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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75. 숨 고르기가 필요한 대한민국

입력 : 2017-01-18 04:40:00 수정 : 2017-01-17 18: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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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이 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이를 불문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용달차에 계란을 싣고 아파트 단지는 물론이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계란을 사라고 외쳤다. 조용히 일을 할 때나 쉬고 싶을 때 이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짜증이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정겨운 소음정도로 여겨졌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인데 지금은 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지난해 AI 파동으로 닭과 오리가 수천마리 살처분되면서 계란이 귀해졌다. 어미닭이 없으니 계란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마트에서는 1인당 한판으로 판매를 제한하여 일부 식당에서는 계란 요리가 사라지고, 계란의 수요가 많은 제과제빵업계는 공급부족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지난 연말에는 케익에 들어갈 계란의 부족으로 전 직원이 계란 구하기에 나설 정도였다. 가격이 치솟으며 계란은 귀하신 몸이 되었다.

정부는 부족한 계란을 미국산으로 대체하기로 하였다. 한시적 수입 물량 약 600만개로 가격조절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다음 주에는 수입 계란이 시중 마트에 풀린다하니 계란부족사태는 조금 진정 되리라 생각한다. 정부는 수입을 결정하면서 내심 걱정을 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수입산 계란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미국산 계란이 흰색인 것을 보고 안심하는 눈치라 한다. 흰색은 우리 국민들이 좋아하는 계란색깔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계란 색깔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 계란이 갈색이 아닌 것은 닭의 털 색깔의 영향이라 한다. 갈색 털을 가진 닭이 낳은 계란은 갈색이다. 과거에는 우리도 흰 깃털을 가진 닭들을 키웠다. 그러다 사람들이 신토불이를 찾으면서 토종으로 인식되는 갈색 깃털을 가진 닭들의 개체가 빠르게 늘어났다고 한다. 일설에는 닭의 오염물질이 흰색 계란에 묻으면 눈에 더 잘 띄어서 유통업자들이 선호하지 않아 점차 사라졌다는 얘기도 있다.

중세 서양화가의 그림을 보면 계란은 흰색이다. 벨기에 화가 요아킴 부켈레르가 1565년에 그린 ‘계란 파는 여인’이라는 그림을 보면 여인이 바구니에 계란을 담아 팔고 있는데 그 안에 담긴 계란이 모두 하얗다. 우리의 누런 계란이 아니다. 그 외에도 계란을 그린 그림은 모두가 하얗다. 식품학자의 말에 따르면 영양 면에서는 갈색이든 흰색 계란이든 차이가 없다고 한다.

계란 하면 우리에게 어떤 것으로 다가오는가. 양계와 도시락 반찬 외에도 운(運)과 기다림으로 상징된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은 황희 정승은 성품이 곧아 지위는 높지만 집은 초라했고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이 “내일 새벽 남대문을 열고 성문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전부 황희 정승에게 갖다 주어라”고 지시했다. 세종은 황희 정승이 재물을 갖게 되면 형편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하루 종일 비가 내려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없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겨우 계란 한 꾸러미가 들어왔는데 그마저도 곯아서 먹을 수 없었다고. 계란 한 꾸러미조차도 재운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면 받아도 받은 것이 아니다. 운이란 때가 맞아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 할 것이다.

정유년은 환국(換局)의 해라 말한 바 있다. 환국이 좋은 결과를 낳으려면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한다. 대통령과 관련자들의 거짓말에 분노한 국민들은 하루빨리 법의 집행을 통해 시원한 결과를 보고 싶어 하지만 우리에게 기다림의 시간도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환국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불가에서 쓰는 말로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껍질을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를 위해 스승이 득도의 순간에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일방만 쪼아서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없기에 어느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쪼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조급증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증인신문이 한창이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행보에 대선주자들도 너도나도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말이면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와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서울 중심가를 누비고 있다. 매일 매일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필요한 것은 숨고르기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계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줄탁동시’인 것은 바로 그런 기다림 때문일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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