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우리나라에 '그런 영화'가 나오지 않는 이유

입력 : 2017-04-13 20:16:00 수정 : 2017-04-13 20:16:00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잠시 현재 일본 영화박스오피스 상황을 보자. 지난주 화젯거리 중 하나는 일본영화 ‘치어☆댄’ 성과였다. 3월11일 개봉해 지난주로 흥행성공 라인 10억엔을 돌파했다. 공로는 상당부분 주연배우 히로세 스즈에게 돌아가고 있다. 요즘 히로세가 출연했다 하면 10억엔 돌파는 예사란 것이다. 확실히 그녀 출연작은 2015년 ‘바닷마을 다이어리’부턴 단 한편도 빠짐없이 흥행수익 10억엔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그런 영화’는 본래 타이밍만 잘 잡으면 늘 성공에 유리한 입지란 해석이다. 그러니 히로세도 그 흐름에 맞춰 작품을 잘 선택한 것일 뿐, 아직 티켓파워를 입증할 상황은 아니란 것. 그럼 과연 ‘그런 영화’란 뭘까. ‘치어☆댄’ 내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2009년 일본 시골학교인 후쿠이상업고등학교 여고생 치어리더부가 치어댄스 본고장 미국의 치어댄스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실화를 다뤘다.

쉽게 말해 ‘청춘열혈물’이다. 열정적인 10대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해 괄목할 성과를 얻어내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이런 영화들의 일본 내 성공계보는 길고 폭넓다. 짧게 봐도 2004년 ‘스윙 걸즈’부터 ‘터치’ ‘훌라걸’ ‘루키즈~졸업~’ 그리고 최근의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와 ‘바쿠만’ 등등에 이른다. 그 ‘노력’ 지점도 스포츠에서 음악, 무용, 공부, 만화에 이르기까지 끝도 없다. 이들 청춘열혈물은 일본에서 일종의 서브장르로 정착된 상태고, 그만큼 흥행성공률도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이런 영화들을 일본대중은 유난히 즐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은 한국에선 도무지 나오질 않는다. 애초 10대들을 다룬 영화도 보기 힘들거니와, 특히나 ‘노력’형 성공사례를 다룬 영화들은 어느 세대 소재건 등장 자체가 어렵다. 이유는 물론, 한국대중은 그런 영화들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라 보는 게 상식적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근래 한국 청년세대에서 ‘노력’이란 두 글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대신 ‘노오오오오오력’만이 남았다. 더 이상 노력을 통한 성공 서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단 얘기다. 노력이 모든 종류 성공의 바탕이란 걸 이해하면서도 그렇다. 장기불황으로 사회적 성공 문이 좁아짐에 따라 좀처럼 자기 처지가 ‘기대만큼’ 향상되지 못하는 현실이 반영됐다. 그러다보니 이를 ‘남 탓’으로 돌리고픈 심정들도 생성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이 부족하다’는 기성세대 비판에 조롱으로라도 맞서기 위해 저런 말장난이 나왔다. 이런 상황이니 노력을 통한 성공 서사, 곧 청춘열혈물도 자연스럽게 거부되고 있다는 것.

물론 한국서 인기 있는 ‘노력’ 서사 영화도 있긴 하다. 그러나 결이 전혀 다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국가대표’ 등 주로 스포츠영화로 포진된 성공사례들을 보자. 공통점은 첫째, 서러운 비인기종목 선수들이다. 둘째, 그 선수들은 대부분 한물 간 노장이거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다. 셋째, 결국 최종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넷째, 최종목표에 이르지 못한 건 정부 등의 지원이 미비하거나 해외열강의 반칙성 텃세 때문이다. 이게 한국형 ‘노력 영화’, 아니 ‘노오오오오오력 영화’들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억울한 심정’이 주요 메시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이라고 청년세대 성공사례가 흔히 일어나는 환경은 아니다. 아베노믹스 효과로 숨통이 틔었다곤 하지만, 저 청춘열혈물 인기는 버블붕괴 여파가 극심하던 시절에도 똑같이 좋았다. 일본 청년세대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긍정적이어서?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저 다른 사람 얘기를 내 사정과 분리시켜 생각하는 개인주의 문화가 정착된 탓이 크다. 저 사람의 노력과 열정엔 박수를 보내지만, 나는 저런 사람이 아니니 내 본분에나 충실하자는 태도가 나온다. 이렇듯 자신과 타인을 분리시킬 수만 있다면 성공 서사 자체는 원래 감동적이고 상향적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래서 인기가 많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영화는 어느 시절이건 비극적 결말을 담보로 한 하향적 카타르시스가 드라마 중심이긴 했다. 3저 호황의 고도성장기였던 1980년대에도 흥행영화들은 대부분 파국적 결말로 끝났다. ‘고래사냥’ 정도가 거의 유일한 예외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잠깐 밝은 분위기 영화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여파와 함께 곧 신파의 극단인 ‘시한부환자 영화’로 시장이 대체됐다. 이후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내놓을 수 있는 한국영화산업 진단은 간명하다. 결국 아이돌산업 등과 함께 한류 흐름을 타고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야 할 영화산업 운명이라면, 이 같은 ‘정서’의 문제를 명확히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독 영화 장르가 해외진출에 약한 건 한국영화의 품질 탓이 아니다. 품질 자체는 오히려 세계 어디 내놔도 무방할 정도로 높다. 다만 이처럼 다소 비관적이며 부정적인 콘텐츠 방향성을 ‘리얼리즘’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런 종류 리얼리즘을 유난히 즐기는 한국대중 성향에 최적화된 영화들이라면, 그 정서 차이 탓에 진출가능한 시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 한단 얘기다.

물론 그런 정서가 먹히는 해외시장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주류로 먹히진 않더라도 소규모 마니아시장으로 안착시킬 여지는 존재하는 곳도 있다. 굳이 해외 주류시장 분위기에 맞추려 콘텐츠를 제작할 이유는 없고, 그런 발상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다만 ‘진출하고 싶은 시장’과 ‘진출가능한 시장’ 차이 정도는 연구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위 ‘치어☆댄’ 사례 등을 고려해 생각해보자면, 한국영화는 최소한도 일본 주류시장에 침투하긴 꽤나 어렵다. 기존 한국드라마를 즐겨 보는 ‘한류 아줌마 팬들’이 시장 한계다. 그럼 이젠 그 시장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다른 곳을 생각해볼 차례다. 성공적 시장전략 비결 중엔 ‘빠른 포기’도 존재하는 법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