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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69. 지령인걸보다 봉사하는 대권주자

입력 : 2016-12-28 04:45:00 수정 : 2016-12-27 18: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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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은 20년을 주기로 큰 변화가 있어왔다. 1900년 일제의 통감정치가 시작됐고, 1919년 3.1운동으로 일제의 문화정치가 시작됐다. 1940년에는 일본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한반도는 병참기지가 됐다. 1960년에는 4.19혁명이 일어나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이듬해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며,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이 막을 내렸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색깔이 바뀌었다. 그리고 2016년 국정농단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200만 명의 촛불시위이 이어지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또 한 번 대한민국의 정치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되고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고 있는 지금, 정치권에서는 대권주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기존 대권주자는 물론이고 새로운 주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선 시즌만 되면 으레 나오는 대선주자들의 선산 풍수 얘기가 이번에도 언론에 거론되고 있다.

얼마 전 대선주자로 입에 오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부친 묘를 명당자리로 옮긴다고 언론이 보도하자 가족들은 이를 부인하고 나섰다. 선친의 가묘가 사건의 발단이었는데 세인의 입에 오르자 서둘러 가묘를 없애겠다고 한다. 풍수가들은 반 총장 부친 묘 자리는 바람을 막을 수 없고 좋은 기운을 모을 수 없으나 가묘가 설치된 선영은 좋은 기운이 넘친다고 말한다.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선친 묘 이장을 한다하니 지기(地氣)의 힘을 빌어서 대권에 도전하려는 게 아닌가 말이 나오는 것이다.

풍수가들이 하는 말이 있다. ‘지령인걸(地靈人傑)’ 즉, 땅에 신령스런 기운이 모여 생기가 발동하고 여기에 조상의 유골을 묻으면 후세에 훌륭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의미다. 옛부터 지기가 모이는 곳에 터를 잡고 살거나 조상의 묘를 잡게 되면 자신과 후손이 번영을 누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조상의 묘 이장으로 덕을 본 대표적인 사람이 대원군 이하응이다. 안동김씨의 권세에 밀려 왕족이면서도 파락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이하응은 당대의 풍수가 정만인에게 앞일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가야산을 가리키며 “부친의 묘를 그곳으로 이장하시오. 그곳은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이니 왕이 나올 자리입니다.”

하지만 풍수가가 말한 그곳에는 이미 가야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었고, 봉분을 모셔야 할 자리에는 석탑이 있었다. 이하응은 가야사를 불태우고 석탑을 부순 뒤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 그 덕분에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자신은 권력을 한손에 쥐었지만 풍수가가 말하는 만대의 영화는 없었다. 주변 강대국들의 압력에 싸여 대원군은 물론이고 고종 또한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다. 지기(地氣)는 있으나 사리사욕을 위해 절을 훼손하였기에 그 지기(地氣)가 다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근래에 들어 김대중 대통령이 선친 묘 이장으로 조상의 음덕을 입었다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이장 덕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부친과 조부 등 조상 묘를 이장했지만 끝내 청와대에 입성하지 못했다. 고지를 눈앞에 두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대선주자로서 조상의 음덕이라도 입어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청와대는 그 나름의 지기가 있다.

청와대 자리는 일제강점기 총독부관저로 조선지관이 터를 잡아주었다고 한다. 그 지관이 일본인이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고 좋은 자리를 잡아주었을 리 없다. 김영삼 대통령 때 구 관저 건물을 헐고 새 건물로 이사를 했으나 터 안에서 자리만 옮겼으니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할 것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끝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그 지기(地氣)를 누를 만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령인걸(地靈人傑)’이라 해도 사리사욕을 갖게 되면 음덕을 받을 수가 없다. 하물며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이 그런다면 살아도 산 사람이 되지 않는다. 오직 진실로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갖고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청와대 지기(地氣)를 이기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격랑을 헤치고 나갈 강력한 리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정유년 새해에는 그런 인물이 나와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리라 믿는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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