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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71. 종교는 사랑과 낮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입력 : 2017-01-04 04:45:00 수정 : 2017-01-03 18: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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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종교인구 조사에서 개신교 인구가 가장 많았고, 불교 인구는 10년 전에 비해 300만 명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를 접한 불교계는 당혹해하면서 조사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개신교가 자정노력에 힘쓴 반면, 불교계의 자성노력은 그만큼 미흡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통계에서 특이한 것은 종교에 관심 없는 무종교인의 수가 종교인 수를 넘어섰으니 점점 탈종교화시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불교와 인연이 있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불교는 인연의 종교이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세상 인연을 어찌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젊은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오직 이해와 실천, 그리고 깨달음으로 진정(進程)된다 할 수 있다. 불교를 쉽게 그리고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스님들도 예전보다 많아졌다. 반가운 일이지만 너무 세속적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 고승들의 선문답은 난해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정진하는 스님들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당대의 고승들이 서로 만나면 어떤 대화를 나눌까. 오래 전 나는 그 경험을 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내가 젊은 시절 구산(九山) 스님을 모시고 통도사의 극락암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통도사 극락암은 당대의 선지식 경봉(鏡峯) 스님의 선(禪)을 체험하기 위한 운수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는 때였다. 경봉스님께서 생전 수좌들과 학인들에게 이르고 가르치신 말씀은 가히 역대 선사와 차원이 동등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삐걱거리는 시골버스를 타고 산사에 접어드는 큰 길과 일주문을 지나 극락암에 올랐다. 경봉스님은 구산스님이 왔다는 말을 상좌에게 전해 듣고 내려와 구산스님을 맞았다. 두 선지식은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들을 가끔 하시면서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셨다. 나는 경봉 스님의 상좌와 다른 스님들과 함께 시중을 들면서 의도적으로 스님들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서로의 대화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긴장시켰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구산스님은 요새 행상(行商)을 하고 다니신다면서요?” 이 말은 구산스님께서 한곳의 절에 머물지 않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법문을 하시고 불교를 전파하고 제자를 수백, 수천 명씩 불문에 입문시키는 일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수행자가 한곳에 가만히 앉아서 도나 닦을 일이지 세간에 나가 활동하는 것을 약간 비꼬아서 하신 말씀이기도 했다. 그러자 구산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야 가계가 엿장수 아들이니까 가난합니다. 스님이야 백화점을 가지고 계시니까 저처럼 행상을 다니시지 않는 것 아닙니까. 요즘은 외국까지 나가서 행상을 한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경봉스님은 껄껄껄 크게 웃으시면서 파안대소를 하시는 것이었다. 구산스님의 은사이신 효봉스님이 만행(萬行)을 할 때 엿장수를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닌 것을 말한 것이고 , 백화점은 당시 경봉 스님을 만나기 위해 운해(雲海)처럼 모여들던 극락암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다. 또한 구산스님이 70년대 말, 80년대 초 미국 LA등지를 방문하여 외국인 제자들을 한국으로 수학하게끔 만들었던 일을 행상에 비유한 것이다. 결국 경봉스님은 구산스님의 세간체류를 비꼬려다가 구산스님의 백화점이야기에 오히려 비꼬임을 당하신 것이다.

그날 두 고승에게서 옛 선사에게나 들을 법한 선문답을 바라던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러나 두 스님의 소박한 대화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수도의 깊은 경지가 범부들의 즐거움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매우 평범하지만 호흡이 긴 알음알음이라는 것을 얻게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두 분이 품고 계셨던 마음의 여유가 내게도 있는지 종종 돌아보게 된다. 한국 불교계에서 선의 거인들이 세간의 여느 농부처럼 손을 잡고 즐겁게 이야기하던 그 빛나는 눈동자와 맑은 얼굴이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 종교의 기본은 사랑이다. 그 옛날 낮음을 강조하신 두 고승의 대화처럼 종교가 추구하는 것도 그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종교마다 각자의 방송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종교인구가 많아진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종교인들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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