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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18. 덕수궁 돌담길 이야기

입력 : 2017-07-02 21:20:04 수정 : 2017-07-02 2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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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을 끼고 돌아가면 작은 길이 나온다. 일명 ‘덕수궁 돌담길’이다. 구한말 고종이 아관파천하는 비운의 역사를 안고 있는 이 길은 서울 시민이 가장 걷고 싶은 거리이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한 거리다. 가수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를 들으면 ‘덕수궁 돌담길’과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이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그 정도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였는데 한때 이별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오래 전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같이 걸으면 반드시 헤어진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라며 내게 물어온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속설(俗說)의 진위를 밝혀달라고 청했다. 여친과 헤어지고 찾아온 그를 위해 덕수궁 돌담길에 얽힌 비화들을 얘기해주었다.

“덕수궁 돌담길은 참 아름다운 길입니다. 나무가 많아 향기도 그윽하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작은 돌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돌담은 그야말로 한국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지요. 허나 이 아름다운 돌담에 둘려 싸여있는 덕수궁이라는 궁궐은 궁중 여인네들의 원한이 서려 있어 겉보기와는 사뭇 다른 곳입니다.”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경운궁에서는 왕실에서 쉬쉬하는 스캔들이 종종 벌어지곤 했었다. 광해군이 왕세자였을 당시 그는 뜻하지 않게 자신의 백모 뻘인 과부댁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남들 눈을 피해 정을 통하다 사실이 발각되어 난리를 치르게 되었다.

바로 이 때 광해군은 ‘오리발 작전’으로 무사할 수 있었으나, 여자인 과부댁은 오리발도 소용없었던 모양. 그녀는 그 즉시 자신의 정절을 증명코자 경운궁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기에 이르렀고, 광해군 18년에는 자신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이곳에 유폐시키고 ‘대비’의 칭호까지 거두었으니 유폐기간 동안 이를 갈았을 인목대비의 원한 역시 대단했으리라.

이 때문일까. 덕수궁 돌담길에는 여인네들의 원한이 돌 한 개, 담 한 치마다 절절히 박혀 있어 이 길을 지나다니는 커플들을 가만 놔두질 않는다. 사실 돌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여 덩어리가 커지면 양기를 발산시키고, 작아지면 음기를 빨아들이기 마련인지라 데이트 할 때는 되도록 돌담과 멀리 떨어져 걷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음기를 몽땅 뺏겨 버려 여성으로서의 성적 매력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괜찮은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부터 덕수궁이 위치한 서울 정동 뒷골목은 무당이 많아 ‘무당골’이라 불렸다. 뒤에 자리 잡은 나지막한 야산에서는 매년 무당들이 산제(山祭)를 지내곤 했는데 그 제사의 주목적은 바람난 남편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끔 주술을 거는 것.

이를 위해 무당들은 남근 형상을 한 목각을 정성스럽게 깎아 금줄을 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아놓고는 바람난 남자들의 양기와 성욕을 빨아들이기 위해 하루 종일 굿판을 벌였다고 하니 남자인들이라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다니는 것이 안전할까.

속설의 진위를 따지러 왔던 그 사람은 덕수궁에 얽힌 한 맺힌 사연을 안 이상 그냥 넘길 수는 없다면서 반드시 구명시식을 올려 그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나 역시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이었기에 음기가 충만한 날을 골라 구명시식을 올렸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뒤 덕수궁과 정동길이 새 단장을 했으니 그저 우연이라 해도 상관없으리라.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궁궐이 된 덕수궁. 예전 이곳에 가정법원이 있어 이별의 돌담길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내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진 덕수궁 돌담길이 되었다.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이 파사드만 보존한 서울시립박물관과 아름답게 재정비된 정동 뒷길은 서울 시민의 훌륭한 휴식처가 되었다. 이제 덕수궁 돌담길에 맺힌 원한과 탄식은 세월과 함께 녹아버리고, 사계절 그 모습이 아름다운 문화의 거리로 변했으니 어느 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건가.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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