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차길진과 세상만사] 72. 지금은 잊혀진 대학천 서점거리

입력 : 2017-01-09 04:40:00 수정 : 2017-01-08 18:19:49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좌우에서 혜화문과 낙산의 서울성곽 안쪽을 흘러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흥덕동천(興德洞川)이란 하천이 있다. 상류의 두 물줄기를 동반수와 서반수라 불렀는데 동숭동 서울대학교 앞으로 흐른다 하여 대학천(大學川)으로 불리었다. 지금은 하천이 복개되어 볼 수는 없다.

이 하천은 서민들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해방 후 청계천을 중심으로 많은 중고물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동대문시장을 비롯하여 인근에 여러 시장이 형성된 것도 그런 이유이다. 50년대 후반 종로 6가에 중고서적상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서점거리가 형성되었다. 그러다 1962년 지금의 평화시장이 세워지면서 헌책방들이 1층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리고 헌책방들이 떠난 자리에는 단행본 신간 서적상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이 거리를 하천의 이름을 따서 대학천(大學川)) 서점거리라고 불리었다. 그 당시 이곳의 서점들은 판매와 출판을 겸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판매가 가능했다. 단행본 서적도매상들이 주축이 된 대학천 서점거리는 90년대에는 우리나라 도서유통시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1960년대 초반 종로 6가 덕성빌딩 근처는 덤핑 서적의 ‘메카’였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2천여 종의 책이 거래될 정도였는데, 이 시기를 덤핑 서적의 극성기라고도 했다” 우리나라 출판 1세대인 을유문화사 창립자 정진숙 회장의 회고록 내용이다. 정 회장의 회고록을 보면 해방 후 어려웠던 시절의 우리 출판계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가 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출간되는 책들은 종이 질이 낮았고, 가격도 지금과 비교하면 저렴했다고 한다.

초기 열악했던 도서 유통시장에 대해 정 회장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을 판매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신간을 서점에 보냈다고 해서 자금이 곧바로 회수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는 서점이 귀한 편이라 각 출판업자들은 책방이 생기면 앞 다투어 외상으로 책을 보내주었다. 서점은 책이 팔리면 출판사에 돈을 지불해 주면 되는데, 그러한 기본 약속마저 이행되지 않기가 일쑤였다. 심지어 얼마쯤 책을 팔다가 문을 닫고 종적을 감추는 서점 또한 없지 않았다”고 한다. 출판시장은 커지고 모든 것이 현대화 되었어도 관행적 결제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부근의 중학교를 다녔다. 학교 담 너머에는 평화시장이 있었고 그 건물 1층에는 헌책방이 백여 개가 있었다. 중고등, 그리고 대학 다닐 때에도 헌책방을 드나들며 책을 사고팔았던 기억이 있다. 3월 신학기가 되면 그 거리는 책을 사러 나온 사람들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였다. 휴일에는 대학서적을 비롯하여 중고생 참고서를 사기 위해 2만여 명이 거리로 나왔다. 그때가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최고 전성기였을 것이다. 교육과정이 자주 바뀌는 바람에 중고참고서를 찾는 학생들이 줄어들어 이제 청계천 헌책방 거리도 한산해졌다. 백여 개가 넘던 서점들은 사라지고 고서나 절판된 책을 사러오는 사람들을 위해 20여 개정도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부도를 낸 송인서적도 대학천 서점거리에서 출발했다. 그곳에는 송인서적, 한양서적, 학원서림, 진명서적 등 도매서점들이 즐비했고 전국의 많은 서점들이 이곳에서 책을 구입해 갔으니 도서유통업계의 메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쏟아지는 신간 도서들을 보관할 창고가 부족하고 주차시설 또한 협소하여 지방으로 책 발송과 시내 배본 등이 여의치 않아 90년대에 들면서 대형 도매서점들이 사대문 밖에 분점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 말에는 대부분의 서점들이 대학천을 떠났다.

이번 송인서적 부도사태는 고질적인 출판 유통 관행이 부른 결과이다. 출판인들은 이런 관행이 계속되는 한 제2의 송인서적이 안 나오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한다. 영세 출판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나 이번 기회에 획기적으로 출판 유통구조가 개선되었으면 한다.

복개한 도로를 뜯어낸 청계천은 대학천이 합류하여 예전의 맑은 물이 흐른다. 인터넷 서점 이용으로 청계천의 헌책방거리나 대학천 서점도매거리는 더 이상 책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인줄 알면서도 대한민국의 지식과 문화가 그곳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에 거리가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