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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86. 황혼의 아름다운 사랑

입력 : 2018-03-06 18:33:12 수정 : 2018-03-06 18: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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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랑을 나눈다고 하고, 동물의 사랑은 짝짓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보다 한 차원 높은 영적인 교류인 ‘영교’가 있다. 흔히 나이가 들면 성욕이 감퇴돼 사랑하는 감정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의 감정은 줄지 않는다. 이는 외로움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언젠가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분에게 들은 말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은 죽기 직전의 환자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환자 자신이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사랑을 시작하는 커플이 있다고.

말기 암환자였던 남녀는 서로를 위로하며 영적으로 깊은 사랑을 나눈 뒤 저승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한날한시에 눈을 감으면 좋겠지만 둘 중 먼저 떠나는 사람이 나중에 오는 사람을 마중하기로 손가락을 걸었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본 자원봉사자는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인지 알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인간은 육신이 쇠한다고 해서 사랑을 멈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육신이 쇠할수록 사랑을 더 갈구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배우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노배우만이 사랑의 깊은 맛을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용한 열정이요, 침묵의 애심이다.

아흔을 넘긴 노인이 자식들에게 노인요양시설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자식눈치를 보느니 내 돈 내고 노인들과 편하게 지내다 눈을 감겠다는 생각이었다. 비록 아흔은 넘었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셨던 노인은 어느 날,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만나게 됐다.

치매 걸린 할머니는 정신이 돌아오면 간간히 그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다시 증상이 시작되면 노인을 보며 아들 이름을 부르고, 배고프다고 밥을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멀쩡할 땐 곱고 예쁜 할머니였지만 증상이 시작되면 아무도 곁에 가려하지 않았다.

노인은 스스로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었고 그러다 사랑을 느끼는 사이가 되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치매 할머니를 좋아한다고 고백하자 기가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 다 늙으셔서 이게 무슨 주책이세요. 저 할머닌 아버질 알아보지도 못하시는데요. 그냥 친구처럼 지내세요.”

할머니 가족의 반대도 심했다. 치매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가 제 정신도 아닌 상태에서 웬 할아버지를 만나 사랑에 빠졌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병수발을 들어주며 말동무를 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어차피 기억도 못하실 거 나중에 부담만 될 뿐이라며 두 분의 결합을 반대했다. 그래도 노인은 할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고 이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가족들은 나를 찾아와 중재를 요청했다. 아흔 넘은 아버지가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의 대소변을 치워주는 것도 못 참겠지만 무엇보다 남들 보기가 민망해 아버지를 자주 뵈러 가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 잘못하고 계시는 겁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청춘입니다. 죽는 순간에도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혼은 아니더라도 두 분의 사랑은 막지 마세요.”

요양시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두 분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하셨다고 한다. 한 방에서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행복한 황혼의 밸런타인데이를 즐기시며 여생을 보내셨다고. 그 어떤 사랑이 이보다 아름답겠는가. 모든 생물의 사랑은 아름다우며 그중 마지막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자기 몸을 불태우며 죽음을 맞이한 반딧불의 사랑처럼 두 분은 영계에서 행복한 사랑을 나누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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