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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88. 환갑잔치상을 받은 영가

입력 : 2018-03-13 18:35:55 수정 : 2018-03-13 18: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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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느냐고 말한다.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우연이란 없다. 오늘 닥친 일은 우리가 전생에 지은 업의 결과라는 말이다. 인간이 인과의 법칙을 숙지한다는 것은 각자(覺者)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특히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죽음을 접할 때면 그저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

한 여인이 찾아왔다. 여인은 친동생이 열아홉 살에 타던 오토바이와 함께 다리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 다리에서 30년 전 당시 열아홉이던 백부가 소달구지를 몰고 가다 떨어져 즉사했다는 것. 차이가 있다면 백부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엔 지금처럼 시멘트 다리가 아니었다는 것뿐이다.

열아홉 같은 나이에 같은 다리에서 두 사람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니 우연이라 말하기엔 섬뜩하다. 그날이 있은 며칠 후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구명시식을 청하러 40대 부인이 찾아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해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부친은 환갑날 잔치 준비 중 잠깐 외출을 하셨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잔칫집은 초상집으로 바뀌었고 생신날이 제삿날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아버지 환갑잔치를 못해드린 게 한이 됩니다. 구명시식으로 환갑잔치를 대신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녀는 구명시식을 청하고 돌아갔다. 그분이 나가자마자 다른 분이 오셨는데 좀 전에 가신 분과 사연이 너무 비슷했다.

그분의 사연도 시아버지 환갑날에 벌어졌다. 갑자기 새벽에 인삼밭에 잠깐 갔다 오신다던 분이 잔치가 한창인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당에는 손님들로 가득 찬데 정작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자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구르던 찰나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시아버지께서 뺑소니 사고를 당해 사망하셨다는 전화였다.

이분의 경우도 앞의 사연처럼 환갑날이 제삿날이 되고 만 것이다. 평소 새벽일을 잘 안하시던 양반이 그날따라 귀신에 홀린 듯 밖에 나가셨다 봉변을 당했다. 환갑잔치 못해드린 게 한이 된 그녀는 뒤늦게라도 시아버지 영가를 위한 구명시식을 올리고 싶다 전했다.

“잔칫날이 초상날로 바뀌는 심정은 정말 아무도 모를 겁니다.” 며느리는 그날을 생각하며 울먹였다. 시부모를 잘 모셔서 동네에서 효부로 소문났던 그녀가 뒤늦게 시아버지를 위한 환갑상을 준비하게 됐다. 앞서 아버지를 환갑날 잃은 딸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환갑 잔칫날 돌아가신 부친과 시아버지를 위한 구명시식을 올리기 위해 딸과 며느리가 찾아온 것은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세로 이어지는 원인과 결과에 따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발생한 사고의 시간과 장소는 달랐어도 그 한을 풀기위해 모인 장소가 같았다는 것은 우주 시스템 안의 한부분이 작용한 것이다.

심장마비와 뺑소니사고로 안타까운 시간을 보낸 두 가족은 구명시식을 하면서 긴장했다. 반면 영가들은 살아생전 받은 환갑상은 아니라도 무척 좋아했다. 가족들은 초혼한 영가를 만나 오랫동안 가슴에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고, 늦었지만 환갑잔치를 올려드릴 수 있어 다행으로 여겼다. 두 가족이 가진 전생의 업장을 조금은 녹였다 생각하니 나 자신도 보람을 느꼈다.

천수를 누리는 것도 복이다. 그리고 그 복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인과에 따라 정해진다. 시인 두보가 말한 ‘인생칠십고래희’가 지금은 그저 옛말이 되었지만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해야 함은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영가에게 아무리 푸짐한 잔칫상을 차려드려도 살아생전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만은 못하지 않은가.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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