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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85. 아직도 민족의 혼이 살아있는 고택

입력 : 2017-03-06 04:40:00 수정 : 2017-03-05 18: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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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화재청이 옛 선조의 고택(古宅)을 비롯해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문화재 명칭을 누구나 알기 쉽게 조정했다고 한다. 고택과 연관된 역사적 인물의 이름, 택호 등을 사용하고, 건축적 특징이나 용도를 찾아서 그 이름을 변경하는 것은 젊은 세대들이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 반가운 일이다.

고택(古宅)은 단순히 옛집이라는 뜻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 고택은 선조들의 소중한 정신적∙물질적 유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특별한 장소여서 옛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고택은 나라 잃은 아픔을 함께 겪었다. 많은 고택들이 세월과 함께 빼앗긴 나라의 아픔도 느꼈고 집의 일부가 잘라져 나가기도 했다.

경북 안동의 고택 임청각(臨淸閣)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임청각은 이상룡 외에도 이상동, 이봉희 등 독립운동가가 여럿 배출된 명문가였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일제는 일부러 10여 킬로미터를 돌아 3개의 터널을 뚫고 옹벽과 축대를 쌓아 마당으로 급하게 휘는 철로를 만들었다. 일제는 집요하게 임청각을 없애려 했다. 이 때문에 원래 99칸이었던 임청각이 50여 칸으로 줄었다. 문화재청에서 중앙선 우회철도를 개설하고 임청각의 훼손된 전각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지금은 사업이 보류된 상태이다.

또 하나의 고택 경주 최부자댁은 12대에 걸쳐 만석꾼을 배출한 집이다. 최부자댁의 마지막 부자 최준은 백산 안희제(安熙濟)와 함께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하여 몰래 독립자금을 제공하였다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백산상회는 문을 닫았고, 3만 석에 해당하는 빚을 지어 식산은행(殖産銀行)과 경상합동은행에 모든 재산이 압류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처럼 민족의식이 강했던 주인과 함께 고택은 많은 풍파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작년 6월 대학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북구의 심우장(尋牛莊)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심우장은 만해가 1933년에 지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처했던 집이다. 심우장 사랑방 앞에는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를 가로로 새긴 당호(堂號)가 걸려 있는데, 이는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당대 명필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다.

심우장은 신채호, 이시영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교류했던 장소였다. 석주 이상룡을 도와 서간도에서 일제와 싸우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옥사한 김동삼의 시신을 만해가 거두어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만해는 나라를 생각하는 이들과 깊은 정을 나누었지만 일제에 무릎을 꿇고 지조를 잃은 자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하게 대했다.

독립운동을 하다 친일로 길을 바꾼 최린(崔麟)이 심우장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만해는 “변절자와 만날 수 없다”며 끝내 대면을 하지 않았다. 최린은 심우장의 어려운 살림 형편이 안타까워 만해의 딸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이 사실을 나중에 듣게 된 만해는 부인과 딸을 크게 나무라고 그 길로 최린의 집으로 달려가 돈을 던져 버렸다는 얘기가 전한다.

심우장은 일반적인 집의 구조인 볕이 잘 드는 남향이 아니다. 만해는 심우장에 대해 “남향하면 바로 돌집을 바라보는 게 될 터이니 차라리 볕이 좀 덜 들고 여름에 덥더라도 북향하는 게 낫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만해가 말하는 ‘돌집’은 경복궁 앞에 버티고 서 있던 당시 조선총독부 청사였다.

이 같은 만해에 대해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는 “인도에는 간디가 있고, 조선에는 만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만해의 민족정신을 높았다. 지난 2월 28일 전국 40여 명의 대학생들이 심우장을 출발하여 전국의 3.1절 역사현장을 거쳐 돌아오는 2박3일의 독립로드 대장정을 마쳤다.

심우장이나 경주 최부자댁, 그리고 안동 임청각이 겪은 세월은 서로 같지는 않더라도 아픈 역사의 흔적은 느낄 수 있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거주했고 고풍스러움과 나름의 세월이 느껴지는 많은 고택들이 지금은 일반인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고택은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손들이 고택이 가진 그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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