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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9-13 07:00:00, 수정 2017-09-13 09:58:41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멋진 언니' 이효리의 완성

  • JTBC 리얼리티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이 소폭이나마 다시 시청률 상승을 기록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12회차가 8.4%(AGB 닐슨코리아) 시청률을 기록, 11회의 8.2%차보다 0.2%p 올랐다. 이로써 최종화 14회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조짐도 보이고 있다. 남은 2주 동안 9회에서 기록한 자체 최고 시청률 10.0%를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확실히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가히 신드롬 급이라 볼 수도 있다. 특정 미션 등 게임쇼 요소도 없고, 이렇다 할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관찰형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이 정도 성과를 보인 예는 사실상 전무후무하다. 그리고 이 같은 신드롬의 절대적 주역은 바로 프로그램 타이틀 롤을 맡은 이효리 본인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틀리지 않은 해석이다. 좋은 말로 잔잔하고 액면 그대론 심심해질 수 있는 콘셉트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볼만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역할, 즉 예능감의 여왕이란 역할을 제외하고서라도 그렇다. ‘효리네 민박’은 말 그대로 이효리 자체가 콘셉트이자 주제인 프로그램이란 것이다. 결국은 이번에도 ‘이효리가 이긴 것’이지 ‘프로그램이 이겼다’는 식이 아니라는 것.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부분이 있다. 이번 이효리의 예능프로그램 출연 러시는 근본적으로 지난 7월14일 발매된 정규6집 앨범 ‘BLACK’ 홍보 차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정작 ‘BLACK’은 사실상 실패했다. 음원 차원에서도, 그리고 피지컬 음반 차원에서도 모두 그렇다. 4년 전 정규5집 ‘MONOCHROME’에 비해서도 형편없이 저조한 성적이다. 4년이란 공백이 대중음악계에선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 처참한 수준이면 사실상 ‘가수’로서 이효리 역할과 기능은 한계 직전까지 떨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결국 이효리는 이제 오직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만 상업성을 발휘할 수 있는 아이콘, 그것도 상당부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워 뭇 여성들로부터 ‘롤 모델’ 격으로 추앙받는 아이콘에 불과해졌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그것도 전혀 나쁜 역할이 아니다. 세상 어느 업계건 영원한 강자는 없다. 유행 속도가 유난히 빠른 대중문화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내외 여러 장수 스타들 예를 보더라도 같은 대중문화판 내에서 조금씩 자기 역할을 이동시켜가며 생명력을 연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한국나이 88세인 초장수 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90년대부터 배우에서 감독으로 조금씩 자리를 이동하며 또 다른 커리어를 쌓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효리와 거의 동시기에 섹시 디바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엄정화 역시 영화배우로 커리어를 이동시켜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영예를 얻고 장수에 성공했다. 이효리도 지금 ‘그런’ 갈아타기 시기를 맞이한 것뿐이다. 자연스러운 커리어 흐름이다.

    다만, ‘효리네 민박’과 같은 눈에 띄는 성과를 얻어내기까지 이효리가 쌓아올린 예능 방송인으로서의 역할론, 나아가 그 라이프스타일 자체로 관심과 동경을 모으게 된 이미지메이킹 ‘순서도’에 대해선 한번쯤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무엇이 지금 자리를 이동하고 있는, 아니 자리를 이동해도 좋을 만큼 입지를 굳힌 이효리 현상을 만들어냈느냐는 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신드롬 중심인 ‘효리네 민박’부터다.

    ‘효리네 민박’은 쉽게 ‘힐링’이란 코드로 접근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정작 눈에 띄는 부분은 따로 있다. 그런 힐링 코드에 히피적 감수성을 불어넣었단 점이다. 현대인들이 대부분 공유하는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속세(?)를 떠난 삶, 한적하고 심심하지만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 물질적 욕심보단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와 소통을 통해 생활의 가치를 발견해내는 삶, 이처럼 지극히 히피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할 캐릭터로 이효리만한 인물이 또 있겠느냐는 것이다. 화려한 연예계에서 생활하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저 멀리 제주도에서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 우리 시대 대표적 ‘히피 셀레브리티’, 최소한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이효리다. 언급했듯, 인물 그 자체로 콘셉트와 방향성이 설명되는 가장 적절한 캐스팅이다. 나아가 그녀가 아니면 프로그램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을 법한 캐스팅이 맞다.

    그러나 ‘효리네 민박’ 대성공, 나아가 이효리란 캐릭터 자체의 부흥 상황은 그렇게 간단히 볼만한 게 아니다. 이효리란 캐릭터 자체가 현재 그렇게 간단히 만들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측면들이 중첩돼 현 시점 ‘팔릴 수 있도록’ 조합돼있는 형태라 보는 게 옳다.

    크게 봤을 때, 이효리가 방송 예능에서 팔려나간 시기는 이번이 4번째다. 첫 번째는 그가 아직 걸그룹 핑클 멤버로 활동하던 1998년에서 2002년 사이, 이른바 ‘핑클 효과’를 내며 각종 출연 프로그램 시청률을 확 끌어올리던 시기다. 그 다음이 핑클 해체에서 솔로 1집에 걸친 KBS2 ‘해피투게더’ 시절이다. 신동엽과 함께 진행을 맡아 큰 인기를 구가했고, 프로그램은 2002년 KBS 연예대상에서 시청자가뽑은최고의프로그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2008년 6월부터 시작된 SBS ‘패밀리가 떴다’ 시기다. 2010년 초까지 출연했던 이효리는 최고시청률 30%에 육박하는 거대한 성공을 거둔 덕에 2009년 함께 진행을 맡던 유재석과 함께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공동수상했다. 가수로서 연예대상을 수상한 예는 당시까지 이효리가 최초다. 이때부턴 ‘핑클 효과’ 대신 ‘효리 효과’란 수식어가 심심찮게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지금이다. 종합편성채널에서 예능프로그램으로 시청률 10%대를 달성한 ‘효리네 민박’ 시대다. 그럼 이들 각각 시기에 이효리는 과연 대중의 눈에 ‘어떤 이미지’였던 걸까.

    일단 ‘핑클 효과’부터 ‘해피투게더’ 시절까지 이효리 이미지는 별반 다른 게 없었다. 건강하고 발랄한 젊은 여성. 그리고 그런 면모가 가끔씩 도발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 신세대 젊은 여성 그 자체였다. 비슷한 시기 스타덤에 오른 배우 김희선과 함께, 이효리는 빼지 않는 여성, 내숭 떨지 않는 여성, 괄괄하면서도 유쾌한 여성으로 신세대상 일부를 차지했다.

    거기서 ‘패밀리가 떴다’로 넘어가는 5년여 사이 성립된 게 바로 핑클 시절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 솔로 섹시 디바로서의 음악활동 이미지다. 기존 신세대 여성상에 이전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도발적인 성적 능동성을 가미했다. ‘어떤 남자든 10분 안에 유혹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여성의 이미지. 기존 톰보이 류에 집중됐던 걸크러시 개념을 ‘워너비’ 개념으로 바꿔내며 동성층 지지도 얻어냈다. 그렇게 ‘한층 더 쌓여’ 만들어진 게 바로 ‘패밀리가 떴다’의 ‘쎈 언니’ 원조 격 이효리였다. 거침없고 털털하면서도 여전히 성적으로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언니’.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후 보여준 이효리 행보는 최소한도 이미지상으론 스턴트적 요소가 많았다. ‘패밀리가 떴다’ 이후 2010년대 들어 그녀는, 김제동과 엮어 소셜테이너-폴리테이너 적인 면모를 내비치고, 비슷한 시기 음반 ‘MONOCHROME’을 통해 페미니즘 전사 이미지도 선보였으며, 채식주의자 선언 및 동물애호가 역할로도 갔다가, 결혼을 하고 난 뒤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작물 등을 키우며 히피적 전원생활을 뽐내기도 했다.

    그 하나하나가 그 즉시 주목은 받았지만, 각각 비판도 받았다. 한 마디로 ‘유행하는 것’, 소위 ‘힙스터’적인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하려고 한다는 식 비판이었다. 이미지메이킹 스턴트란 비판도 나왔고, 심하게는 말로만 한적한 전원생활이지 사실상 관종에 가까운 행보란 폄훼도 계속됐다. 그러다보니 이러다 혹시 나중에 정치라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조롱까지 받게 됐다. 이쯤 되면 사실상 이미지 변신 차원을 넘어 이미지 호핑(hopping)에 가까운 수준이라, 자기 고유의 캐릭터성을 스스로 붕괴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이 모든 2010년대 행보가 2017년 ‘효리네 민박’ 중심으로 고스란히 모아져 효과를 거두게 된 이유가 있다. ‘BLACK’ 홍보 차 출연한 ‘라디오스타’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이효리는 전에 없이 자신의 물질적 부(富)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 생활비를 걱정해주는 거냐, 나는 이효리다, 나는 굉장히 많은 돈을 벌었다. 이전까지 수더분한 ‘히피 이효리’로선 하지 않던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는 여성층을 위로해주는 발언, 나는 돈이 많으니 가정생활에 별 문제가 없지만 생활에 쫓기는 사람들로선 가정에서 감정적 문제가 없을 수 있겠느냐, 같은 이른바 ‘팩트 폭격’과 ‘위로’가 뒤섞인 멘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터넷 여초 커뮤니티에서 이효리에 대한 반응이 갑자기 호전되고 지지 추세로 돌아선 건 바로 이때쯤부터다.

    사실상 젊은 여성층이 그리도 갈망하는 ‘알파걸’의 실질적 동력은 바로 ‘경제적 능력의 확보’, 즉 ‘부’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를 당당히 자신의 실력으로 쌓아 지금처럼 오히려 재물에 무관심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이효리 입장이 대두되고 나니, 지금껏 그녀의 좌충우돌 행보가 모조리 클릭돼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졌다. 자신이 살고 싶은 히피적 삶을 살고 있는 여성, 상대의 조건 따위 보지 않으며 오직 자신과 뜻이 맞는 남자를 선택한 여성,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 있는 여성, 여성인권에 관심 있는 여성, 환경친화 행보를 걷는 여성, 이 모든 알파걸 구성요소가 ‘큰 부를 쌓은 능력 있는 여성’이란 동력 하에 ‘그렇기에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다른 이들 삶도 이해하는 여성’이란 입장이 추가되면서 온전히 완성된 것이다.

    ‘효리네 민박’은 그런 ‘알파걸 완전체’ 이효리를 보여주는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이었다. 쓸데없는 게임쇼 요소도 없고 해외 풍광 보여주는 관광쇼 요소조차 없어 오히려 더욱 이효리가 꾸려나가는 삶이 부각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제 그녀는 ‘모험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뿐인 것이다. 그런 자유와 여유를 통해 비로소 세상과 타인들을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마치 동화와도 같은 동경요소 콘셉트가 완성된다. ‘쎈 언니’가 아니라 ‘멋진 언니’로 변신하는 시점이다.

    이효리는 21세기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텍스트 중 하나다. 어쩌면 ‘가장’ 흥미로운 텍스트일는지도 모른다. 이효리 행보는 곧 당대 한국의 사회문화적 변화상을 그대로 밟아 보여주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시대가 원하는 것, 시대가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 시대가 꿈꾸는 것, 그 모든 요소가 이효리란 텍스트에 내재돼있다. 벌써 활동 20년차를 맞이하면서도 여전히 스타성 꼭대기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곧 이효리가 그만큼 시대와의 화학작용에 무려 20년씩이나 성공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효리네 민박’은 그 예상치 못한 인기 탓에 기존 12회에서 2회 분량 연장을 결정한 바 있다. 늘 ‘이제 곧 끝날 것 같다’던 이효리 인기 역시 늘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연장돼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효리는 다시 한 번 연장됐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그런 게 바로 모두가 말하는 ‘스타 퀄리티’란 게 아닐까 싶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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