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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82. 삶의 흔적 지우기

입력 : 2017-02-20 04:40:00 수정 : 2017-02-19 18: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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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세상을 떠나도 그 흔적은 남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좋은 이름으로 남을지 나쁜 흔적으로 남을지는 본인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달려있다. 살다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듯이 본의 아니게 실수도 한다. 반성하고 근신하며 시간이 지나면 나쁜 흔적은 잊히리라 생각하지만 세상이 꼭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픈 부분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드러내려 하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특히 공인(公人)인 경우 근거 없는 말이 떠돌면 상처를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유명세로 생각하고 악성댓글에 대해 조용히 넘어갔던 연예인들도 요즘은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고 있다. 경찰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고소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법원도 지나친 악성댓글에 대해서는 높은 액수의 벌금을 선고하고 있다.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도 여전히 흔적은 남는다.

몇 년 전 악성댓글로 괴로워하며 찾아온 연예인이 있었다. 오랜만에 대하는 그녀는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져 있었다. 악성댓글에 시달려 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저도 철없던 한때의 실수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돌며 거품처럼 부풀어진 소문과 근거 없이 내뱉는 악성댓글 때문에 무척 힘듭니다. 저는 잊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다시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나보네요.”

그녀는 대화하는 내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만 닦았다. 시간이 지나면 진정이 될 것이라고 말은 해주면서도 사람들이 악의적인 말 한마디가 칼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이야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한 번 받은 상처는 오랜 시간 아픔으로 남는다. 같은 말이라도 애정이 담기면 관심이고 비정이 담기면 악성댓글이 된다. 간혹 무관심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 남겨진 사진과 글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누군가 퍼가기 때문에 지운다고 해도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때의 치기로 악성댓글을 남겨 이를 후회하는 사람이나 그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이나 모두가 없던 것으로 하고 싶지만 뜻대로 안 될 때가 있다. 살아서도 문제인데 죽은 후에도 인터넷에 악성댓글들이 돌아다닌다면 영혼인들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일본에는 살아생전 남긴 인터넷 접속기록과 SNS 상에서의 기록 등을 삭제하고 상속 의사를 표현한 기록들은 유가족에게 백업파일로 전달하는 ‘디지털 장의사’가 있다. ‘디지털 장의사’라는 이름은 살아있을 때 온라인 상에 남아있는 삶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지난 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에서는 인터넷상의 사생활 보호를 존중하여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원하지 않는 삶의 흔적 지우기는 이제 어느 한 나라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도 온라인 상에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 대신 지워주는 대행업체들이 성업 중이라 한다.

전라도 지방으로 갈 때면 자주 들렀던 한정식집이 있다. 그 식당은 주인이 욕쟁이 할머니로 근방에서는 유명했다. 그분이 만든 음식은 맛깔스럽고 투박하게 던지는 욕은 귀에 착 감기었다. 같은 물이라도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되듯,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가진 할머니의 욕은 친근한 언어로 들렸다. 구업(口業) 만큼 힘든 업도 드물다. 말이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기 어렵고, 나쁜 마음을 품은 말처럼 해롭고 치명적인 독(毒)도 없다. 그런 말들은 머리 위 하늘을 향해 쏜 화살 같아서 그 화살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굳이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불가에서는 ‘미소 한 번, 덕담 한 마디도 좋은 보시(布施)’라고 했고, 법구경(法句經)에 보면 ‘사람을 때린 자는 언젠가는 자신도 맞게 될 것이며, 원한을 심어준 자는 원한을 받게 될 것이고, 욕을 한 자는 욕을 먹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좋은 마음을 전하는 것은 흔적 지우기보다 더 중요하다 할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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