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태인의 롯데 이적은 현 FA 제도가 낳은 변칙을 대표한다. 먼저 원소속구단 넥센부터가 채태인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일종의 ‘자체 등급제’를 적용했다. 보상선수 출혈이 부담스러운 시장 분위기를 읽은 대안이었다. 일이 성사된 방식도 정도(正道)는 아니었다. ‘트레이드’라 함은 서로의 수요를 확인한 구단이 먼저 테이블을 차리는 게 보통. 그러나 이번에는 선수 측이 새 소속팀의 보상금 부담을 줄이려고 역제안을 했다. 선수와 양 구단이 KBO리그 규약의 빈틈을 거듭 뚫어냈기에 가능했다는 결론이다.
1999년 한국에 FA 제도가 도입된 건 구단의 일방적 보류권에 맞서 선수의 직업선택 자유를 보장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육성이 대세가 된 KBO리그에서 현 규정은 오히려 나이 든 선수의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FA 자격 요건은 1군 등록일수 기준으로 고졸 9시즌, 대졸 8시즌에 달한다. 데뷔 직후부터 주전급 활약을 펼쳐온 자원이 ‘최대어’가 된다고 보면, 준척급이 시장에 나서는 나이는 더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3년간 KBO 윈터미팅에서는 ‘FA 등급제’가 빠짐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모두가 필요성 정도에만 공감하고 있을 뿐 아직 밑그림도 나오지 않았다. 개장 68일째를 맞은 15일 현재, 미계약자는 김주찬(KIA), 이우민, 최준석(이하 롯데), 정근우, 안영명(이하 한화), 이대형(kt) 등 6명이다. 30대 중반만 남은 FA 시장 1월 풍경은 내년에도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모두 채태인처럼 법의 사각지대를 찾아 스스로 각개전투를 벌여야 한다면, KBO의 규정집은 무의미하다.
법이 현실을 만들까, 현실이 법을 만들까? 답은 후자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의 상식 변화를 따라가면서 그 수준에서 뒤늦게 정의를 세운다. 변해버린 사회를 반영하지 못할 정도로 법이 너무 뒤처져버렸을 때, 이 법은 ‘악법’이라 불린다. 미국의 역사·정치학자 하워드 진은 자신의 저서 ‘오만한 제국’에 이렇게 썼다. “법에 정의가 없을 때, 부당하게 취급당하는 사람들은 저항하고 반항하며 무질서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이제는 KBO리그에도 정말 새로운 판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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