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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사회파 영화 거품 터지니 작은 영화가 뜬다

입력 : 2018-04-02 10:43:28 수정 : 2018-04-02 10: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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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작은 영화’들 쾌거가 화제다. 올해 1/4 분기 공개된 한국영화들 중 명확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 4편, ‘그것만이 내 세상’ ‘리틀 포레스트’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곤지암’ 얘기다. 이중 제작비 58억 원이 투입된 ‘그것만이 내 세상’와 75억 원짜리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정도가 중급영화, 나머지 두 편은 사실상 저예산 영화다. ‘리틀 포레스트’ 순제작비는 15억 원 선, ‘곤지암’은 11억 원 선이다. 이밖에 손익분기 근처까지 간 ‘사라진 밤’이나 현재 분투 중인 ‘소공녀’ 역시 중급 이하 작은 프로덕션이다.

반면 블록버스터들은 올해 줄줄이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다. 130억 원이 들어간 ‘염력’, 110억 원이 투입된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등이 차례로 손익분기를 넘지 못한 채 쓰려졌고, 특히 ‘염력’은 근래 보기 드문 대참패를 기록했다. 손익분기점 370만에 최종 관객수 98만8865명, 1/4 수준만 회수했다. 거기다 며칠 전 개봉한 제작비 100억 대 블록버스터 ‘7년의 밤’까지 고전 중이다. 파죽지세의 ‘곤지암’, 굳히기에 들어간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에 밀려 지난 1일 벌써 4위로 떨어졌다. 투자비 회수는 요원하다.

물론 딱히 이변이라고까지 할 만한 일은 아니다. 변덕스런 대중심리에 바탕을 둔 흥행산업이란 애초 이 정도 변칙적 흐름은 기본으로 안고 가는 구조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1/4분기 현상을 제대로 해석해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기존 공식이 먹혀들어가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대중의식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근본적으로, 이 ‘작은 영화 열풍’이란 사실 그런 식으로 함께 뭉뚱그려 해석되면 곤란하단 점이 있다. 같은 ‘작은 영화’라곤 하지만 엄밀히 75억짜리 영화와 11억짜리 영화는 입장이 다르다. 같은 선상에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두 부류 사이 공통점은 그저 ‘블록버스터가 아니’란 점 정도고, 그런 점에선 사실상 ‘작은 영화 열풍’이 아니라 ‘블록버스터 패퇴’에 방점이 찍힐 필요가 있다. 결국 블록버스터 방향성이 잘못돼있었기에 실패가 잦아졌고, 그 빈틈에서 보다 작은 영화들 일부가 약간의 반사이익을 봤다는 순서다.

이를 방증해주듯, 한창 블록버스터들이 나가떨어지던 지난 2월 한국영화 관객은 전년 동월 대비 21.5% 감소한 699만여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2010년 이후 2월 한국영화 관객 수론 8년만의 최저치다. 결국 블록버스터 약발이 떨어진 것뿐 굳이 작은 영화 약진이라고까지 할 만한 상황은 아니란 얘기다. 워낙 손익분기점이 낮아 블록버스터 패퇴에 따른 약간의 반사이익만으로 흑자를 볼 수 있었던 영화들이 존재했던 것뿐이다.

그럼 1/4분기 한국 블록버스터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뭐였을까. 큰 시각에선, 한국형 블록버스터 성공비결이라고까지 인식되던 이른바 ‘사회파 블록버스터’의 퇴조라 볼 수 있다. 전혀 상관없는 소재더라도 어떻게든 한 켠에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넣어온 기존 방법론 얘기다. 1000만 영화 중 아예 소재 자체가 메시지화 될 수 있었던 ‘국제시장’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을 제외하고도, ‘괴물’ ‘왕의 남자’ ‘베테랑’ 등 여타 장르 영화들까지 대부분 이 노선으로 큰 재미를 봤다.

이 같은 전략이 먹혔던 이유는 하나다. 이러면 미디어 주목을 ‘다른 지점’들에서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연예/문화면을 넘어 정치/사회면으로까지 보도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이슈화되다 국내 첫 1000만 영화 ‘실미도’처럼 탐사보도 프로그램 주제로까지 선정되면 화룡점정이다. 결과적으로 영화에 별 관심 없고 애초 문화방면 자체에서 멀어져있던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끌어들여 이른바 ‘숨어있던 1인치’까지 탈탈 털어내는 효과를 거뒀다. 전체인구 1/4이 보는 영화가 1년에도 한두 편씩 등장하는 신화는 바로 이렇게 완성됐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도 지난해 ‘택시운전사’ 1200만 흥행 이후론 점차 피로감을 보이고 있다. 역시 정치사회적 메시지가 가미된 ‘남한산성’ ‘강철비’ 등의 흥행이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웠고, 특히 ‘남한산성’은 손익분기점도 맞추기 못했다. 겨울시즌 들어와서도 우위가 점쳐지던 ‘1987’에 비해 오히려 위험하단 소릴 듣던 ‘신과 함께-죄와 벌’이 거의 더블스코어 급으로 제치는 대성공을 거뒀다. 거기서부터 용산 사태를 끌어들인 ‘염력’과 여타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골든 슬럼버’ ‘7년의 밤’ 등의 실패로 이어지게 됐단 순서다. 전반적으로 사회파 영화 자체에 대한 피로현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미국, 일본, 이태리영화계 등도 이미 겪었던 현상이다. 모두 68혁명 중심으로 1960~70년대 10여 년 간 사회파 영화 붐이 일었던 시장이지만, 서로 비슷비슷한 패턴 영화들만 이어지니 시장피로도가 심해져 1980년대 이르러선 선명한 오락성 위주 엔터테인먼트 노선으로 갈아탔다. 한국 역시 그 전조를 겪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선 좀 더 지켜봐야할 일이지만, 일단 빨간불 정돈 켜진 셈이다.

물론 저 ‘작은 영화’들도 가만히 블록버스터 패퇴 반사이익만 봤단 얘긴 아니다. 나름 성실히 계산된 엔트리였다고 보는 게 맞다. 그 자체로 언제든 성공할 수 있었던 엔트리다. 다만 블록버스터들의 연이은 패퇴로 좀 더 부각돼 보였고, 또 ‘흐름이 바뀌었다’는 식으로 오판될 소지가 있었던 것뿐이다.

일단 1/4분기 ‘작은 영화 열풍’ 주역들 중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로맨스영화, ‘곤지암’은 공포영화,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는 서브장르로 대충 힐링영화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중 로맨스영화와 공포영화는 사실 근래 트렌드가 돌아오고 있었다. 다만 한국영화가 그 수요를 ‘주워 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 로맨스영화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진 꽤 됐다. 대략 2011년 정도부턴 이미 기획이 고사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대략 그 즈음부터 해외 로맨스영화 득세가 시작했다. ‘어바웃 타임’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 ‘너의 이름은’ 등이 모조리 3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고, 제한시장 내에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나는 오늘 어제의 너와 만난다’ 등 일본 로맨스영화들도 작은 성공을 거뒀다. 이들의 성공비결은 단순했다. ‘로맨스’ 그 자체만으론 더 이상 주목받기 힘들고, 그 외 확실히 눈에 띄는 ‘다른 콘셉트’를 더 보유하고 있어야 한단 점이다. 위 예들로 보면 대략 ‘판타지 설정’과 ‘음악영화’란 부가적 콘셉트가 더 붙는다. 그리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영화 원작의 판타지 로맨스영화다.

공포영화도 마찬가지다. 직전에도 ‘부산행’이나 ‘곡성’ 같은 블록버스터들은 꾸준히 성공을 거뒀지만, 사실 공포영화는 작은 영화 내에서의 효자 장르였다. 그런데 그런 저예산 공포영화들이 하나둘 사라지며 사실상 사멸 위기에 처하다 2016년부터 서서히 트렌드가 돌아오고 있었다. 역시 한국엔 없으니 미국영화들을 통해서다. ‘라이트 아웃’ ‘맨 인 더 다크’ 등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고, 지난해 ‘겟아웃’의 200만 관객동원이 정점을 찍었다. 이후 등장한 ‘해피 데스 데이’ 등도 충분한 성과를 냈다. 그러다 ‘곤지암’까지 온 것이다.

한편 ‘리틀 포레스트’ 같은 힐링영화의 경우 경로가 오히려 더 단순하다. 그런 영화들은 이미 독립영화-다양성영화 시장 내에서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인기였다. 2차시장에서 대박 난 ‘카모메식당’ 등 일본영화 중심으로 인기작들이 많았고, 그 바탕이 된 각종 힐링서적들, 그리고 ‘윤식당’ 등 해외 로케이션 TV프로그램들까지 성공계보가 죽 이어졌다. 이 역시도 크게 보면, 해외영화들이 ‘먼저 알려준’ 흥행 트렌드였던 셈이다.

한 마디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곤지암’ ‘리틀 포레스트’, 모두 굳이 이변이라 볼 일들 자체가 아니란 얘기다. ‘작은 영화 열풍’이라 보기엔 더욱 애매하다. 그저 그 시장수요가 해외영화들을 통해 증명된 장르들을 한국에서 그대로 밟아 성공을 거둔 경우들이라 봐야한다. ‘작아서’ 성공한 게 아니라 ‘이미 성공하고 있었기에’ 성공한 셈이다. 중급 이하 영화들의 경우 해외영화 흥행패턴이 한국영화계에 ‘시장 빈 틈’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국면 차원에서 훨씬 의미가 있다.

어찌됐건 1/4 분기 블록버스터 패퇴와 작은 영화 약진 자체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현상이었다. 사실 지난 수 년 간은 한국영화계 전체가 ‘1000만 영화’에 미쳐있던 상황이었다. 1000만 영화가 계속 나와 줘야 그를 기준으로 한 과감한 투자도 활성화되다보니 극장까지 합심해 온통 ‘1000만 만들기’에 올인해온 시절이다. 언젠간 버블이 터질 수밖에 없는 도박판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단 얘기다. 다행히 버블이 터지기 전 이 같은 환기가 이뤄졌단 점이 다행스럽다. 지금부턴 다른 방향성에서 다른 시장전략을 짜봐야 할 때다. 블록버스터도 바뀌고, 작은 영화들도 더 면밀한 시장관찰에 들어가 봐야할 때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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