 있을 뿐 그를 지탱하는 자매그룹들 실적은 격렬한 하향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수익구조 자체가 이미 말이 안 되고, 사실 붕괴직전이다.

    근본적으론 로테이션 그룹 한계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초창기-전성기 인기멤버들을 우르르 ‘졸업’시키는 과정에서 일단 분위기가 저하됐다. 가장 잘 나갈 때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멤버들이 빠지다 보니 이젠 ‘이름만 국민걸그룹’이 된 상태다. 그 사이 젊은 팬층은 ‘사카미치 시리즈’라 불리는 46그룹들로 빠져나갔다. 48그룹 노선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 이른바 ‘웃지 않는 아이돌’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걸그룹들이다.

    구글 트렌드 등 젊은 층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을 보면 상황이 더 쉽게 이해된다. 최상위 3강은 46그룹들인 노기자카46와 케야키자카46, 그리고 트와이스가 차지하고 있다. 48그룹은 본체 AKB48부터가 그 아래다. 특히 젊은 팬층을 완전히 잃어버렸단 지표가 눈길을 끈다. 지난해 7월 일본 라인 앙케트 조사에 따르면, 현 시점 AKB48 팬들 중 30세 미만은 17%에 불과하다. 20대 13%, 10대는 4%로 사실상 ‘10대 팬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40대 이상이 전체 팬 중 61%를 차지한다. 그중 60대 이상이 15%로 20대를 능가한다. 이미 아이돌상품으로서 상식선을 넘어선 지표다. 그만큼 AKB48은 ‘낡았다’.

    1020 팬층이 더 붙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대중성도 떨어졌단 얘기가 된다. 전성기 수준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멤버는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후발 멤버들은 사실상 팬들 외엔 대부분 모른다. 이러면 아무리 100만장씩 팔아도 미디어부터 이들을 꺼리기 시작한다. 주목도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돌상품으로서 근간이 무너지고 있는 형태다.

    이에 따른 불안감은 당연히 AKS 경영진만 갖는 게 아니다. 48그룹 멤버들도 똑같이 느낀다. 현재 ‘프로듀스 48’에 참가하고 있는 HKT48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48그룹 내 인기투표인 AKB 총선에서 4위를 차지하고 올해는 1, 2위를 다툴 그룹 내 최정상급 인기 멤버다. 그런 멤버조차 인터넷방송에서 “어릴 적 AKB를 TV에서 봤을 땐 엄청 빛나 보였다. 그러나 내가 주역이 되고 3번이나 센터에 섰지만 나는 AKB를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거 같다”며 “(음악방송에 출연하면) 다른 가수들도 많이 보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라 토로한 바 있다. 그저 팬덤 내에서나 인기인일 뿐 이미 대중적 스타노선에선 벗어났단 자기인식이다. 그러니 이번 ‘프로듀스 48’에 48그룹 내에서만 무려 85명이 지원했단 후문이 들리고, 미야와키 등 최고 인기멤버들까지 경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AKB48을 위시로 한 48그룹은 이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 근본원인으론 대부분 아이돌그룹 특유의 ‘스토리성’ 부재 문제가 지적된다. 전성기 시절 인기멤버들은 모두 AKB48 무명시절부터 분투하며 팀을 최정상으로 끌어올린 이들이다. 강렬한 언더독 스토리성이 살아있었고, 그 성장을 지켜보는 팬들의 대리만족 심리가 충족됐다. 그런 종류 대리만족, 대리보상형 성장 스토리야말로 어찌 보면 아이돌 팬덤 확장에 있어 근간이 되는 요소다.

    그러나 현재 AKB48을 구성하는 멤버들은 그런 스토리성을 살릴 수 없는 멤버가 대다수다. 48그룹이 대세가 되고 난 뒤 가입한 신데렐라들이 많다. 그리고 브랜드 타성에 젖었다. 각자 개성을 보여주려 노력한다곤 하지만 대부분 졸업멤버들이 팔아먹던 캐릭터를 반복할 뿐이다. 틀이 이미 짜여있는 레일 위를 달리기만 하는 맥 빠지는 신데렐라 집단이 돼버린 셈이다. 그러니 신세대 팬층 유입은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프로듀스 48’은 바로 이 같은 로테이션 그룹 딜레마에 전환점을 마련해줄 수 있는 기획이다. 한 마디로 ‘새로운 스토리’다. 하락세에 놓인 거물급 팀 멤버들이 낯선 나라까지 와서 낯선 룰, 낯선 동료들과 만들어내는 우정과 경쟁의 드라마, 밑바닥부터 다시 치고 올라가는 제2의 언더독 성장기다. 단박에 대중적 화제성을 얻어내기 쉽다. 거기다 그 환기의 배경은 젊은 층에 인기 있는 K팝으로의 전환이다. 이미 21년차 로테이션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가 한창 바닥을 쳤던 2012년 당시 EDM 음악과 포메이션 댄스 등으로 실험해 성공한 바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그렇게 새로운 화제성을 거머쥔 48그룹 멤버들이 본래 소속된 48그룹들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분위기를 쇄신한다는 순서다. 득이 명확하다.

    물론 ‘프로듀스 48’을 기획 연출하는 엠넷의 CJ E&M 측 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단순히 배출 팀의 일본시장 진출 용이성만이 아니다. 아키모토 야스시란 거물 프로듀서와의 협력관계를 통해 그간 대형기획사들만이 수업료 톡톡히 치러가며 확보한 일본시장진출 노하우를 단박에 얻어낼 수 있다. 일본서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자사소속 걸그룹 프로미스나인 등의 활로도 그렇게 개척될지 모른다. 아직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프로미스나인 멤버 장규리를 굳이 ‘프로듀스 48’에 참가시키기로 결정한 것도 그런 계산의 포석일 수 있다.

    이렇듯 일본 측과 한국 측 이해관계가 우연찮게 레고블록처럼 맞아떨어진 기획이 바로 ‘프로듀스 48’이란 얘기다. 서로 필요로 하는 조건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만난 기획이다. 타이밍도 서로 딱 맞았다. 누가 손해보고 누군 득만 보는 구조 자체가 아니다.

    어찌됐건 현 시점 분명히 알아둬야 할 부분이 있다. 이미 아이돌산업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대중음악산업에 있어, 한국은 영화의 할리우드, 야구의 메이저리그와 유사한 일종의 ‘메카’가 돼있단 점이다. 한국이 아시아 전역으로 팔러 다니는 상황을 지나, 이제 아시아 전역이 알아서 한국으로 몰려드는 형국이다. 이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이곳에서 재기를 꿈꾸며, 그렇게 이곳을 중심으로 각종 트렌드와 산업 방향이 확산된다. ‘프로듀스 48’도 그런 큰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된 기획이다.

    바로 얼마 전 큐브엔터테인먼트에선 외국인 멤버가 전체 절반을 차지하는 걸그룹 (여자)아이들을 론칭했다. 그리고 론칭 즉시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미 J팝에 대한 견제 같은 철지난 이슈들을 들먹일 시점이 아니란 얘기다. 지금은 아시아 대중음악산업 중심에 선 장(場)으로서, 더 밀접한 협력관계와 그에 따른 원활한 시장 흐름을 통해 서로서로 시장을 키워내는 발상을 꾀해야 할 때다. 그렇게 아시아가 미국과 유럽을 넘어서는 최대 대중음악시장으로 성장할 때, 세계 엔터테인먼트 패권은 바뀐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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