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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97. 혜월 스님에게 망신당한 미나미 총독

입력 : 2017-04-17 04:40:00 수정 : 2017-04-16 18: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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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郎)는 우리가 기억하는 일제의 몹쓸 짓을 도맡아 저지른 인물이다. 중국 주둔군 사령관, 조선군 사령관, 육군장관, 관동군 사령관 등을 거쳐 조선으로 왔다. 창씨개명, 내선일체, 지원병제도로 대표되는 탄압과 민족 말살정책을 주도했다. 1면(面) 1신사(神社) 설치를 꾀했고 신사참배와 모든 행사에 앞서 ‘황국신민의 서사(誓詞)’를 외도록 강요했다. 학교의 명칭, 교육 내용도 일본과 같게 만들어버렸다. 조선어과를 폐지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으며 청년들을 전쟁터에 내몰았다. 강제징용으로 탄광 등지로 한국인들을 끌고 간 것도 미나미였다. 그는 현 청와대 터에 총독부 관사를 지어 경복궁을 내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세등등한 미나미는 조선의 승려에게 망신, 정확히는 오욕스러운 최후를 통보받기도 했다. 청빈한 삶으로 유명한 고승 혜월의 법명을 전해들은 미나미가 일부러 찾아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진리입니까.” 혜월이 답했다. “귀신의 방귀이니라.”

불교를 일본에 예속시키려던 미나미에게 경고의 칼을 꽂은 셈이다. 미나미가 혜월에게 당했다는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려졌다. ‘혜월이 미나미를 몽둥이로 때렸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남의 눈의 티끌만 보는 일본군인 하나가 혜월에게 복수하러 왔다. 방문을 차고 들어와 다짜고짜 혜월의 목에 칼을 댔다. 혜월은 심드렁하게 군인의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군인이 고개를 돌렸다. 혜월은 군인의 등을 치며, “내 칼을 받아라”고 일갈했다. 순간, 무엇인가를 깨달은 군인은 칼을 거두고 절을 올린 뒤 사라졌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극동 국제군사재판은 미나미를 A급 전범으로 판정, 종신 금고형 무기징역에 처했다. 1954년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이듬해 죽었다. 자업자득이었다.

8대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도 육군 대장 출신이다. 1944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이 무너진 뒤 총리가 돼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전쟁광이다.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투옥돼 옥사했다. 감옥에서 죽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종신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해 독립지사 신현모 등 당대의 지식인들을 투옥했다. 조선청년 특별 연성령(鍊成令)으로 17∼21세 젊은이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

숱한 청년들이 고이소의 지시로 전장에서 산화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생까지 징병하며 한국인에게 씻을 수없는 아픔을 떠넘겼다. 심지어 ‘2중징용’도 자행했다. 총독을 거쳐 총리가 된 고이소는 “사할린으로 징용된 광부들을 다른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징용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그때 끌려갔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징용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고이소는 죽어서도 야스쿠니(靖國) 신사의 신의 자리에 있으니 그 한을 다 어찌할 것인가.

마지막 총독은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이다. 대만군 사령관, 육군상 대리 등을 거쳐 1944년 7월 조선의 9대 총독으로 들어왔다. “반도가 가지고 있는 산업, 경제 기타 중요재를 전적으로 전력증강에 충당하겠다”고 선언하며 오자마자 조선을 수탈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징병∙징용 및 근로보국대 기피자 색출에 발 벗고 나섰다. 남자는 당연하고, 만 12~40세 여성에게도 정신근무령서(挺身勤務令書)를 발부했다. 불응하면 투옥시켰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달리 말해 일본의 패전이 확정됐다. 9월 8일에는 미군이 진주했다. 다음날 미국의 하지 중장 앞에서 단 10분 만에 항복문서에 서명한 총독이 바로 아베다. 아베는 내용도 읽지 않은 채 사인했다.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라갔으나 아직 태극기는 게양되지 않았다. 아베는 12일 해임됐고, 14일 경성(京城)은 ‘서울’로 개명됐다. 아베는 제 이름 넉자를 공식문서에 기재, 영원한 패자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내와 손자 둘을 데리고 부산항에서 일본행 배를 탔다가 되돌아오고 말았다.

폭풍이 퇴로를 막은 것이다.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부산으로 돌아온 아베의 80t급 배에 가득 실렸던 재물이 이미 바다 속 깊숙이 수장된 뒤였다. 이처럼 역대 조선 총독들은 예외 없이 끝이 안 좋았다. 사람은 숨이 끊어져야만 죽는 게 아니다. 시늉이라도 팽형을 당한 자는 수명이 다 할 때까지 가사(假死) 상태로 구차한 삶을 보내야 한다. 경복궁의 터를 훼손한 총독들은 그런 존재였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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