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물리학의 작용과 반작용처럼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희노애락을 찬찬히 더듬어보면, 마음이 일어난 자리엔 반드시 그 반작용이 후폭풍처럼 수반된다. 이른바 음양의 균형이다.
‘친절’ 하면 세계에서 일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기분이 상해도 웃는 낯으로 상대방을 대한다. 그리고 그들의 준법정신은 세계적이다. 아무리 후미진 주차장이라도 주차선을 밟거나 비스듬하게 주차된 차를 찾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반작용의 짙은 그림자를 근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상 유례없이 잔인한 남경대학살과 수많은 침략전쟁이 그 이면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전쟁에 대해 가해자의 모습은 감추고 마치 피해자인 척 행동하고 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근세 제국주의 전쟁의 주역이었고, 매너와 준법의 나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대학살로 악명 높았다.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 인간이 표방하는 도덕은 양심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할 것이다.
인종 전시장 뉴욕의 거리에서 사람이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 깔깔대고 웃는 구경꾼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시민의식이나 매너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 민족성은 ‘남의 불행에 즐거워하고,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지적에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겉으로 무질서하고 매너 없이 보여도 본심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비교적 마음이 맑고 속정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전란이나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혼란기 때 불의에 항거하고 자신도 어려우면서 서로 양식을 나누며 고통을 함께 했다. 미국에서 폭동이 날 때마다 약탈과 방화,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과는 비교된다. 종교와 매너, 공중도덕을 강조하는 선진 시민의식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잔병치레가 잦은 사람이 오래 살고 건강하던 사람이 한번 쓰러지면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처럼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적절하게 처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구명시식을 앞두고 한 부인영가가 홀연히 나타나 기이한 부탁을 했다. 자신의 구명시식에 다른 식구들은 몰라도 남편만은 절대 참석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 부인영가는 생전에 순종하는 현모양처였다는 사실에 다소 의아해했다. 그 부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군말 없이 가부장적인 남편의 수발을 다했었지만, 이제 죽어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다며 얼굴도 보기 싫다고 했다. 한 평생을 같이 산 부부로서 많은 교훈을 남긴 사례였다. 현모양처라는 미덕이 가슴에 쌓여 악덕이 된 것이다.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미덕과 도덕을 외치는 사람들의 사소한 면면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는 웃지 못하면서 남에게 미소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은 행복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미소 속에 감춰진 ‘살인적 미소’와 ‘살인의 미소’를 왜 구분해야하는지 안다면 서비스업이 발달한 도시일수록 상대적으로 범죄가 많은 현상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화를 낸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긋날 수 있지만 양심에 있어서는 진실한 것이다. 현모양처의 허울 속에서 세월을 보냈던 부인영가의 후회처럼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 온실 속의 화초보다 들판의 야생화가 더 진실한 것은 스스로 향기를 내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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